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청공방과 건망증(金在晟의 정가산책)

감청공방과 건망증(金在晟의 정가산책)

김재성 기자 기자
입력 1998-10-27 00:00
수정 1998-10-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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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청을 둘러싸고 국회에서 벌어지는 여야 공방을 보고 있으면 혼란을 느낀다.여야 모두 건망증에 걸린듯 과거 자신들의 정체성과는 상반되는 주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판문점 총격요청사건 이후 야당은 수사기관의 감청을 집중적으로 문제삼고 있다.“감청이 남용되고 있다”며 “통신비밀보호법을 개정,감청 허용요건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통신비밀보호법은 94년에 만들어졌다.그때까지 ‘낮말은 남산(안기부)이 듣고 밤말도 남산이 듣는다’고 할 정도로 정보기관의 도청(盜聽)은 공공연했다.이에 진저리가 난 당시 야당이 노래를 부르다시피 해서 이 법을 입법화한 것이다.

내란,외환 외에 강도,강간 등 일반범죄까지 합법적인 감청을 허용한 이 법은 정치사찰(불법도청) 방지와 함께 범죄사건의 신속한 해결에 목적을 두었다.당시 여당은 후자를 염두에 두었음은 물론이다. 참고로 경찰청 집계 98년 범죄발생건수를 보면 9월말 현재 24만5,000여건으로 97년 같은 기간보다 2만7,000여건(12.3%)이 증가했다.물론 미제사건도 이에 비례한다.따라서야당이 감청만을 가지고 정부를 비난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 것 같다.그리고 “감청 허용요건을 강화하라”고 주장하는 것도 당의 정체성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그보다는 오히려 “감청 허용범위를 넓혀서라도 민생치안에 만전을 기하라”고 해야 당의 색깔에 맞지 않을까.

거꾸로 가기는 여당도 마찬가지다.과거 불법도청의 최대 피해자인 여당이 올들어 1,631건(3,580대)의 감청에 대해 “불법감청은 없다”고만 하는 것이 과연 능사일까.

올해 감청 허용의 93.2%가 강간,사기 등 일반범죄다.이렇듯 광범위하게 허용된 감청이 오용되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할까.따라서 여당은 “감청 허용범위를 축소,사생활 침해 소지를 없애자”고 해야 당의 정체성과 부합된다.97년 미국 수사기관의 감청이 1,180건인 것을 감안하면 한 사람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한 사람의 사생활 침해를 막는 것이 민주사회로 가는 길이 아니겠는가.<부장급기자 jskim@seoul.co.kr>
1998-10-27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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