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는 자유수호전쟁”/헌법전문에 명문화해야
대한민국재향군인회(회장 장태완)는 3일 하오 서울 잠실 향군회관에서 「범국민 호국정신선양 세미나」를 갖고 6·25전쟁의 호칭통일과 6·25 자유수호의 호국정신을 헌법전문에 반영할 것을 촉구했다.
이날 세미나에서 이춘근 박사(전 세종연구소 연구위원)는 「한국 국방사에 나타난 호국정신의 발전적 재조명」이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6·25전쟁은 북한 및 국제공산주의라는 공산독재 세력에 대항하여 자유민주주의를 지킨 전쟁이었기 때문에 「6·25자유수호전쟁」으로 지칭돼야 한다』고 주장했다.이어 최창규 박사(국가상징자문위원장)도 자유수호와 호국정신의 민족사적 정통성」이라는 주제발표에서 『3·1정신과 4·19정신이 헌법전문에 명시되었듯이 6·25자유수호 전쟁의 호국정신도 헌법전문에 마땅히 명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주제발표 내용을 간추려본다.
◇이춘근 박사=한국전쟁의 의미는 우선 호국전쟁이었으며 동시에 대한민국이라는 정통성을 보유한 국가를 수호하는 전쟁이었다.과거의전쟁이 외적의 침입에 대항,국가의 생존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면 한국전쟁은 외적(소련·중공)의 지원을 받은 내부 반란자(북한정권)에 의한 대한민국 절멸의도에 대항한 전쟁이었던 것이다.
두번째로 한국전쟁은 민족사에 나타난 전쟁들처럼 역사가 아니라 현실이다.이 전쟁을 체험한 세대들이 아직 이 나라 사회의 원로로 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셋째로 한국전쟁은 인구의 10%가량 사상자를 냈을 만큼 근대 이후의 세계 7대 전쟁이었으며 민족간 싸움을 일으켰던 집단이 아직도 건재하고 있는 사실이 얼마나 엄중한 것인가를 일깨우는 경험을 남겼다.
이같은 한국전쟁의 교훈을 되살리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6·25사변 또는 동란,외국인의 시각에서 가치중립적인 한국전쟁에 대한 호칭통일이 필요하다.한국적인 관점에서 보아 한국전쟁은 「자유수호전쟁」이 된다.공산독재 세력에 대항해 자유민주주의를 지킨 전쟁이었기 때문이다.사멸위기에 놓인 대한민국이 호국되었고 민족사의 정통성이 수호된 전쟁이기 때문이다.6·25자유수호전쟁은 북한이 말하는 민족해방전쟁에 대비하여 한국전쟁을 지칭하기기에 적합한 이름이다.
◇최창규 박사=4강이라는 오늘의 이중 양극의 세계사 속에서 그 세계성을 안고 한국사 안에서 치른 의전이 곧 6·25전쟁이었다.분단이라는 932번째 국난 속에서 가장 중심적인 역사적 핵으로 볼 수 있다.세계성으로는 국난이었고 대내적으로는 국란이었다.따라서 그 의미와 좌표가 민족사적으로 정립될 때 민족사의 정통성과 법통성은 새로운 기반을 얻게 된다.그것이 바로 자유수호전쟁으로서 6·25의 호국정신이 갖는 민족사적 정통성의 기반이다.
6·25전쟁같은 동족상잔 앞에 자유수호가 승리해야만 이 민족사 위에는 의병도 살아나고 정통성도 함께 살아난다.그 민족사적 실질의 현장이 바로 대한민국의 법통성을 국시로 밝히고 있는 헌법전문의 명문화이다.우리의 헌법전문 속에 당당히 6·25 자유수호전쟁의 호국정신이 3·1운동이나 4·19정신 처럼 국시의 내용으로 명시되어야만 한다.
대한민국재향군인회(회장 장태완)는 3일 하오 서울 잠실 향군회관에서 「범국민 호국정신선양 세미나」를 갖고 6·25전쟁의 호칭통일과 6·25 자유수호의 호국정신을 헌법전문에 반영할 것을 촉구했다.
이날 세미나에서 이춘근 박사(전 세종연구소 연구위원)는 「한국 국방사에 나타난 호국정신의 발전적 재조명」이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6·25전쟁은 북한 및 국제공산주의라는 공산독재 세력에 대항하여 자유민주주의를 지킨 전쟁이었기 때문에 「6·25자유수호전쟁」으로 지칭돼야 한다』고 주장했다.이어 최창규 박사(국가상징자문위원장)도 자유수호와 호국정신의 민족사적 정통성」이라는 주제발표에서 『3·1정신과 4·19정신이 헌법전문에 명시되었듯이 6·25자유수호 전쟁의 호국정신도 헌법전문에 마땅히 명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주제발표 내용을 간추려본다.
◇이춘근 박사=한국전쟁의 의미는 우선 호국전쟁이었으며 동시에 대한민국이라는 정통성을 보유한 국가를 수호하는 전쟁이었다.과거의전쟁이 외적의 침입에 대항,국가의 생존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면 한국전쟁은 외적(소련·중공)의 지원을 받은 내부 반란자(북한정권)에 의한 대한민국 절멸의도에 대항한 전쟁이었던 것이다.
두번째로 한국전쟁은 민족사에 나타난 전쟁들처럼 역사가 아니라 현실이다.이 전쟁을 체험한 세대들이 아직 이 나라 사회의 원로로 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셋째로 한국전쟁은 인구의 10%가량 사상자를 냈을 만큼 근대 이후의 세계 7대 전쟁이었으며 민족간 싸움을 일으켰던 집단이 아직도 건재하고 있는 사실이 얼마나 엄중한 것인가를 일깨우는 경험을 남겼다.
이같은 한국전쟁의 교훈을 되살리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6·25사변 또는 동란,외국인의 시각에서 가치중립적인 한국전쟁에 대한 호칭통일이 필요하다.한국적인 관점에서 보아 한국전쟁은 「자유수호전쟁」이 된다.공산독재 세력에 대항해 자유민주주의를 지킨 전쟁이었기 때문이다.사멸위기에 놓인 대한민국이 호국되었고 민족사의 정통성이 수호된 전쟁이기 때문이다.6·25자유수호전쟁은 북한이 말하는 민족해방전쟁에 대비하여 한국전쟁을 지칭하기기에 적합한 이름이다.
◇최창규 박사=4강이라는 오늘의 이중 양극의 세계사 속에서 그 세계성을 안고 한국사 안에서 치른 의전이 곧 6·25전쟁이었다.분단이라는 932번째 국난 속에서 가장 중심적인 역사적 핵으로 볼 수 있다.세계성으로는 국난이었고 대내적으로는 국란이었다.따라서 그 의미와 좌표가 민족사적으로 정립될 때 민족사의 정통성과 법통성은 새로운 기반을 얻게 된다.그것이 바로 자유수호전쟁으로서 6·25의 호국정신이 갖는 민족사적 정통성의 기반이다.
6·25전쟁같은 동족상잔 앞에 자유수호가 승리해야만 이 민족사 위에는 의병도 살아나고 정통성도 함께 살아난다.그 민족사적 실질의 현장이 바로 대한민국의 법통성을 국시로 밝히고 있는 헌법전문의 명문화이다.우리의 헌법전문 속에 당당히 6·25 자유수호전쟁의 호국정신이 3·1운동이나 4·19정신 처럼 국시의 내용으로 명시되어야만 한다.
1996-12-05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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