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문을 열어라­기업대출 왜 꺼리나

은행문을 열어라­기업대출 왜 꺼리나

오승호 기자 기자
입력 1998-10-26 00:00
수정 1998-10-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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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빌려주고 받을 자신 없다” 몸사리기/“부실 대출땐 책임만” 볼멘소리/“中企 신용도 제고 앞서야” 지적

“잘해도 본전이고 부실이 생기면 문책대상이다” “중소기업의 회계장부를 믿을 수가 없다” “돈을 빌려주고 싶어도 받아낼 수 있다는 확신이 없는데 어떻게 하란 말이냐”

돈은 넘쳐 흐르는데 왜 대출에 적극 나서지 않느냐는 물음에 대해 은행 일선 창구에서 터져나오는 목소리들이다.

정부는 은행권의 몸 사리기를 질타하며 대출을 독려하고 있으나 은행권에서는 대출이 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

S은행의 李모 지점장은 “지점장이 발로 뛰어서 대출을 잘 해주면 본전이지만 대출이 부실로 이어지면 문책받기 때문에 몸을 움츠릴 수밖에 없다”며 “본점에 심사역들을 많이 둬 대출심사를 전담하고,지점에서는 본점에서 가이드라인을 준 부분에 대해서는 면책해 줘야 한다”고 밝혔다.

H은행 중부지점 대출창구의 한 대리는 “대기업 직원이라도 언제 퇴직당할지 모르기 때문에 직장 이름만 보고 대출해 주던 시대는 지났다”며 “연체자 인적사항이나 재산상태의 파악 등 사후관리가 급증한 데다 은행의 인원정리가 겹쳐 일손이 모자란다”고 토로했다.

일선창구 직원들은 기업구조조정이 끝나지 않아 신용경색이 풀리지 않은데다 본점 임원이 지시하더라도 그 임원이 언제 어떻게 될 지 몰라 지시를 따르기도 쉽지 않다고 털어놓는다.

K은행 여신기획부 金모 차장은 “유동성이 풍부해지면서 대출을 늘릴 수 있는 여력이 생겼으나 기업들의 투자수요는 줄고 있다”며 “경기가 되살아날 기미가 없는 상황에서 은행이 한계기업에 돈을 대 줄 수는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중소기업에 대한 보증 전담기관인 신용보증기금의 일선 영업점도 보증에 따른 책임이 강화됐기 때문에 움직이지 않는 점은 은행과 비슷하다고 덧붙였다.

중소기업 전담은행인 기업은행의 K모 지점장은 “내수가 워낙 위축돼 있어 수출·무역업체 중심으로 대출 수요처를 찾고 있다”며 “그러나 세금문제로 매출액을 줄여 기장(記帳)하는 중소기업이 적지 않아 기업과의 거래에서 신용이 정착되지 않고 있다”고 대출기피 원인을 들었다.

한양대 경영학과 姜柄晧 교수는 “경기에 대한 불확실성이 돈이 돌지 않게 하는 근본 원인”이라며 “금융기관을 다그치는 것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정부가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을 떨어내는 데 주력하고,금융기관의 인원정리가 마무리되고 나면 대출기피 현상은 나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우경제연구소 李漢久 사장은 “중소기업의 신용도를 끌어올리는 방안과 함께 정부는 규제개혁 등으로 기업의 채산성을 높이는 일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吳承鎬 朴恩鎬 기자 osh@seoul.co.kr>
1998-10-26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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