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언내언] 남북한 白凡회고모임

[외언내언] 남북한 白凡회고모임

김삼웅 기자 기자
입력 1999-04-22 00:00
수정 1999-04-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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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민족화해협의회(민화협)가 백범(白凡) 김구(金九)선생 50주기가 되는 6월 26일 평양에서 남한 인사들을 초청하여 김구선생 회고모임을 갖는다고 한다.

백범선생 50주기를 앞두고 한국에서는 대한매일신보사가 ‘백범김구전집’12권을 편찬중인 것을 비롯,여러가지 행사가 준비되고 있는 터에 북한의 ‘김구선생 회고모임’개최는 의미있는 행사라 하겠다.

해방공간에서 통일정부 수립을 위한 마지막 시도라 할 남북의 최고정치지도자 4김회담이 1948년 4월 30일 평양 김두봉의 집에서 열렸다. 남쪽의 김구·김규식과 북쪽의 김일성·김두봉이 참석한 이 회담은 분단으로 질주하는 해방정국의 마지막 ‘제어장치’였다.

4김회담이 열리기에 앞서 평양에서는 ‘남북한 정당사회단체지도자협의회’란 긴 이름의 남북요인 15인 회담이 열렸다. 남측대표는 김구·김규식·조소앙·조완구·홍명희·김봉준·엄항섭, 북측대표로는 김일성·김두봉·최용건·박헌영·주영하·허헌·백남운 등이 참석했다. 이 요인회담은 해방 후 좌우익과 중도파 지도자가 모여 외국군을 철수시키고 통일민족국가를 수립하고자 하는 최초, 최후의 모임이었다. 남북협상에 비판적인 이승만과 연금상태의 조만식이 불참하기는 했지만 그야말로 남북지도자들이 한자리에 모이게된 절호의 기회였다.

요인회담에서는 △진정한 민주국가 건설△사유재산제도 승인 △통일중앙정부 수립 △군사기지 불제공 △미·소 양군 철수 등이 논의되고 이것은 4김회담에서 4개항으로 조정·채택되었다.

백범은 특히 수풍발전소의 송전 계속과 조만식의 월남 허용, 하얼빈 안중근의사 유해를 서울로 봉환할 수 있도록 북측의 두 김씨에게 간곡하게 요청하였다. 그해 9월 22일 중국에 묻혀있던 이동녕·차이석 선생의 유해를 봉환하여 효창공원에 안장하였기 때문에 안의사의 유해봉환 문제는 백범으로서는애절한 동지애의 발로였다. 그러나 북측은 소련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면서회답을 피하였다.

4김회담과 남북요인회담으로 조성된 남북협상파의 통일정부 수립 노력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북측의 정치적 이용과 하지 중장의 비협력, 양측 단정수립 세력에 의해좌절된 것이다.

그로부터 51년의 세월이 지났다. 당시 요인회담에 참석했던 인사들은 대부분 작고했다. 남한에는 김규식선생의 비서 송남헌씨, 신창균씨 그리고 당시백범을 수행한 아들 김신씨가 생존해 있다. 민족의 거성(巨星) 백범을 회고하는 모임이 성사되도록 남북한 정부 당국에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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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三雄주필 kimsu@]
1999-04-22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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