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포통해 김재순 전 의장에 “북 변화” 전언 부탁/귀순 최세웅씨 “영국서 만났을때 사상적 갈등”
황장엽 북한노동당비서는 지난 95년 이전부터 김일성 사후의 북한체제와 주체사상에 회의를 느껴,망명을 고려해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황비서가 95년 2월 북한을 방문했던 재미교포를 통해 김재순 전 국회의장에게 북한 내부의 변화를 알리려 했던 것이나,같은해 11월 런던을 방문했을때 보여준 일련의 행동에서도 이같은 동요가 나타난다.
자민련 이동복 의원은 『황씨는 지난 95년 2월말 북한을 방문했던 재미교포 백모씨를 환송하면서 「이제 주체사상 갖고는 안되겠다.금년(95년) 말에 변화가 있을 것」이라며 김 전 의장에게 이같은 메시지를 전해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했다.
이의원은 지난해 여름 김전의장을 만나 이같은 내용을 들었으며 북한을 방문했던 백모씨가 95년 3,4월쯤 김 전 의장을 직접 찾아온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이의원은 『황이 95년에 망명을 결심하지는 않았겠으나 이미 주체사상과 김정일체제에 회의를 느껴 이때부터 망명등을 고려했던 같다』고 덧붙였다.
영국 런던에 파견돼 「영국개발투자회사」사장을 맡고 있다 지난 95년 12월 가족과 함께 귀순했던 최세웅씨(36)는 95년 11월 영국공산당 주최 세미나에 주체사상 강연을 위해 런던을 방문한 황비서를 만났다.최씨는 80년대초 황이 살았던 평양 창광거리 원형아파트에 살았었고 황의 아들 경모씨(35)와도 친구사이였다.
최씨는 『지금 생각하니 황비서가 런던을 방문했을때도 사상적으로 회의를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고 전했다.
최씨는 『황비서가 런던에 있는 마르크스의 묘역을 참배한뒤 「마르크스가 사회주의를 창시할때 하고는 시대가 많이 변했다」고 말하는 등 사상적으로 개혁적인 모습을 보였다』면서 『황비서가 이미 사상적 갈등을 느꼈으며 이후 자신의 생각들이 북한사회에 받아들여지지 않자 망명을 결심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씨는 황의 망명을 『그 나이에 무슨 욕심이 있어서 망명한 것은 아닐것』이라면서 『북한에서 무엇인가 민중을 도탄에 빠트리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망명하게 됐을것』이라고 분석했다.<김경홍·백문일 기자>
황장엽 북한노동당비서는 지난 95년 이전부터 김일성 사후의 북한체제와 주체사상에 회의를 느껴,망명을 고려해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황비서가 95년 2월 북한을 방문했던 재미교포를 통해 김재순 전 국회의장에게 북한 내부의 변화를 알리려 했던 것이나,같은해 11월 런던을 방문했을때 보여준 일련의 행동에서도 이같은 동요가 나타난다.
자민련 이동복 의원은 『황씨는 지난 95년 2월말 북한을 방문했던 재미교포 백모씨를 환송하면서 「이제 주체사상 갖고는 안되겠다.금년(95년) 말에 변화가 있을 것」이라며 김 전 의장에게 이같은 메시지를 전해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했다.
이의원은 지난해 여름 김전의장을 만나 이같은 내용을 들었으며 북한을 방문했던 백모씨가 95년 3,4월쯤 김 전 의장을 직접 찾아온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이의원은 『황이 95년에 망명을 결심하지는 않았겠으나 이미 주체사상과 김정일체제에 회의를 느껴 이때부터 망명등을 고려했던 같다』고 덧붙였다.
영국 런던에 파견돼 「영국개발투자회사」사장을 맡고 있다 지난 95년 12월 가족과 함께 귀순했던 최세웅씨(36)는 95년 11월 영국공산당 주최 세미나에 주체사상 강연을 위해 런던을 방문한 황비서를 만났다.최씨는 80년대초 황이 살았던 평양 창광거리 원형아파트에 살았었고 황의 아들 경모씨(35)와도 친구사이였다.
최씨는 『지금 생각하니 황비서가 런던을 방문했을때도 사상적으로 회의를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고 전했다.
최씨는 『황비서가 런던에 있는 마르크스의 묘역을 참배한뒤 「마르크스가 사회주의를 창시할때 하고는 시대가 많이 변했다」고 말하는 등 사상적으로 개혁적인 모습을 보였다』면서 『황비서가 이미 사상적 갈등을 느꼈으며 이후 자신의 생각들이 북한사회에 받아들여지지 않자 망명을 결심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씨는 황의 망명을 『그 나이에 무슨 욕심이 있어서 망명한 것은 아닐것』이라면서 『북한에서 무엇인가 민중을 도탄에 빠트리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망명하게 됐을것』이라고 분석했다.<김경홍·백문일 기자>
1997-02-15 5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