굄돌-한자말 서양말에 밀려나는 우리 말

굄돌-한자말 서양말에 밀려나는 우리 말

이오덕 기자 기자
입력 1999-02-10 00:00
수정 1999-0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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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분이 2학년 어린이가 쓴 것이라면서 어디 발표했던 글을 가져 왔다.제목이 ‘내 동생’인데 첫머리가 이렇다.나한테 단 하나 있는 동생 현욱이는다섯 살이다.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현욱이가 집안에 있는 과일을 상 위에 모두 올려 놓고 “과일 사세요.싸요 싸요오.손님,사세요.싸요,예?” 나는 시끄럽게 떠드는 동생이 귀찮아서 “얼마예요?”하고 물었다.“1,000원요!”했다. 나는 “체,너무 비싸요.아저씨,깎아주세요.깎아주면 살께요.” 그랬다. 그런데 현욱이는 난처한 표정을 지으면서 “손님,못깎아 줘요! 칼 없어요.칼이 없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너무나 웃겨서 넘어질 뻔했다. 여기 나오는 다섯 살짜리 아이는 과일을 ‘깎는다’는 말은 알아도 물건 값을 ‘깎는다’는 말은 모른다.‘싸다’‘비싸다’를 알고,물건 파는 어른들 흉내를 내는 아이라면 값을 깎는다는말을 알 것 같은데 모른다.아마도 요즘 어른들이 ‘깎는다’는 말을 안하기때문일 것이다.이 어린 아이가 ‘할인한다’든지 ‘세일한다’는 말은 알는지 모른다 싶어 서글퍼진다. 어느 신문에 한 작가의 글이 실렸는데 그 얘기가 이렇다.자기 집 강아지 이름을 썰렁이라 지었는데,하루는 딸아이가 썰렁이에게 소리를 지르면서 “나무! 나무! 그러지 말라 했지,나무!”했다는 것이다.궁금해서 “왜 썰렁이한테 나무라 해?”하고 물었더니 “어휴,책에 이렇게 하라고 써 있어요.”하면서 ‘애견 기르기’란 책을 펴 보이는데,거기에는 ‘애견이 말을 안 들을 때는 나무라십시오’라 씌어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 이 아이는 ‘나무’는 알아도 ‘나무란다’는 말을 모르는 것이다.이 작가가 쓴 짧은 글에서도 어린애가 ‘근엄한’ 표정으로 소리를 질렀다고 하고,‘불만을 토로했었다’고 썼는데,어른들의 말이 이렇게 되니까 아이들도 우리 말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면서 자라나는 것이다.

1999-02-1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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