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리 마이슬러·언론인/미국은 유엔을 무력화 말라(해외논단)

스탠리 마이슬러·언론인/미국은 유엔을 무력화 말라(해외논단)

입력 1996-08-21 00:00
수정 1996-08-21 00:00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미국의 저명한 언론인으로 「유엔:첫 50년」의 저자인 스탠리 마이슬러는 미국의 일관성없는 정책으로 유엔이 무력화돼 제2의 국제연맹으로 전락케됐다고 미국의 유엔정책을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정치 월간지 「워싱턴 먼슬리」최근호에 실린 그의 글 「큰 희망에서 희생양으로」를 요약한다.

지난 3년 동안 유엔은 정상에서 계속 추락해 왔다.걸프전이 끝났을 무렵에는 뉴욕 유엔본부의 분위기는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물론 미국과 그 우방,그리고 러시아가 합심한다는 조건이 있긴 하지만.이런 도취감은 오래가지 못했다.95년말 미국이 체납 회비지불을 거부하자 유엔은 파산 직전에 몰렸다.이보다 더 창피한 일은 미국이 보스니아 평화협상을 진행하면서 명색이 국제평화의 수호자인 유엔을 못 미더워해 거의 아무 역할도 맡기지 않았다는 점이다.

특히 공화당의 유엔 비난 기운은 거세 클린턴 행정부가 들어서자 마자 공화당 외교통들은 유엔을 노골적으로 경멸하기 시작했다.주어지지도 않는 권한을 휘두른다면서 갈리 사무총장을 비난했고이어 클린턴 외교팀이 이 갈리 총장의 손에 놀아난다고 주장했다.클린턴 행정부도 공화당보단 호의적이었지만 유엔을 제대로 평가해주지 않았다.혼돈스러운 냉전 이후의 세계질서 속에서 제3세계의 위기들을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가장 논리적인 기구라고 유엔을 변호하는 대신,현명하지 못하며(소말리아 사태),겁쟁이이고(보스니아),조직이나 일처리에서 무능하다며 호되게 꾸짖었다.

미국 정부가 그 어느 나라보다 유엔에 대해 높은 수준을 요구할 권리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그러나 미국이 너무 심하게 유엔을 공격하는 바람에 유엔은 많은 분쟁들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게끔되고 말았다.클린턴 정부는 유엔반대 운동을 조직적으로 벌였다기 보다는 서서히 유엔을 부정적으로 보는 자세로 빠져들었다.처음엔 자신의 리더십을 유지하는 가운데 유엔의 역할을 강화해주려고 천명했다.그러나 소말리아 개입이 대실패로 끝나고 조롱을 받게되자 클린턴정부는 유엔을 이 실패의 원천으로 지목하기에 급급했다.미국은 이어 보스니아에 대해 일관성있는 정책을 갖지못한 것을 자주 유엔 탓으로 돌려댔다.

유엔은 창설 이래 영향력에서 급격한 부침을 거듭했다.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이빨있는 국제연맹」으로서 유엔을 창안했었다.미국은 지구 평화의 틀로서 유엔에 큰 희망을 걸었지만 냉전,소련과의 적대로 안보리는 40여년 동안 거의 마비상태에 빠졌다.제3세계가 유엔총회를 석권하고 유엔이 미국 「때리기」의 장으로 변모된 70년대,80년초엔 더욱 쇠퇴일로를 걸었다.

그러나 냉전이 끝나고 걸프전을 승리로 이끈 90년대 초에 들자 많은 미국인들은 유엔이 비로소 창설자들이 꿈꾸었던 역할을 할 수 있으리란 기대를 품게 됐다.올브라이트 유엔주재 미국 대사는 안보리를 「국제 119」라고 불렀고 분쟁 당사국들은 앞을 다퉈 유엔의 개입을 요청,안보리는 캄보디아,엘살바도르,앙골라,모잠비크,아이티 등에 유엔평화군을 차례로 급파했다.유엔의 자신감은 그러나 소말리아 패주와 보스니아 위기로 인해 조각나고 말았다.

급습작전이 실패하고 18명의 미군이 죽자 소말리아에서 즉시철수한 미국은 당시 유엔평화군 지휘계통과는 독립되어 움직였으면서도 유엔이 미군을 이같은 재난에 빠뜨렸다고 재빨리 비난하고 나섰다.보스니아 문제에서는 어떻게 하면 학살을 중지시킬 것인가를 두고 벌어진 유럽과 미국간의 불화를 가리는 방패막이로서 유엔이 쓰여졌다.

유엔 1년 예산과 맞먹는 12억달러의 체납회비 문제도 있지만 평화유지군 일에 개입되기를 꺼리는 미국의 정책으로 유엔은 무력해지고 말았다.여러 상황으로 보아 앞으로 유엔은 미국이 자신의 국내정치 상황에 의해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일에만 움직일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이전의 소말리아나 르완다같이 미국의 이해가 덜한 곳에는 이제 유엔도 별 할 일이 없을 것이다.선거가 치러지는 올해 이 조짐은 한층 뚜렷하다.최근 갤럽 여론조사에 의하면 미국인의 77%가 미국의 유엔 회원국 유지를 지지하고 있지만 공화당의 보브 돌 후보는 (클린턴 때와는 달리) 유엔 사무총장이 미군을 지휘하는 일은 없을 것이란 말로 유권자의 호감을 사려하고 있다.

안보리 거부권을 가진 미국의 승인없이 유엔 총장이 미군을 제 마음대로 파견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또 미국이 유엔으로 부터 탈퇴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분명 미국은 유엔을 무력화시키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이는 모두가 경계해야 할 상황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미국인은 이를 별로 개의치 않는 것처럼 보인다.<정치 월간지 「워싱턴 먼슬리 기고><정리=김재영 워싱턴 특파원>
1996-08-21 10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불장인 국내증시에서 여러분의 투자성적은 어떤가요?
코스피가 사상 최고치를 거듭 경신하며 5000선에 바짝 다가섰다. 연초 이후 상승률은 15% 안팎으로, 글로벌 주요 증시 가운데 가장 가파르다. 하지만 개인투자자 수익률은 외국인의 절반에 그치고 있다. 여러분의 수익률은 어떤가요?
1. 수익을 봤다.
2. 손해를 봤다.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