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산사로 출가해 봄을 맞게 되었을 때였습니다.이름 모를 새도 지저귀고,소쩍새울음도 들리기 시작하는데 앙상한 나뭇가지는 움틀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이상하다? 다른 곳에서는 벌써 잎이 파릇파릇한데 이 산 속의 나무들은 왜 이렇게 싹이 나지않지?나무들이 모두 죽었나”하고 생각하였습니다.그러던 어느 날 성철스님께서 마당에 나오셔서 산책을 하고 계셨습니다.가까이 다가가,“스님! 나무들이 아직도 새싹이 나지않으니 다 죽었나봅니다”하고 말씀드리니,스님께서 한참 저를 빤히 쳐다보다가,“세상에 너같이 똑똑한 놈 처음 본다”하시며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셨습니다.
그러다 세월이 흐르니 나뭇잎들의 움트는 모습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아하! 스님 말씀처럼 내가 똑똑하기는 참 똑똑한 모양이다” 중얼대며 무안해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그렇게 산사의 봄은 늦게 오는 것이었습니다.처음에는 잘 몰랐는데,초록은 한가지 색이지만 나무마다 돋아나는 새싹들은 제각각 색깔을 띱니다.봄마다 다투는 초록색의 잔치는 단풍 못지않은 장관임을 알게 된 것도 10여년 산 속에 살면서였습니다.푸른 나뭇잎이 여름의녹음을 지나 가을단풍이 드는 모습도 우리가 느끼듯 제각각이어서 산사의 아름다움을 더해줍니다.
단풍 가운데서 제일 먼저 빨갛게 물이 드는 나무는 잎이 넓은 옻나무입니다.산에서는 ‘물구리’라고 해서 가느다란 잡목을 베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데 그 가운데 옻나무가 있어 옻이 올라 고생했던 행자시절이 있는데,옻나무가그리 곱게 물드는 줄 알고 참 신기해 했습니다.
가을마다 단풍이 곱게 물들지만 똑같은 단풍이 아닙니다.어느해는 정말 곱게 물들어 그 해는 스님들이 ‘금색단풍’이라 이름붙이고,어느 해는 칙칙하게 물들어 영 시원치 않은 해도 있는데 그 해는 ‘똥색단풍’이라고 이름붙입니다.도시사람들은 단풍드는 산을 찾아와 좋아하지만 단풍이 금색인지 똥색인지 잘 구별하지 못합니다.그렇지만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단풍이 잘들었는지 못들었는지 알아채기도 합니다.
서울살이를 하면서 처음 가을을 맞이했습니다.아무런 가을정취도 없을 것같은 서울생활 속에서도 뜻밖에 가을정취를 느낄 수 있어 감격스러웠습니다.경복궁을 거쳐 청와대 주변을 거닐며 금빛으로 물든 은행잎들이 우수수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학생들이 우루루 몰려가서 서로 고운 잎들을 주으려는 모습을 바라보노라니 마음이 말할 수 없이 정겨워졌습니다.
그러나 저에겐 이 가을이 마냥 아름다운 가을일 수만은 없습니다.‘다시 산중으로 돌아가며’라는 귀거래사를 남기시고 고산 전 총무원장 스님께서 산사로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당신과는 관계없는 법적 하자로 총무원장선거를 다시 하게 되었는데,스님은 불교 자주권과 법통수호를 위해선 경선이 아닌추대형식이어야 한다는 생각이셨습니다.대다수 종도들도 그렇게 돼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그러나 선거가 공고되자 스님을 단독후보로 모시자는 소리는어디론가 쑥 들어가버리고 말았습니다.“자존심도 지키지 못하는 종단에 남아 내가 무슨 일을 하겠나!”하는 심정으로 돌아가신 듯 싶습니다.모셨던 사람으로서 죄송스러운 마음뿐이었습니다.
저는 해인사 산중에서만 살아서 선거가 무엇인지도잘 몰랐습니다.어른스님들이 결정하면 저희들은 따라가기만 하면 되었던 것입니다.서울에 살면서 3번째 선거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종단의 지도자를 모시는 방법이 꼭 이래야만 될까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선거판이 벌어지고 반가웠던 스님들끼리 서먹한 사이가 돼 또 어떻게 정다워지지 하는 걱정을 하기도 했습니다.그러나 이제 종단도 좋은 지도자를 모셨으니 국민들에게 신뢰받는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습니다.
올해는 비가 잦아 가야산 단풍도 시원치 않다고 합니다.전국의 단풍도 예년같지는 않다고 합니다.내년에는 날씨가 순조로워 좋은 단풍이 들 것을 기대해 봅니다.
[圓澤 조계종 총무부장]
그러다 세월이 흐르니 나뭇잎들의 움트는 모습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아하! 스님 말씀처럼 내가 똑똑하기는 참 똑똑한 모양이다” 중얼대며 무안해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그렇게 산사의 봄은 늦게 오는 것이었습니다.처음에는 잘 몰랐는데,초록은 한가지 색이지만 나무마다 돋아나는 새싹들은 제각각 색깔을 띱니다.봄마다 다투는 초록색의 잔치는 단풍 못지않은 장관임을 알게 된 것도 10여년 산 속에 살면서였습니다.푸른 나뭇잎이 여름의녹음을 지나 가을단풍이 드는 모습도 우리가 느끼듯 제각각이어서 산사의 아름다움을 더해줍니다.
단풍 가운데서 제일 먼저 빨갛게 물이 드는 나무는 잎이 넓은 옻나무입니다.산에서는 ‘물구리’라고 해서 가느다란 잡목을 베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데 그 가운데 옻나무가 있어 옻이 올라 고생했던 행자시절이 있는데,옻나무가그리 곱게 물드는 줄 알고 참 신기해 했습니다.
가을마다 단풍이 곱게 물들지만 똑같은 단풍이 아닙니다.어느해는 정말 곱게 물들어 그 해는 스님들이 ‘금색단풍’이라 이름붙이고,어느 해는 칙칙하게 물들어 영 시원치 않은 해도 있는데 그 해는 ‘똥색단풍’이라고 이름붙입니다.도시사람들은 단풍드는 산을 찾아와 좋아하지만 단풍이 금색인지 똥색인지 잘 구별하지 못합니다.그렇지만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단풍이 잘들었는지 못들었는지 알아채기도 합니다.
서울살이를 하면서 처음 가을을 맞이했습니다.아무런 가을정취도 없을 것같은 서울생활 속에서도 뜻밖에 가을정취를 느낄 수 있어 감격스러웠습니다.경복궁을 거쳐 청와대 주변을 거닐며 금빛으로 물든 은행잎들이 우수수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학생들이 우루루 몰려가서 서로 고운 잎들을 주으려는 모습을 바라보노라니 마음이 말할 수 없이 정겨워졌습니다.
그러나 저에겐 이 가을이 마냥 아름다운 가을일 수만은 없습니다.‘다시 산중으로 돌아가며’라는 귀거래사를 남기시고 고산 전 총무원장 스님께서 산사로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당신과는 관계없는 법적 하자로 총무원장선거를 다시 하게 되었는데,스님은 불교 자주권과 법통수호를 위해선 경선이 아닌추대형식이어야 한다는 생각이셨습니다.대다수 종도들도 그렇게 돼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그러나 선거가 공고되자 스님을 단독후보로 모시자는 소리는어디론가 쑥 들어가버리고 말았습니다.“자존심도 지키지 못하는 종단에 남아 내가 무슨 일을 하겠나!”하는 심정으로 돌아가신 듯 싶습니다.모셨던 사람으로서 죄송스러운 마음뿐이었습니다.
저는 해인사 산중에서만 살아서 선거가 무엇인지도잘 몰랐습니다.어른스님들이 결정하면 저희들은 따라가기만 하면 되었던 것입니다.서울에 살면서 3번째 선거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종단의 지도자를 모시는 방법이 꼭 이래야만 될까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선거판이 벌어지고 반가웠던 스님들끼리 서먹한 사이가 돼 또 어떻게 정다워지지 하는 걱정을 하기도 했습니다.그러나 이제 종단도 좋은 지도자를 모셨으니 국민들에게 신뢰받는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습니다.
올해는 비가 잦아 가야산 단풍도 시원치 않다고 합니다.전국의 단풍도 예년같지는 않다고 합니다.내년에는 날씨가 순조로워 좋은 단풍이 들 것을 기대해 봅니다.
[圓澤 조계종 총무부장]
1999-11-20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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