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음악제 ‘만감’(객석에서)

세계음악제 ‘만감’(객석에서)

손정숙 기자 기자
입력 1997-10-08 00:00
수정 1997-10-08 00:00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시대를 앞서가는건 흥미진진한 만큼 위험부담이 크다.문화에서의 ‘전위’도 마찬가지다.잘 되면 후세에 예술의 선지자가 되지만 무모하다고 돌멩이를 얻어맞고 자취도 없이 사라져버린 경우가 훨씬 많다.망할 확률이 압도적이기 때문에 대부분 고전과 전통에 안주하며 몸을 사린다.

9월26일부터 지난 3일까지 계속된 ‘세계음악제’는 그런 맥락에서라면 ‘무모한 소수’의 축제였다 해도 많이 틀리지 않는다.순수음악 전공자들도 미안한 기색없이 현대음악을 외면하는 우리나라에 최대의 현대음악 이벤트를 유치한 것부터 무모했다.워낙 인구가 없다보니 꾸려나갈 이들도 손가락으로 꼽혔다.그들이 밤샘을 마다않고 동분서주했지만 수시로 터져나오는 진행미숙을 봉하기엔 절대수가 태부족이었다.청중도 늘 그 얼굴이 그 얼굴.숙제로 온 작곡과 학생들,외국인 참가자들,몇안되는 평론가 들을 합쳐도 예술의전당 리사이틀 홀 채우기가 버거웠다.

이같은 ‘마이너리티’의 ‘언더그라운드’ 행사에 대중이 읽는 신문지면을 할애하는게 부적당한 것 아닐까.그럼에도‘세계음악제’에 대해 뭔가를 쓴다면 그건 정통을 벗어던지고 지하로 들어갔던 모래 한줌도 안되는 이들의 꿈이 견고했던 질서를 뒤집어 새로운 지평을 연 폭발력으로 작용한 경우를 역사가 심심찮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간 간헐적으로 열렸던 현대음악 행사에 비해 ‘세계음악제’는 확실히 그릇이 컸다.하나의 조류에 묶이지 않고 요즘 창작곡의 흐름을 요모조모 보여줘 다채로웠다.축제에 부지런히 다닌 작곡과 학생들로 한국음악의 앞날은 밑거름을 얻었을게 분명하다.

하지만 연주자들이나 평론가들은 오히려 게을렀다.고인 물이 썩듯 자극 없는 음악계는 정체할 수 밖에 없다.현대음악 경험이 없는 우리나라 연주단이 몇몇 프로그램에서 곡을 영 그르쳐버린 것도 그런 무중력상태 때문이 아닐까.

끝으로 많은 달콤한 문화적 체험을 제치고 알쏭달쏭한 세계음악제 공연을 찾은 ‘순수’ 청중들에게 한마디.당신들은 다음 세상에서 무슨 곡이 유행할지 미리 엿본 이들임에 틀림없습니다.<손정숙 기자>
1997-10-08 11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탈모약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재명 대통령이 보건복지부 업무보고에서 “탈모는 생존의 문제”라며 보건복지부에 탈모 치료제 건강보험 적용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대통령의 발언을 계기로 탈모를 질병으로 볼 것인지, 미용의 영역으로 볼 것인지를 둘러싼 논쟁이 정치권과 의료계, 온라인 커뮤니티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당신의 생각은?
1. 건강보험 적용이 돼야한다.
2. 건강보험 적용을 해선 안된다.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