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영어, 교육은 해도 공용어 안될말

[기고] 영어, 교육은 해도 공용어 안될말

이종영 기자 기자
입력 2000-02-16 00:00
수정 2000-0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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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사이 영어의 공용어화문제가 또다시 논의되고 있다.일본에서 영어의 공용화 이야기가 나온 후에는 우리 나라에도 더 자주 그런 이야기가 나온다.

민족어에는 그 민족의 문화와 가치관이 포함되어 있다.그래서 언어는 동일민족의 증표이기도 하다.그래서 한국 말을 못하는 해외교포는 한국 민족으로인정하는 데 문제가 생긴다.영어에는 영국 민족의 문화와 가치관이 말과 표현 속에 포함되어 있다.그래서 동료 교수들끼리도 한국 사람끼리는“김 교수”라고 해야 하고,영어로는 조지,테드 등 이름을 부른다.

한국 말로는 김 교수와 이야기를 하면서도 호칭은 ‘김 교수’라고 3인칭을써야 하고, ‘당신’이라고 하면 큰일 나는데,영어에서는 ‘You’면 누구에게나 통한다.며느리가 시아버지에게 카드를 보낼 때도 한국어로는“아버님생신 축하합니다”이지만,영어로는“Happy birthday,George!”가 된다.영어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고 미국적 가치관이 담겨져 있다.

또한 민족어에는 식인종처럼 다른 말을 잠식하는 성질이 있다.옛날‘국제화’에 의해 한자가 들어왔는데 그 결과‘?뫼’,‘?밭’이라는 좋은 우리 말은 잠식당하고 대구(大邱),대전(大田)이 되어 이제는 ?뫼,?밭이라는 말을아는 사람도 드물다.미국 식민지 100년이 못되었는데도 필리핀 말(타갈로그)은 완전히 영어에 잠식당하여 다방이나 집안에서만 쓰인다.

콧대 높은 인도의 대학교수들도 학술논문은 힌두어로 쓰지 못한다.영어를전용하는 중등학교가 대인기라서 특권학교가 되어 학생들은 집에서도 영어를쓰고 힌두어 사용 학교 학생들을 멸시한다.이것이 지금 인도 사회의 고민이다.한국도 공과대학 특히 컴퓨터 관련 학술논문은 한글로는 쓰지 못하게 되어가고 있다.공대 교수들 서가에 한국어 책이 5%가 안될 것이다.

민족의 말을 특정 분야에서 쓰지 못하면 그것은 그 말의 죽음의 시작을 의미한다.지금 영어를 공용어화하면 100년 후에 우리 말은 지금의 필리핀 ‘타갈로그’처럼 술집이나 집안에서만 쓰이게 될 것이다.화교 국가 싱가포르의고민은 중국 책과 신문을 읽을 수 있는 국민이 격감해 간다는 것이다.그래서세계 각국은 실용의 편리를 위해 꼭필요한 경우 영어를 쓰더라도 공식적으로 민족의 자존심과 언어평등권이 관련되는 경우에는 자국어를 고집한다.“중국은 위대한 나라이고,위대한 민족의 언어는 존경받아야 한다”면서 중국외교부는 정례 브리핑에 중국 말만 쓰기 시작하였고,중국으로 돌아간 홍콩에서는 학교 교육을 중국 말로 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각국에서 유엔대표로 올 정도의 지식인은 다 영어를 알면서도 공식회의 때에는 반드시 6개국 유엔공용어로 통역해줄 것을 요구한다.EU의회에서는 연설을 11개의 공용어로 동시통역을 시키고 있다.지난해 9월 핀란드에서 개최된EU외무장관회의 때에 독일의 피셔 외무장관은 영어를 유창하게 잘 하면서도독일 말을 고집하고 통역을 요구하였다.

EU국가(國歌)의 곡은 베토벤의 ‘기쁨의 찬가’로 하자고 대략적인 합의는되었는데 가사를 무슨 말로 할 것이냐가 합의가 안되고 있다.그래서 627명유럽의회 의원의 20%가“중립적 국제공통어 에스페란토를 유럽 공통어로 사용하자”는 데 찬의를 표하고 있다.실제로는 영어를 알더라도 공식적으로 영어를 국제공통어로 채택할 수 없는 것이 국제언어정치학적 사정이다.

네덜란드사람,독일사람은 영어가 공용어가 아니라도 각자 필요에 따라 배워서 유창한 영어를 한다.영어가 필요하면 배워서 실용적으로 쓰면 된다.그것을 정식으로 공용어화한다는 것은 세계적인 웃음거리이다.그렇지 않아도 영어가 밀물처럼 잠식해 들어오는 현실 속에서 오히려 정부가 할 일은 한글과우리 말을 지키는 것이다.적어도 정부 공문서에는 불필요한 영어는 쓰지 못하도록 하여야 한다.그렇게 노력해도 2100년 새해 인사를 한국 말로 할 수있을지가 염려되는 사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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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영 한국 에스페란토협회장
2000-02-16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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