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 후반기의 억압장치였던 긴급조치 9호는 ‘미친 새’의 작가에게 “독재는 인정한다.또 그렇게 쓸 수도 있다.그런데 그 독재를 없애는 방법이 무엇이냐”를 집중적으로 추궁했다.우화소설인 이상 문학작품 그 자체를 심판하기에는 부담을 느낀 수사기관이 정부 전복을 위한 조직사건으로 몰아가고자 시도했으나 전혀 그런 기미가 없었던 게 이 작가의 주된 석방 이유였을것이다.
‘미친 새’는 닭 사육장을 무대로 삼는다.“사육사가 엄격히 정해 놓은 규율에 따라서” 행동하는 닭들은 철조망에 갇혀,주는 먹이로 자라다가 언젠가는 통닭집으로 끌려가는 신세이다.작가는 닭들의 삶을 이렇게 요약해 준다.
“…주는대로 먹고,살라는 곳에서 살고,낳으라는 만큼의 새끼를 까고,드시겠다는 만큼 아낌없이 몸을 바치고,조용하라,하면 조용하고,떠들라,명령하면싫어도 떠들고,웃음과 슬픔과 기쁨은 이미 아득한 옛날에 잊어버린 닭이라이겁니다.옛날을 생각하며,풀 많고,물 많고 한없이 자유스러웠던 전설 속의고향을 그리워 하며,이리 가라면 짹소리 못하고 이리 가고,목포 가라면 또수긋수긋이 거기 가면서 속절없이 세월만 보내고,복종과 충성심이 강하고,맹목적으로 속기 잘하는 개떡같은 닭새끼의 무리랍니다.” 이런 울타리 속에 갇힌 닭들에게 사육사는 “바깥 세상은 무서워.나가기만하면 당장 삵괭이한테 물려 죽을 거야.너희들을 가두어 놓는 것은 다 너희들을 잘 먹이고 잘 입히고 잘 살게하기 위해서야”라는 복음주의를 설파해 대며,닭들은 긴가 민가 하면서도 별 뾰죽한 수가 없기에 숙명적인 삶을 수용한다.그들은 수시로 저항력의 상징인 발톱을 잘리면서 개의 감시 아래 사육사의 소망대로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는 사라지곤 한다.
이런 무리 속으로 뛰어든 미친 닭(곧 자칭 새라기에 미친 닭이 된다)은 처음엔 다른 닭들로부터 온갖 잔혹한 학대를 받지만 “나는 닭이 아니라 새다”며,“우리들에게는 일찍이 날개가 있었고,지금도 있다.그러나 사육사들이갖다붙인 갖가지 이유에 의해서 날개를 사용하는 데 대한 규칙이 까다로워지고,또한 은근히 그것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강요되어온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우리는 항용 우리 자신에게 과연 날개라는 것이 있는 것인가,또는 그것이 환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인가,하고 의심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고 깨우쳐 준다.이어 그는 닭장의 왕초를 향하여 “당신도 샙니다”는 신념을 심어주어 드디어 둘은 철조망과 그물을 벗어나려는 듯이 날기 연습에 열중한다.
미친 새는 왕초에게 자신이 겪었던 비참한 체험이었던 양계장,밤낮도 없이전깃불 아래 갇혀 계속 알만 낳아야만 했던 곳에서 탈출하고자 자신의 알을쪼아대다가 주둥이를 뭉퉁하게 잘려 쫓겨나 이곳으로 오게된 경위를 설명해준다.그리곤 이곳의 닭들도 알을 낳을 수 있게되면 바로 그 전깃불 밑으로가게 되는데,그런 꼴을 안 당하는 방법은 오직 한가지,새가 되어 날아 도망치는 길 뿐이며,그걸 위해서라면 차라리 굶어도 좋다는 신념을 전파했다.
감동 받은 왕초와 미친 새는 날기 연습에 열중하다가 너무 몸통이 무겁다고 느껴 이튿날부터 단식을 단행하게 되었는데,그게 빌미가 되어 둘은 처참하게 살해 당하고 말았다.다른 닭들은 동료의 죽음 앞에서 “조상 대대로물려받은 비굴한 전통”을 고수하면서 침묵 속에 “서로의 눈치를 슬금슬금 살피면서 모이통에 접근해서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미친 듯이 사료를 먹기 시작했다.” 포만 속에서 누군가 “우린 새가 아니고 닭이야”란 독백으로 끝나는 이 우화는 유신 독재의 상황을 통열하게 풍자해 준 문제작이었다.
任軒永 문학평론가
‘미친 새’는 닭 사육장을 무대로 삼는다.“사육사가 엄격히 정해 놓은 규율에 따라서” 행동하는 닭들은 철조망에 갇혀,주는 먹이로 자라다가 언젠가는 통닭집으로 끌려가는 신세이다.작가는 닭들의 삶을 이렇게 요약해 준다.
“…주는대로 먹고,살라는 곳에서 살고,낳으라는 만큼의 새끼를 까고,드시겠다는 만큼 아낌없이 몸을 바치고,조용하라,하면 조용하고,떠들라,명령하면싫어도 떠들고,웃음과 슬픔과 기쁨은 이미 아득한 옛날에 잊어버린 닭이라이겁니다.옛날을 생각하며,풀 많고,물 많고 한없이 자유스러웠던 전설 속의고향을 그리워 하며,이리 가라면 짹소리 못하고 이리 가고,목포 가라면 또수긋수긋이 거기 가면서 속절없이 세월만 보내고,복종과 충성심이 강하고,맹목적으로 속기 잘하는 개떡같은 닭새끼의 무리랍니다.” 이런 울타리 속에 갇힌 닭들에게 사육사는 “바깥 세상은 무서워.나가기만하면 당장 삵괭이한테 물려 죽을 거야.너희들을 가두어 놓는 것은 다 너희들을 잘 먹이고 잘 입히고 잘 살게하기 위해서야”라는 복음주의를 설파해 대며,닭들은 긴가 민가 하면서도 별 뾰죽한 수가 없기에 숙명적인 삶을 수용한다.그들은 수시로 저항력의 상징인 발톱을 잘리면서 개의 감시 아래 사육사의 소망대로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는 사라지곤 한다.
이런 무리 속으로 뛰어든 미친 닭(곧 자칭 새라기에 미친 닭이 된다)은 처음엔 다른 닭들로부터 온갖 잔혹한 학대를 받지만 “나는 닭이 아니라 새다”며,“우리들에게는 일찍이 날개가 있었고,지금도 있다.그러나 사육사들이갖다붙인 갖가지 이유에 의해서 날개를 사용하는 데 대한 규칙이 까다로워지고,또한 은근히 그것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강요되어온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우리는 항용 우리 자신에게 과연 날개라는 것이 있는 것인가,또는 그것이 환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인가,하고 의심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고 깨우쳐 준다.이어 그는 닭장의 왕초를 향하여 “당신도 샙니다”는 신념을 심어주어 드디어 둘은 철조망과 그물을 벗어나려는 듯이 날기 연습에 열중한다.
미친 새는 왕초에게 자신이 겪었던 비참한 체험이었던 양계장,밤낮도 없이전깃불 아래 갇혀 계속 알만 낳아야만 했던 곳에서 탈출하고자 자신의 알을쪼아대다가 주둥이를 뭉퉁하게 잘려 쫓겨나 이곳으로 오게된 경위를 설명해준다.그리곤 이곳의 닭들도 알을 낳을 수 있게되면 바로 그 전깃불 밑으로가게 되는데,그런 꼴을 안 당하는 방법은 오직 한가지,새가 되어 날아 도망치는 길 뿐이며,그걸 위해서라면 차라리 굶어도 좋다는 신념을 전파했다.
감동 받은 왕초와 미친 새는 날기 연습에 열중하다가 너무 몸통이 무겁다고 느껴 이튿날부터 단식을 단행하게 되었는데,그게 빌미가 되어 둘은 처참하게 살해 당하고 말았다.다른 닭들은 동료의 죽음 앞에서 “조상 대대로물려받은 비굴한 전통”을 고수하면서 침묵 속에 “서로의 눈치를 슬금슬금 살피면서 모이통에 접근해서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미친 듯이 사료를 먹기 시작했다.” 포만 속에서 누군가 “우린 새가 아니고 닭이야”란 독백으로 끝나는 이 우화는 유신 독재의 상황을 통열하게 풍자해 준 문제작이었다.
任軒永 문학평론가
1999-09-01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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