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와 문화위기/임영숙 논설위원(서울논단)

‘IMF’와 문화위기/임영숙 논설위원(서울논단)

임영숙 기자 기자
입력 1998-01-21 00:00
수정 1998-01-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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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음악무대에는 피아노 공연이 많아질 것이라고 한다.예술의 전당,세종문화회관 등 주요공연장의 대관일정이 이를 예고하고 있다는 것이다.

피아노는 성악이나 현악과 달리 반주자 없이 독주가 가능하다.공연기획사로서는 다른 연주회 보다 경비를 줄일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이런 상황이 바로 지금 우리 문화계의 현주소다.

그만큼 문화계는 얼어 붙었다.아니 얼어 붙은 정도가 아니라 뒷걸음질 하고 있기도 하다.지난 시대의 신파극이 국제통화기금(IMF)시대 중·장년층의“울고 싶은 마음”을 겨냥해 때아닌 흥행 성과를 올리고 있다.문화적 퇴행현상이다.

“21세기는 문화의 세기”라고 하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지금 우리 문화는 위기에 처해 있다. 나라가 총체적 경제위기에 직면한 판에 “문화가 밥 먹여주느냐”고 이런 현실을 무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정치·경제는 수단에 불과하며 그 수단이 봉사하는 목적은 문화다.따라서 아무리 경제가 어렵더라도,아니 그럴수록 더욱 문화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사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국가적 위기는 넓은 의미에서의 문화적취약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문화계는 김대중 대통령당선자에게 큰 기대를 갖고 있다.대통령 선거 이전에도 문화현장과 가장 가까운 후보로 꼽혔던 김당선자는 당선 다음날 기자회견에서 문화정책에 대한 소견을 “빠뜨리지” 않았다.국가부도 위기의 숨막히는 상황에서 비록 몇마디 안되는 이야기라도 문화에 대한 관심을 표명했다는 것에 문화계는 감동했다.

그럴수 밖에 없는 것이 지난 ‘문민정부’에서는 오히려 문화가 홀대 받았기 때문이다.군사정권 시절에는 그 정통성을 치장하기 위해 문화에 대한 배려가 장식적으로나마 이루어졌으나 지난 5년동안은 그런 들러리로서의 역할마저도 무시 당했다.문화부가 문화체육부로 바뀌었고 대통령의 연두교서에서도 문화에 대한 언급은 사라졌다.

당선자에 대한 기대에서인가,아니면 위기의식의 발로인가.지금 문화계에서는 문화정책에 관한 논의가 한창이다.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민예총)이 두차례에 걸쳐 문화정책 포럼(15·21일)을 마련했고 평론가들을 중심으로 ‘IMF시대 문화불황 극복 방안’세미나도 열렸다.출판계에서도 새 문화청사진을 제시하기 위한 모임을 준비중이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논의의 초점이 좁은 의미의 문화에 모아지고 있는 듯하다.정부조직 개편과 관련해 문화체육부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 하는 것도그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

○부처통합 능사 아니다

중요한 것은 문화체육부를 문화부로 바꿀것인가 교육문화부로 통합할 것인가가 아니다.우리 사회의 가치와 이념,목표에 대한 합의를 확보하는 문화정책을 어떻게 수립하고 실천하느냐 이다.

민예총의 2차 문화정책 포럼에서 주제발표자로 나서는 도정일 교수(경희대)는 “해방이후 어느 정권도 민주주의 체제로의 변화와 함께 민주주의 문화가 필요하다는 인식과 이를 뿌리내리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면서 “우리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합리적 시민문화의 부재”라고 말한다.문화에 대한 보다 근본적이고 폭넓은 인식이 필요하다는 그의 발언은 경청할만 하다.

○‘가난한 예술’ 바탕으로

비트겐슈타인이 말했듯이 “문화란 커다란 유기체”로서 “그 구성원 한사람 한사람에게 각자가 전체의 정신에 의거하여 일 할 수 있는 장소를 할당”해 준다.사회 통합 기능으로서의 문화를 중요시 하는 문화정책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문화의 생산과 향유라는 좁은 의미의 문화도 이 위기의 시대가 기회가 될 수 있다.기업의 지원을 받아 외형적으로 팽창했던 우리 문화계의 거품은 사실 “참을수 없는 문화의 가벼움”을 안겨 주었을 뿐이다.20~30년대 경제공황기의 미국,IMF시대 멕시코의 문화예술계가 그랬듯이 우리 문화예술계도 ‘가난한 예술’을 바탕으로 문화의 건강성을 회복해야 한다.‘문화의 세기’ 21세기 한국문화는 그런 단련을 통해 진정한 꽃을 피울 수 있을 것이다.문화계의 자기반성은 그 시발점이다.
1998-01-21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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