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설과 상식 향한 반기/“근대미술 기점은 19세기 중엽” 주장/일제시대 미술 새로운 시각서 다뤄
19세기 중엽부터 20세기 전반에 이르는 근대미술의 태동기는 한국미술사에서 더없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근대미술은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문헌자료의 절대적인 부족과 고증의 불확실성으로 말미암아 여전히 ‘암흑시대’로 남아있다. 한국 근대미술을 한수 접어보려는 식민사관에 물든 미술계 일각의 비뚤어진 시각과 학계의 무관심,연구역량의 부재 등이 이같은 지적 야만상태를 초래한 것이다. 최근 출간된 미술평론가 최열씨(42·가나미술연구소 기획실장)의 ‘한국근대미술의 역사’(열화당)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1800∼1945년의 한국 근대미술사를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적극적인 평가를 받을 만하다.
기존의 한국 근대사 관련 연구서들은 작품론이나 작가론들이 주류를 이뤘다. 그것들은 대부분 문헌자료에 대한 기초조사가 빈약한 상태에서 이루어진 만큼 주관이 앞설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은 5년동안에 걸친방대한 자료조사와 철저한 문헌비판을 통해 ‘주관성의 오류’ 내지 ‘일반화의 오류’를 줄이는 데 무엇보다 역점을 뒀다.
이 책은 우리 근대미술의 기점을 19세기 중엽으로 잡는다. 이것은 1910년대 일본을 통한 서양회화의 이식을 근대의 기점으로 내세우는 기존의 관점에 대한 명백한 도전이어서 관심을 모은다. 19세기와 20세기를 봉건의 미망과 근대의 환영에 빠져 중국과 서구 베끼기를 각각 되풀이하던 시대로 보는 단순논리나,근대를 서구의 수용으로 단순화시키는 단선적인 방법론과는 차원을 달리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지은이는 19세기의 철학자 최한기가 내세웠던 활동운화와,그보다 한세대 앞선 박지원이 즐겨 썼던 법고창신,그리고 두 사람 모두 꾀했던 실사구시의 정신을 바람직한 미술사관으로 제시한다. 이것이야말로 19세기 중엽 신감각파를 이끈 서화계의 거두 조희룡이나,20세기초 근대미술사학의 꽃을 피운 오세창과 고유섭,20세기 전반기를 가장 힘겹고 뜨겁게 살다간 미술가 김복진과 윤희순 등의 예술정신과도 맥을 같이하는것이라는 지적이다. 이 책은 기존의 통설 또는 상식에 과감하게 반기를든다. 하나의 예로 일제시대 조선인 미술가들의 최대 연합단체인 서화협회의 주도인물은 고희동이 아니라 개화자강론자인 오세창으로부터 안중식, 이도영으로 이어지는 세력이라는 것.
일본은 서구 근대주의 미술을 조선에 옮겨오는 ‘문화의 거름종이’와 같은 역할을 했다. 이 책에서는 ‘친일미술’을 ‘전시체제미술’이란 항목으로 다루는 한편 식민지 미술가로서의 글쓰기의 정황도 낱낱이 살핀다. 특히 많은 미술인들이 창씨개명에 나서는 일제하 현실에서 가장 활발한 미술 문필활동을 펼쳤던 윤희순에 대해 소상히 다룬다. 윤우인·윤고산 등의 필명을 사용했던 윤희순은 당대의 현실에 맞서 한 사람의 예술가로서 ‘대사일번의 심도’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그는 결코 예술의 순수성을 저버리지 않았다. 그는 전란시기에 처해 위대한 예술가들은 평화시대보다 더 훌륭한 작품을 남겼다는 글도 발표했다. 그가 위대한 예술가로 내세운 인물은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원말사대가와 팔대산인,석도등이다. 지은이는 이러한 윤희순의 담론을 순수성을 잃은 전쟁화를 짐짓 비켜가기 위한 의도로 풀이한다.<김종면 기자>
19세기 중엽부터 20세기 전반에 이르는 근대미술의 태동기는 한국미술사에서 더없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근대미술은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문헌자료의 절대적인 부족과 고증의 불확실성으로 말미암아 여전히 ‘암흑시대’로 남아있다. 한국 근대미술을 한수 접어보려는 식민사관에 물든 미술계 일각의 비뚤어진 시각과 학계의 무관심,연구역량의 부재 등이 이같은 지적 야만상태를 초래한 것이다. 최근 출간된 미술평론가 최열씨(42·가나미술연구소 기획실장)의 ‘한국근대미술의 역사’(열화당)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1800∼1945년의 한국 근대미술사를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적극적인 평가를 받을 만하다.
기존의 한국 근대사 관련 연구서들은 작품론이나 작가론들이 주류를 이뤘다. 그것들은 대부분 문헌자료에 대한 기초조사가 빈약한 상태에서 이루어진 만큼 주관이 앞설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은 5년동안에 걸친방대한 자료조사와 철저한 문헌비판을 통해 ‘주관성의 오류’ 내지 ‘일반화의 오류’를 줄이는 데 무엇보다 역점을 뒀다.
이 책은 우리 근대미술의 기점을 19세기 중엽으로 잡는다. 이것은 1910년대 일본을 통한 서양회화의 이식을 근대의 기점으로 내세우는 기존의 관점에 대한 명백한 도전이어서 관심을 모은다. 19세기와 20세기를 봉건의 미망과 근대의 환영에 빠져 중국과 서구 베끼기를 각각 되풀이하던 시대로 보는 단순논리나,근대를 서구의 수용으로 단순화시키는 단선적인 방법론과는 차원을 달리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지은이는 19세기의 철학자 최한기가 내세웠던 활동운화와,그보다 한세대 앞선 박지원이 즐겨 썼던 법고창신,그리고 두 사람 모두 꾀했던 실사구시의 정신을 바람직한 미술사관으로 제시한다. 이것이야말로 19세기 중엽 신감각파를 이끈 서화계의 거두 조희룡이나,20세기초 근대미술사학의 꽃을 피운 오세창과 고유섭,20세기 전반기를 가장 힘겹고 뜨겁게 살다간 미술가 김복진과 윤희순 등의 예술정신과도 맥을 같이하는것이라는 지적이다. 이 책은 기존의 통설 또는 상식에 과감하게 반기를든다. 하나의 예로 일제시대 조선인 미술가들의 최대 연합단체인 서화협회의 주도인물은 고희동이 아니라 개화자강론자인 오세창으로부터 안중식, 이도영으로 이어지는 세력이라는 것.
일본은 서구 근대주의 미술을 조선에 옮겨오는 ‘문화의 거름종이’와 같은 역할을 했다. 이 책에서는 ‘친일미술’을 ‘전시체제미술’이란 항목으로 다루는 한편 식민지 미술가로서의 글쓰기의 정황도 낱낱이 살핀다. 특히 많은 미술인들이 창씨개명에 나서는 일제하 현실에서 가장 활발한 미술 문필활동을 펼쳤던 윤희순에 대해 소상히 다룬다. 윤우인·윤고산 등의 필명을 사용했던 윤희순은 당대의 현실에 맞서 한 사람의 예술가로서 ‘대사일번의 심도’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그는 결코 예술의 순수성을 저버리지 않았다. 그는 전란시기에 처해 위대한 예술가들은 평화시대보다 더 훌륭한 작품을 남겼다는 글도 발표했다. 그가 위대한 예술가로 내세운 인물은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원말사대가와 팔대산인,석도등이다. 지은이는 이러한 윤희순의 담론을 순수성을 잃은 전쟁화를 짐짓 비켜가기 위한 의도로 풀이한다.<김종면 기자>
1998-01-14 23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