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회담은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일관되게 추진해온 ‘햇볕정책’의 산물이다.김 대통령은 지난 98년 2월25일 취임식에서 남북 기본합의서 이행을 위한 특사교환을 제의한 이래 줄기차게 남북 당국자간의 대화 필요성을강조해왔다.
정부의 일관된 정책에 북한도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98년 4월11일 중국베이징에서 남북 당국자회담이 개최된 이래 공식·비공식적 접촉이 늘어갔다.
그 과정에서 연평해전과 잠수정 침투 등 크고 작은 긴장상황이 조성됐지만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의 소몰이 방북,금강산관광 등을 통해 북한 변화의 조짐은 곳곳에서 감지됐다.또 양측 당국간에 어느 정도 신뢰도 쌓여갔다.
이런 배경에서 3월10일 유럽을 순방중이던 김 대통령은 베를린선언을 발표한다.북한도 전 세계적 지지를 얻은 베를린선언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였다.평양에서도 “서울을 거치지 않고서는 국제사회로 나가기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됐다.이후로 정상회담을 전제로 한 양측의 물밑 접촉이 활발해지고특사 회담이 합의됐다.
유럽 순방을 마치고 돌아온 김 대통령은 3월15일 박지원 장관을 관저로 불러 북한과의 협상을 위한 특사역할을 맡겼다.박 장관은 “문화부장관은 적임이 아니다”며 사양했다.그러나 김 대통령은 “박재규 통일부장관 등이 직접나서면 노출될 우려가 있다”면서 “협상이 결렬되는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고 박 장관에게 특사를 맡겼다.
북한도 이번 협상의 중요성을 감안해 남북관계 전문가이면서도 일단 당정에서 한 걸음 물러서 있는 송호경 아태평화위 부위원장을 내세웠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양측의 통치권자가 임명한 특사 자격으로서 만난 것이다.
3월17일 중국 상하이에서 박 장관과 송 부위원장이 처음 만나게 된다.이후베이징에서 몇차례 비밀회담이 이어졌다.서로가 무엇을 원하는지가 대체로파악됐다.
우리측은 3월22일 베이징에서 최종입장을 통보했다.더 이상의 접촉은 하지않겠으니 북한의 입장이 결정되면 연락하라는 것이었다.
드디어 지난 7일 북한측으로부터 연락이 왔다.이에 따라 8일 4시부터 베이징에서 박·송 회담이 재개됐다.얘기는 잘 풀려나갔다.북한측이적극적이었다.
이 자리에서 박 장관과 송 부위원장이 합의문을 만들었고 10일 오전 10시에양측이 동시에 발표하기로 했다. 두 사람은 오후 7시25분(한국시간 8시25분)합의문에 서명하고 기념촬영까지 했다.
이도운기자 dawn@
정부의 일관된 정책에 북한도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98년 4월11일 중국베이징에서 남북 당국자회담이 개최된 이래 공식·비공식적 접촉이 늘어갔다.
그 과정에서 연평해전과 잠수정 침투 등 크고 작은 긴장상황이 조성됐지만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의 소몰이 방북,금강산관광 등을 통해 북한 변화의 조짐은 곳곳에서 감지됐다.또 양측 당국간에 어느 정도 신뢰도 쌓여갔다.
이런 배경에서 3월10일 유럽을 순방중이던 김 대통령은 베를린선언을 발표한다.북한도 전 세계적 지지를 얻은 베를린선언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였다.평양에서도 “서울을 거치지 않고서는 국제사회로 나가기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됐다.이후로 정상회담을 전제로 한 양측의 물밑 접촉이 활발해지고특사 회담이 합의됐다.
유럽 순방을 마치고 돌아온 김 대통령은 3월15일 박지원 장관을 관저로 불러 북한과의 협상을 위한 특사역할을 맡겼다.박 장관은 “문화부장관은 적임이 아니다”며 사양했다.그러나 김 대통령은 “박재규 통일부장관 등이 직접나서면 노출될 우려가 있다”면서 “협상이 결렬되는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고 박 장관에게 특사를 맡겼다.
북한도 이번 협상의 중요성을 감안해 남북관계 전문가이면서도 일단 당정에서 한 걸음 물러서 있는 송호경 아태평화위 부위원장을 내세웠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양측의 통치권자가 임명한 특사 자격으로서 만난 것이다.
3월17일 중국 상하이에서 박 장관과 송 부위원장이 처음 만나게 된다.이후베이징에서 몇차례 비밀회담이 이어졌다.서로가 무엇을 원하는지가 대체로파악됐다.
우리측은 3월22일 베이징에서 최종입장을 통보했다.더 이상의 접촉은 하지않겠으니 북한의 입장이 결정되면 연락하라는 것이었다.
드디어 지난 7일 북한측으로부터 연락이 왔다.이에 따라 8일 4시부터 베이징에서 박·송 회담이 재개됐다.얘기는 잘 풀려나갔다.북한측이적극적이었다.
이 자리에서 박 장관과 송 부위원장이 합의문을 만들었고 10일 오전 10시에양측이 동시에 발표하기로 했다. 두 사람은 오후 7시25분(한국시간 8시25분)합의문에 서명하고 기념촬영까지 했다.
이도운기자 dawn@
2000-04-11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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