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경제 적응못해 사표내기 일쑤/한국기업조선족 갈등으로 비화/“핏줄보다 실리” 한족들로 인력 대체/직장 쫓겨나 날품팔아·유흥업소 전전하기도
흑룡강성 조선족들은 도시를 흔히 개성이라고 불렀다.조선족들에게 도시는 고려의 왕도인 경기도 개성쯤으로 보였는지 모른다.고려가 도읍지로 삼은 이상적 땅 개성은 도시요,도시는 곧 개성이라는 생각을 했다.그래서 도시는 늘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대를 이어 벼농사에 목을 매고 살아온 조선족들은 「기음 끝내면 개성 구경가자」는 말로 고달픈 생활을 달랬다.
그러니 도시로 나가 취직을 한다는 것은 곧 출세였다.10여년전까지만 해도 그랬다.개혁개방과 더불어 지금은 세상이 달라져 중국 전역의 농촌 유동인구는 한 해에 8천만명을 웃돌았다.농촌의 유휴인력은 훨씬 더 많아 1억2천만명으로 집계되었다.유휴노동력은 해마다 1천3백만명씩 늘어나는 추세다.이들 농촌인구가 몰려드는 곳은 도시라서,도시는 만원을 이루고 있다.
도시로 나온 조선족들은 한족에 비해 취업의 문이 넓었다.그 이유는 중국에진출한 한국기업들로부터 혜택을 받기 때문이다.흑룡강성 해림시 38개 조선족촌의 조선족 2만3천400명 가운데 1천700명이 도시로 나갔다.이들 대부분은 한국계기업에 취직한 것이 틀림없다.그리고 3천600명은 해외로 나갔다는 것이다.해외 역시 한국이 대부분이어서 한국은 조선족 취업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족의 도시나 해외진출은 생활의 활력소가 되었을 뿐 아니라,생활자체를 윤택하게 만들어 주었다.지난해 중국은행 해림 지행을 통해 조선족들이 송금을 받은 외화만도 1천80만달러에 이르고 있다.그런저런 송금을 모두 합하면 해림시에 사는 조선족 1명앞에 연간 2천800원꼴이 돌아갔다.
농촌인력의 외지 유출은 대규모 영농을 부추겼다.도시로 나간다고 땅을 떼어갈 수 없는 터라 두고온 농토는 자연히 실수요자 농민들에게 돌아갔다.그래서 한 가구가 2㏊의 농사를 짓는 것은 보통이고,5∼10㏊까지 농사를 짓는 대규모 영농가구도 수두룩했다.남는 것이 없었던 농사일이 목돈을 거머쥐는 기업농으로 바뀐 것이다.
○한국기업 도시진출 길열어
조선족들이 몰리는 도시는 북경·상해·천진·심수·광주와 동북3성의 대도시다.연해지구도 물론 포함되었다.운수가 좋아야 한번쯤 구경이나 할 도시에 조선족들이 터를 잡고 돈을 벌고있는 것이다.그런 대도시에 조선족들이 진출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은 한국기업이다.
조선족들에게 한국이라는 발전한 고국이 있다는 사실은 무척 다행스럽고,또 영광스러운 일이기도 하다.조선족의 운명은 고국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그래서 중국의 한국기업과 조선족이 서로 손을 잡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처음에는 반가움과 기대감을 가지고 만났으나,지금은 여기저기서 갈등을 드러내고 있다.자신의 신분노출을 꺼린 하얼빈의 한국기업 간부는 조선족들에 대한 서운한 마음을 진솔하게 털어놓았다.
『처음에는 한 핏줄이라는 마음에서 조선족들을 믿고 관리를 맡겼습니다.한족들과 똑같은 일을 해도 노임을 더 주기도 했지요.그런데 조선족들은 고용을 당한 입장이라는 생각만 하고 회사의 장래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더라구요.내가 밥 먹을데가 없어서 여기 와서 고생하는 줄 아느냐고 사표를 던지기가 일쑤고….개인 이익만을 챙기다 보면 조직체가 무엇이 되겠습니까?』
조선족들의 직업관이 잘못된 쪽으로 변하고 있다는 사실은 여러군데서 발견되었다.일자리가 마음에 들더라도 봉급이 상대적으로 낮으면 취업을 거부하기 일쑤였다.너무 조급하게 윗 자리를 넘보다가 뜻대로 되지 않으면 자리를 박차버렸다.그러는 사이 한족들에게 기회를 빼앗겼다.이같은 현상을 집체경제적 문화환경에서 비롯한 잘못된 타성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다시 말하면 공유제 사회에서 큰 가마솥밥을 적당히 나누어 떠먹던 과거 분배습관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청도에 진출한 한국기업에서 일하는 공원 남순금은 사보에 실린 「조선족 도시취직」이라는 글에서 조선족의 직업의식을 꼬집었다.도시에 나온 조선족 근로자들이 반성할 대목들이 줄줄이 나오고 있다.
○조선족 대거해고 위기에
「돈이 전부가 아니다.인생이라서 돈도 중요할 때가 있지만,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충실한 삶이다.농촌에서 배우지 못한기술을 직장에서 습득하여 그속에서 나를 찾는 가운데 민족발전을 위해 무엇인가 기여하겠다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그런데 우리 조선족은 시장경제 충격속에 정신을 못차리고 돈에만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러저러한 연유로 조선족들이 한국기업에서 밀려나는 위기를 맞았다.그 자리에 한족들이 대신 들어앉기 시작했다.한국기업들은 기업경영이 정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현실을 터득한 것이다.불필요한 인력은 해고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한국기업의 입장이고 보면,조선족은 딱한 처지가 되었다.한국기업에서 쫓겨난 조선족들의 진로는 뻔했다.힘깨나 쓰는 남자들은 날품팔이가 고작이고,아가씨들은 식당이나 나이트클럽 같은 유흥업소가 기다릴 뿐이었다.
그래서 도시로 나온 조선족 취업문제가 벌써 사회문제로 떠올랐다.흑룡강신문은 이 문제를 놓고 지상토론을 붙였다.여기서 문필가 이림씨는 「오늘날 조선족들에게는 올바른 직업의식 형성이 중요하다.그렇지 않고는 장래의 발전도 없고,삶이 본궤도에 오를수 없다」는 말을 했다.과연옳다.<유연산 작가>
흑룡강성 조선족들은 도시를 흔히 개성이라고 불렀다.조선족들에게 도시는 고려의 왕도인 경기도 개성쯤으로 보였는지 모른다.고려가 도읍지로 삼은 이상적 땅 개성은 도시요,도시는 곧 개성이라는 생각을 했다.그래서 도시는 늘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대를 이어 벼농사에 목을 매고 살아온 조선족들은 「기음 끝내면 개성 구경가자」는 말로 고달픈 생활을 달랬다.
그러니 도시로 나가 취직을 한다는 것은 곧 출세였다.10여년전까지만 해도 그랬다.개혁개방과 더불어 지금은 세상이 달라져 중국 전역의 농촌 유동인구는 한 해에 8천만명을 웃돌았다.농촌의 유휴인력은 훨씬 더 많아 1억2천만명으로 집계되었다.유휴노동력은 해마다 1천3백만명씩 늘어나는 추세다.이들 농촌인구가 몰려드는 곳은 도시라서,도시는 만원을 이루고 있다.
도시로 나온 조선족들은 한족에 비해 취업의 문이 넓었다.그 이유는 중국에진출한 한국기업들로부터 혜택을 받기 때문이다.흑룡강성 해림시 38개 조선족촌의 조선족 2만3천400명 가운데 1천700명이 도시로 나갔다.이들 대부분은 한국계기업에 취직한 것이 틀림없다.그리고 3천600명은 해외로 나갔다는 것이다.해외 역시 한국이 대부분이어서 한국은 조선족 취업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족의 도시나 해외진출은 생활의 활력소가 되었을 뿐 아니라,생활자체를 윤택하게 만들어 주었다.지난해 중국은행 해림 지행을 통해 조선족들이 송금을 받은 외화만도 1천80만달러에 이르고 있다.그런저런 송금을 모두 합하면 해림시에 사는 조선족 1명앞에 연간 2천800원꼴이 돌아갔다.
농촌인력의 외지 유출은 대규모 영농을 부추겼다.도시로 나간다고 땅을 떼어갈 수 없는 터라 두고온 농토는 자연히 실수요자 농민들에게 돌아갔다.그래서 한 가구가 2㏊의 농사를 짓는 것은 보통이고,5∼10㏊까지 농사를 짓는 대규모 영농가구도 수두룩했다.남는 것이 없었던 농사일이 목돈을 거머쥐는 기업농으로 바뀐 것이다.
○한국기업 도시진출 길열어
조선족들이 몰리는 도시는 북경·상해·천진·심수·광주와 동북3성의 대도시다.연해지구도 물론 포함되었다.운수가 좋아야 한번쯤 구경이나 할 도시에 조선족들이 터를 잡고 돈을 벌고있는 것이다.그런 대도시에 조선족들이 진출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은 한국기업이다.
조선족들에게 한국이라는 발전한 고국이 있다는 사실은 무척 다행스럽고,또 영광스러운 일이기도 하다.조선족의 운명은 고국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그래서 중국의 한국기업과 조선족이 서로 손을 잡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처음에는 반가움과 기대감을 가지고 만났으나,지금은 여기저기서 갈등을 드러내고 있다.자신의 신분노출을 꺼린 하얼빈의 한국기업 간부는 조선족들에 대한 서운한 마음을 진솔하게 털어놓았다.
『처음에는 한 핏줄이라는 마음에서 조선족들을 믿고 관리를 맡겼습니다.한족들과 똑같은 일을 해도 노임을 더 주기도 했지요.그런데 조선족들은 고용을 당한 입장이라는 생각만 하고 회사의 장래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더라구요.내가 밥 먹을데가 없어서 여기 와서 고생하는 줄 아느냐고 사표를 던지기가 일쑤고….개인 이익만을 챙기다 보면 조직체가 무엇이 되겠습니까?』
조선족들의 직업관이 잘못된 쪽으로 변하고 있다는 사실은 여러군데서 발견되었다.일자리가 마음에 들더라도 봉급이 상대적으로 낮으면 취업을 거부하기 일쑤였다.너무 조급하게 윗 자리를 넘보다가 뜻대로 되지 않으면 자리를 박차버렸다.그러는 사이 한족들에게 기회를 빼앗겼다.이같은 현상을 집체경제적 문화환경에서 비롯한 잘못된 타성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다시 말하면 공유제 사회에서 큰 가마솥밥을 적당히 나누어 떠먹던 과거 분배습관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청도에 진출한 한국기업에서 일하는 공원 남순금은 사보에 실린 「조선족 도시취직」이라는 글에서 조선족의 직업의식을 꼬집었다.도시에 나온 조선족 근로자들이 반성할 대목들이 줄줄이 나오고 있다.
○조선족 대거해고 위기에
「돈이 전부가 아니다.인생이라서 돈도 중요할 때가 있지만,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충실한 삶이다.농촌에서 배우지 못한기술을 직장에서 습득하여 그속에서 나를 찾는 가운데 민족발전을 위해 무엇인가 기여하겠다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그런데 우리 조선족은 시장경제 충격속에 정신을 못차리고 돈에만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러저러한 연유로 조선족들이 한국기업에서 밀려나는 위기를 맞았다.그 자리에 한족들이 대신 들어앉기 시작했다.한국기업들은 기업경영이 정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현실을 터득한 것이다.불필요한 인력은 해고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한국기업의 입장이고 보면,조선족은 딱한 처지가 되었다.한국기업에서 쫓겨난 조선족들의 진로는 뻔했다.힘깨나 쓰는 남자들은 날품팔이가 고작이고,아가씨들은 식당이나 나이트클럽 같은 유흥업소가 기다릴 뿐이었다.
그래서 도시로 나온 조선족 취업문제가 벌써 사회문제로 떠올랐다.흑룡강신문은 이 문제를 놓고 지상토론을 붙였다.여기서 문필가 이림씨는 「오늘날 조선족들에게는 올바른 직업의식 형성이 중요하다.그렇지 않고는 장래의 발전도 없고,삶이 본궤도에 오를수 없다」는 말을 했다.과연옳다.<유연산 작가>
1997-03-13 11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