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은행 소장/고려불화 아미타여래상(한국인의 얼굴:76)

일 은행 소장/고려불화 아미타여래상(한국인의 얼굴:76)

황규호 기자 기자
입력 1996-08-31 00:00
수정 1996-08-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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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중동의 자세에 중생구제 불심이

고려시대의 불교회화는 촘촘하면서도 산뜻한 빛깔로 처리되어 매우 화려했다.그리고 궁중과 밀접한 관계속에 이루어졌을 뿐 아니라 궁중을 중심으로 하여 불화사들이 제작에 참여했기 때문에 손색없는 회화의 자리를 굳혔다.불화는 순수회화에도 영향을 주어 산수화와 인물화가 발전할 수 있는 요인이 되었다.

그러나 고려불화는 전대 통일신라에 비해 작품이 더 남아 있을지라도 흔치는 않다.국내보다는 오히려 일본쪽에 더 많이 소장되어 있다.현재 전해 내려오는 불화 가운데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는 일본은행이 소장한 「지원23년명아미타여래도」가 있다.지원 23년이라는 글씨를 통해 그 제작연대는 1286년이 분명하다.

불화의 주제인 아미타여래는 서방정토의 극락세계에 있다는 부처의 이름이다.모든 중생을 다 구제한다는 큰 서원을 세운 부처이기도 한데 이 부처를 믿으면 죽은 뒤에 극락세계에서 다시 태어난다는 것이다.그 신앙은 정토삼부경의 하나인 「아미타경」에 근거를 두었다.이 부처는 아미타여래란 말 이외에 아미타불·서방주라고도 하고 미타로 줄여 부르는 경우도 있다.

일본은행이 소장한 아미타여래도 불화의 영역을 떠나 일반회화의 경지에 접어든 색깔 있는 그림이다.홀로 선 단독입상의 부처가슴은 정면을 향했으나 얼굴은 옆을 바라보는 모습을 했다.그리고 발은 얼굴과 반대방향으로 돌렸다.또 왼팔은 들어올리고 오른팔은 내렸다.왼손은 엄지와 무명지를 맞댄 아미타구품인을,오른손은 다섯 손가락을 펴 여원인의 손가짐(수인)을 만들어 보였다.

이 불화의 아미타여래불은 한마디로 정중동의 자세다.더구나 여원인을 만들어낸 손가짐에는 힘이 들어 있다.마치 극락으로 가서 다시 태어난 극락왕생자를 맞는 제스처가 아닌가.아미타여래는 실제 기골이 장대해 보인다.웬만한 죄업을 진 중생이면 힘으로라도 극락으로 밀어붙일 만큼 여력이 넘치고 있다.고려의 대장부 한 사람을 대하는 느낌이 와 닿는다.

그러나 따뜻한 빛이 가득한 온안의 얼굴에는 자비가 어렸다.중생을 어루만지는 듯 눈매를 약간 깔았다.그럼에도 동자가 맑아 혜안으로 빛나는 것은 저 멀리 세속의 중생을 구제하려는 불심 탓이리라.얼굴은 참으로 풍만하여 후덕스럽기 이를데없는 아미타여래는 살상투를 갖추었다.그리고 기다란 귀를 따라 살쩍을 타고 내려온 머리털이 길다.도툼한 입 언저리에는 그리 길지 않은 수염 가잠나룻이 그저 거무스럼하게 돋아났다.

이 불화는 부드러운 진홍색과 올리브색이 주조를 이루었으나 금색도 많이 썼다.바탕은 비단천이어서 견본금니채색의 그림이다.이 그림에는 금물로 쓴 화기가 들어 있다.왕과 왕비의 만수무강을 위해 염승익의 발원으로 그렸다는 것이다.글씨는 자회라는 사람이 쓴 것으로 되어 있다.<황규호 기자>
1996-08-31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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