[외언내언] 풍납토성 파괴

[외언내언] 풍납토성 파괴

임영숙 기자 기자
입력 2000-05-16 00:00
수정 2000-05-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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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처구니 없는 일이다.백제 초기 왕성으로 추정되는 서울 송파구 풍납토성안쪽의 유적 발굴 현장 일부가 13일 아파트 재건축조합 관계자들에 의해 의도적으로 파괴됐다는 것은 참으로 충격적이다.굴삭기를 동원한 이런 ‘문화테러’가 자행될 수 있는 우리 현실이 부끄럽고 안타깝다.

풍납토성은 한성백제(BC 18∼AD 475년)의 왕성이었던 하남 위례성 자리로역사학계가 추정하는 곳이다.백제가 고구려에 밀려 도읍지를 웅진(공주)으로옮기기까지 약 500년간 백제의 도읍지였던 하남 위례성의 위치는 지금까지확인되지 않았으나 지난 97년 이후 여러차례의 풍납토성 발굴결과 이곳이 하남 위례성일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주목받고 있다.따라서 역사·고고학계 원로 중진 학자들은 “지난 100년 동안 이루어진 발굴 중 풍납토성 발굴이 가장 의미있다”(이종욱 서강대 교수)면서 “폼페이 유적보다 우리에게 더 가치있는 유적”(김영상 서울문화사학회 명예회장)을 잘 보존해 후손에 넘기지 못하고 파괴한다면 “우리는 역사의 죄인이 되고 말 것이다”(김삼용전원광대 총장)고 지난 8일 서울백제수도유적보존회 주최로 열린 ‘풍납토성 보존을 위한 학술회의’에서 입을 모았다.이 세미나가 열린 지 닷새 만에 무참히 파괴된 풍납토성 안쪽 경당연립 재건축 부지는 바로 ‘대부(大夫)’및 ‘정(井)’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초기백제 토기등이 출토된 곳이다.

풍납토성의 중요성을 잘 모른 채 재건축 아파트 공사지연과 늘어나는 발굴비용 부담 그리고 재산권 침해에 분개한 주민들의 사정 역시 딱하긴 하다.그러나 사유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해 중요한 문화유적을 함부로 파괴할 수는 없는 일이다.이번 사건이 “예고된 참사”였다는 지적은 우리 문화재 보호정책의 허점을 보여준다.1963년 토성 자체만 사적으로 지정한 단견이나 문화유적보호에 대한 인식이 낮은 국민의식도 문제지만 문화재 당국과 서울시가 좀더 성의있게 대처했더라면 불행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물론 50만평에 이르는 풍납토성 내부를 모두 보존지역으로 지정하자면 주민들에 대한 대토(代土)와 보상금 지급 등에 10조원의 예산이 필요해 정부 차원의 결단이 필요하다.당장 이같은 결단이 어렵다면 사유재산권을 보호하면서 고층건물 제한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또 이번과 같은 극단적인 사태가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유적 발굴비용을 사업시행자가 부담하도록 한 문화재 보호법에 단서조항을 붙여 필요할 경우 당국이 개입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시민의 자발적 모금과 기부를 통해 문화유산을 매입해 영구 보존하는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이 절실히 요구되는 곳이 바로 풍납토성 지역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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任英淑논설위원 ysi@

2000-05-16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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