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장한 재계 “대세는 따라야”/총수 재산 헌납…빅딜…기조실 폐쇄

긴장한 재계 “대세는 따라야”/총수 재산 헌납…빅딜…기조실 폐쇄

권혁찬 기자 기자
입력 1998-02-10 00:00
수정 1998-0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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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 내세운 독촉에 냉가슴/주총 앞두고 강도 높여 난감/내심은 불만… 실무작업 진행

재계가 새 정부의 정책기조를 따라가느라 숨가쁘다.개혁적인 정책주문에 당혹해 하면서도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자 일단 받아들이고 쫓아가는 모습이다.

재계는 총수재산 헌납과 빅딜(사업 맞교환) 등 시장경제원칙과 거리가 있는 정책 기조로 한바탕 홍역을 치른 데 이어 회장 비서실과 기조실의 조기 해체 방침마저 공론화되자 당혹해 하는 분위기다.특히 ‘정책·실물경험이 없는 서생’으로 평가되는 인사가 청와대 수석후보에 거론되자 새 정부 정책기조의 ‘격변성’을 예견하며 아연 긴장하는 분위기마저 돌고 있다.그렇다고 자율의 이름으로 변혁을 촉구하는 새 목소리에 귀 귀울이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벙어리 냉가슴’이다.

S그룹 관계자는 “결합재무제표를 도입하고 상호지급보증을 해소해야 할 주체(회장실 등)를 해체하라니 어떻게 하라는 얘긴 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터뜨렸다.D그룹 회장실 관계자는 “연차별 부채비율 감축계획이나 상호지급보증 해소계획은 그동안 개선을 위해 노력해온 만큼 어느정도 가능하지만 주총이 코앞에 닥친 상태에서 회장실이나 기조실을 없애라는 것은 구조조정 작업을 하지 말라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꼬집었다.

재계는 9일 전경련회관에서 이헌재 비상경제대책위원회 기획단장을 초청,간담회 형식으로 새 정부의 재벌정책 방향과 수위를 읽었다.이단장은 이날 기조발언에서 기업개혁의 대강을 언급했다.“무엇보다 국제금융시장과 외국인투자가에 투명성과 책임경영의 명확한 증거를 보여주어야 한다.외채협상은 우리 경제문제 해결의 실마리일 뿐이다.기업은 회계제도를 국제기준에 부합되게 하고 재무관련 정보를 공개해야 하며 재무구조 개선노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같은 취지에 따라 이번 주말까지 구조조정 계획을 내달라고 했다.어디까지나 자율을 내세운 주문이었지만 사실은 촉구였다.

이단장의 기조발언 중심으로 진행된 이날 ‘기조실임원 운영위원회’는 이단장의 일정때문에 활발한 토론이 이뤄지지는 못했지만 참석 임원들은 새 정부 정책기조의 감을잡을 수 있었다.30대 그룹은 구조조정계획 제출에 응하기로 하고 새 정부 재벌정책에 대한 재계 목소리는 별도로 정리해 정부에 제출키로 했다.

이에 따라 각 그룹들도 불만 속에서 실무작업을 진행 중이다.삼성그룹은 이건희 회장이 계열사 대표이사를 맡거나 대주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비서실 관계자는 “새 정부가 지주회사 설립에 대해 명확한 입장이 없는 상태에서 비서실을 해체할 경우 결합재무제표 작성 등의 업무를 맡을 조직이 필요하다”면서 “이에 따라 현재 계열사별로 운영 중인 소그룹제를 활성화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밝혔다.

대우그룹은 김우중 회장이 당선자와 만난 뒤 밝힌 대로 이달 중순까지 구조조정안을 예정대로 발표키로 했다.회장실 관계자는 “이날 빅딜과 관련된 언급이 없었던 점에 주목한다”고 말했다.

현대그룹 관계자도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핵심부서가 없어지면 어떻게 하느냐”고 난감해 하면서 “비대위측의 요구를 수용,주주총회때까지 대안을 모색해야 하겠지만 아직 뚜렷한 방법이없다”고 고충을 토로했다.SK그룹은 업종줄이기와 지급보증 해소,부채비율 축소 등의 내용을 담은 구조조정 계획을 14일까지 제출할 방침이다.한 관계자는 “그동안 경영기획실 규모를 절반인 60명 수준으로 줄여온데다 남아있는 기능도 인력관리와 홍보 등이어서 해체시 오히려 비용부담이 늘어난다”며 “구조조정 계획에 기획실해체 문제를 담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권혁찬·손성진 기자>
1998-02-10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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