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와 지도자의 덕목/전인영 서울대 교수·국제정치학(서울광장)

위기와 지도자의 덕목/전인영 서울대 교수·국제정치학(서울광장)

전인영 기자 기자
입력 1998-01-03 00:00
수정 1998-01-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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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후없는 위기는 없다

우리 국민은 지난 연말부터 국가부도라는 최악의 경제난에 처하게 될지 모른다는 엄청난 공포와 무력감 및 분노를 느끼며 살아왔다.다행히 한국은 국제금융기구(IMF)와 선진국들의 1백억달러 규모의 구제금융을 조기에 제공하기로 결정함으로써 급박한 외환위기를 모면했지만,외환위기의 재발 가능성은 상존한다.한국이 경제위기에 직면할지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한보사태이후에 우리 사회에 나돌았고 7월에는 태국에서 심각한 외환위기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현 정권은 상황판단을 잘못하고 방심함으로써 실기하여 돌이킬 수 없는 위기국면을 초래하고 사태해결을 훨씬 어렵게 만들었다.

위기는 예고없이 돌연이 오지 않는다.심각한 위기상황이 발생하기 전,대개는 위기의 발생을 알리는 징후나 신호들이 어떤 형태로든 나타나기 마련이다.일반적으로 위기는 갈등이나 문제들이 해소되지 않은 채 지속되다가 어느시점에 도달해 급격히 심화되면서 발생하는 것이 상례다.따라서 평소에 문제의 중요성과 심각성을 제대로 파악하여 대처하거나 미리 악화되지 않도록 시의 적절한 조치를 취한다면 심각한 위기사태 미연방지 또는 피해 극소화가 가능하다.

위기징후는 IMF사태와 같은 경제위기에서만 탐지되는 것이 아니다.정치·이념적 위기,사회적 위기,외교적 위기,군사적 위기,또는 개인의 정신적·육체적 위기에서도 위기징후나 신호는 표출되기 마련이다.위기발생 요인들이 잠재해 있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폭발하는 경우도 있으나 대개는 위기징후들이 탐지되거나 작은 위기(Mini Crisis/Baby Crisis)가 발생하여 본격적 위기의 도래를 예고한다.따라서 위기는 평소에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 나간다면 사전 방비가 가능하다.반면에 둔감한 사람들은 위기 도래 징후들을 제때에 파악하지 못하거나 경시하다가 뒤늦게 감당하기 힘든 대가를 치르고 만다.우리는 과도한 정경유착,재벌기업들의 방만한 기업경영과 무분별한 외자도입,노·사갈등,그리고 국민의 소비풍조 및 강인한 정신력 상실 등이 위험수위에 차 오르고 있음을 알면서도 방치하다가 오늘과 같은 심각한 경제위기를 맞았다.그 결과 온국민이 어둡고 긴 터널을 벗어나기 위한 엄청난 고통과 희생을 치르게 되었다.

○상황 진단 후 관리 주력해야

위기관리를 위해서는 우선 위기의 성격과 유형 및 심각성 정도를 정확히 파악하고,이를 토대로 ‘위기상황의 정의’를 내려야 한다.일단 위기상황에 대한 정의가 내려지면 위기상황을 안정시키고 확산 방지를 위한 위기관리에 힘써야 한다.국가마다 주어진 여건과 능력을 감안하여 위기관리 전략을 올바르게 수립하여야 하며,일단 결정된 것은 단호하고 과감하게 추진하여야 한다.위기를 안정시키고 해소하기 위한 어느 경우나 적용할 수 있는 보편적 정책이나 전략은 존재하지 않는다.멕시코와 영국이 겪었던 IMF사태와 성공적 극복은 유익하고 요긴한 참고 사례는 되지만 우리 현실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정답은 못된다.한가지 유의할 점은 절망적으로 보였던 위기가 진정된 후에 살펴보면 급박했던 당시에 인지했던 것보다 많은 시간적 여유가 있었고 다양한 협상전략이나 해결방안이 존재했었음을 보여 주는 사례들도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현 위기상황에서 우리는 어떠한 지도자를 필요로 하는가.첫째,비전과 도덕성과 전략적 사고 및 추진력을 지닌 강력한 지도자가 필요하다.둘째,리더는 쉽게 절망하지 않는 낙관적 인생관을 지니고,국민을 설득하고 선도하며 단결시킬 수 있어야 한다.지도자가 동요하면,그를 바라보던 국민은 쉽게 혼란이나 절망감에 빠지기 쉽다.셋째,지도자는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영국의 처칠수상이나 구소련의 주코프 장군이 보여 준 바와 같이 위기상황에서 국민에게 피와 땀과 눈물을 강요할 수 있는 냉철함과 권위를 지녀야 한다.넷째,그는 유능한 인재를 발굴하여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적극 지원해 주어야 한다.지도자는 정파,친분,성별,국적의 한계를 과감히 벗어나,유능한 인재를 초빙하여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다섯째,지도자는 혼미한 상황에서도 정확히 현실을 파악하고,상황변화에 민감하며,변화에 유연하게 적응할 수 있는 자질과 능력을 지녀야 한다.여섯째,국내·외 현실과 우리의 제한된 능력을 정확히 파악한 후,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문제들의 우선 순위를 정해 제한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투입해야 한다.

○강력한 리더를 바라며

외환위기로 인해 심각한 위기감에 사로잡힌 국민은 물론 한국의 약속 이행 의지 및 능력을 반신반의하는 국제사회 또한 한국의 외환위기 국면을 안정시키고 자신감을 불어넣어 줄 수 있는 강력한 리더의 출현을 바라고 있다.국민이 믿고 존경하며 따를 수 있는 유능한 지도자의 존재 여부는 위기를 맞은 나라의 국운과 직결된다.
1998-01-03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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