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령왕릉 출토품 유리동자상(한국인의 얼굴)

무령왕릉 출토품 유리동자상(한국인의 얼굴)

황규호 기자 기자
입력 1996-12-14 00:00
수정 1996-12-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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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크기 마스코트/둥근 얼굴·몸통 마치 눈사람

고대사회에서 유리는 보물과 마찬가지라 진귀한 공예품의 소재가 되었다.본래 서역의 산물인 유리는 중국을 돌아서 들어왔다.대표적인 유리공예품으로는 경주 천마총에서 나온 유리잔 (보물 620호),공주 무령왕릉 출토 유리구슬 등이 있다.그리고 금령총 출토 유리잔과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사리병(국보 123호)도 명품의 유리공예인 것이다.

이들 유리공예는 거의 5∼6세기 쯤의 작품이다.그런데 인물상이 더러 끼어 있다.백제 두번째의 왕도 옛 웅진땅 충남 공주시 송산리 무령왕릉에서 지난 1971년에 나온 인물상 하나가 유리제품이다.어린아이 동자를 표현 했다.높이가 2.5㎝에 지나지 않는 이 동자상은 오색이 영롱한 색유리구슬 꾸러미들과 함께 출토되었다.왕릉의껴묻거리이고 보면 당시 사람들은 유리를 보물로 여긴 것이 틀림없다.

유리동자는 머리도 둥글고 몸도 둥글었다.머리통이 유별나게 큰 유리동자는 천진스러우면서도 의젓했다.깍지를 끼듯이 합장한 손이 동자를 더욱 의젓하게 만들었다.눈과코,입을 꾸미지 않고 그저 소박하게 그렸다.어린아이가 어린아이를 그린 것처럼 소박해보이는 동자상은 문자대로 나이가 들지않은 어린아이 모습이다.눈오는 겨울날 동네 아이들이 만들어놓은 눈사람이 연상되었다.

그 손톱 크기만도 못한 좁은 공간에 귀만 빼고 얼굴을 그려낸 솜씨가 그런대로 놀랍다.동자상의 용도는 분명치 않다.왕릉에 묻힌 무령왕(재위 AD501∼522년)이나 그 비에게 사랑을 받았던 마스코트였을 것이라는 짐작이 들뿐이다.어떻게 보면 아주 어린 시절에 출가한 동자승같은 인상이 우러났다.그 보배로운 껴묻거리 유물 및 역사를 증거하는 세기적 기록 매지권 등과 함께 무령왕릉에서 나온 유리동자상은 유독 불교적 색깔을 드러낸 유물이 아닌가 한다.

얼굴이 보이는 유리공예 중에 영남대박물관이 소장한 구슬을 빼놓을 수 없다.경북 경주시 미추왕릉구역 고분에서 나온 이 목걸이 유리구슬에는 얼굴이 들어있다.그 당시 삼국시대 사람들은 유리를 중국에서 들여왔다.시쳇말로 하면 유리 자체가 고가수입품이었다.특히 5∼6세기 무렵의 유물이많은 것은 중국산 유리가 나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중국의 사서 「후위서」를 보면 5세기 북위시대에 산서성에서 유리를 생산했다는 기록이 나온다.그러나 유리를 만든 기술자들은 서역 사람들이었다.<황규호 기자>
1996-12-14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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