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으로 이용된 풍경화/마르틴 바른케 저 ‘정치적 풍경’

정치적으로 이용된 풍경화/마르틴 바른케 저 ‘정치적 풍경’

김종면 기자 기자
입력 1997-11-04 00:00
수정 1997-1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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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위세 나타내려 주문한 그림 등 분석

플랑드르의 화가 피터 폴 루벤스(1577∼1640)는 프랑스 왕 앙리 4세가 출전한 이브리 전투장면을 그리면서 마치 호메로스의 영웅 아킬레우스와 헥토르가 뒤엉켜 있는 것처럼 연출,고대 분위기를 자아냈다.이 기병대의 전투는 전쟁사에 이른바 근대적인 쌍방의 전면적 ‘총기 기병전’으로 기록될 만큼 획기적인 것이었다.그러나 루벤스는 전쟁을 지휘자들끼리의 영웅적인 결투양상인양 변형시켜 놓았다.권력을 쥔 주문자의 요구대로 실제 전쟁상황을 은폐하고 신화화한 것이다.우리가 흔히 접하는 풍경화에서 이러한 ‘정치적으로 점거된’ 풍경의 흔적을 찾아내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최근 도서출판 일빛에서 펴낸 ‘정치적 풍경’(마르틴 바른케 지음,노성두 옮김)은 풍경화의 겉 주제아래 얽혀있는 복합적인 의미의 매듭을 풀어낸 인문교양서로 독자들의 지적 상상력을 자극한다.

최근들어 부쩍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고 있는 ‘정치적 풍경’이란 말은 어디서 유래한 것일까.제3제국 곧 나치제국의 선전상이었던괴벨스가 하를란 감독의 영화 ‘콜베르크’를 보고 “이 영화는 정치적 풍경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한 데서 비롯된다.브라질 태생의 독일 미술사가인 바른케는 이 ‘정치적 풍경’이란 말 대신 ‘정치화한 풍경’이란 표현을 쓴다.풍경화에 대한 해석법은 자연히 미학적이기기 보다는 문화사·정치사적인 데로 기운다.조그만 경계석에서 거대한 기념비에 이르기까지,바른케는 풍경에 새겨진 조형에서 정치적 신호를 읽어낸다.

15세기 초 랭부르 형제가 그린 ‘베리 공의 시력그림’에는 소박하지만 정치적인 신호가 분명하게 깃들여 있다.초기 풍경화 요람기의 작품인 이 그림은 영주가 소유지에 대한 권리를 과시하려는 목적으로 주문해 그려진 것이다.첨탑 모양의 성체현시대처럼 서있는 ‘십자로의 실 잣는 아가씨’라는 이름의 도로표석은 군주의 위세를 보여주기 위한 것임을 한 눈에 알 수 있다.또 1435년 슈테판 로흐너가 그린 ‘최후의 심판’에는 성채 풍경에 대한 정치적 평가가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다.도시는 천국,성채는 지옥으로 뚜렷이 구분되는 이그림은 성채가 지배하던 시대의 종언을 알리는 은유이자 새로운 도시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음을 일러주는 징표로 읽힌다.바른케는 “풍경을 바라보는 시선이 정치적인 의미때문에 흐려지는 것은 아니다.오히려 한층 더 명료해질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다”고 집필의도를 밝힌다.<김종면 기자>

1997-11-04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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