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중국정책 냉전이후 강경선회/중 팽창정책 경계… 미와 안보위협 강화 등 적극대응/양국관계 악화땐 아태안보 중대위험 초래 가능성
중국에 대한 일본의 정책기조가 적대적으로 바뀌고 있으며 양국관계의 악화로 자칫 아태전역에 큰 불안이 초래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일본이 미국과 군사동맹관계를 강화하고 지역분쟁에 적극개입을 다짐하는등 최근 지역안보와 관련해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주목적은 중국의 팽창주의를 막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다.미국방위분석연구소의 마이클 그린 선임연구원과 존스 홉킨스대 부설 국제연구소의 폴 니츠교수가 공동집필해 미시사계간 「서바이벌」 여름호에 기고한 「일본의 중국정책이 변하고 있다」를 요약소개한다.
지난 40여년의 냉전기간에 일본의 중국정책은 기본적으로 유화적이고 저자세적인 것이었다.그런데 냉전시대가 마감되자 일본의 중국정책도 변하기 시작했다.일본은 중국이 아시아지역에서 새로운 강대국으로 탈바꿈해 팽창정책을 펴려는 움직임에 대해 적극적인 대응을 모색하고 있다.
과거 일본은 가능한 한 중국에 가까워지려고 노력했다.1960년대 들어 일본은 중국의 최대교역국이었고 72년 미국이 중국과 국교정상화를 이루자 일본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 뒤를 따랐다.89년 천안문사태이후 제일 먼저 중국에 대한 원조를 재개한 나라도 바로 일본이었다.
최근 변화의 첫번째 기점은 냉전종식이다.최근에 중국이 감행한 일련의 핵실험,대만에 대한 무력시위,영유권분쟁이 있는 일부영토에 대한 영유권주장등을 보는 일본의 태도는 분명 예전과 다르다.60년대 중·소분쟁이후 미·일·중국은 아시아에서 소련의 팽창정책을 저지하자는 일종의 공감대를 갖게 됐다.그래서 일본은 72년 국교정상화,79년의 평화우호조약체결 때 중국과 함께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명백히 소련을 지칭하는 「패권주의에 대한 경계」를 명문화했던 것이다.
그런데 냉전의 종식은 일본 안보정책의 최우선대상을 소련 대신 남북한문제,지역영유권분쟁등 지역문제로 바뀌게 만들었다.미국도 일본에 대해 지역분쟁에 보다 큰 역할을 해주도록 주문했다.그렇게 해서 76년에체택된 일본의 방위계획대강(NDPO)이 수정됐다.새 방위계획대강은 냉전이후 새로운 안보위협에 대처하는 미·일협조관계를 한층 더 강조했다.
일본의 방위담당자들이 1차로 염두에 둔 것은 한반도의 돌발사태였다.지난 93년 미국이 북한에 대해 금수 및 봉쇄조치를 계획했을 때 일본의 효과적인 지원태세미비가 문제가 된 적이 있기 때문이다.그런데 중국으로서는 한반도 돌발사태에 대한 미·일공조가 대만해협 긴장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는 점이 꺼림칙했다.
중국은 미·일안보동맹의 강화를 자국안보에 위협요인으로 생각했다.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미국이 탄도미사일방어체제인 전역미사일체제(TMD)구축에 동참하라고 일본측에 요청한 것이다.일본도 이를 필요하다고 판단했다.92년 북한이 노동1호미사일을 동해쪽으로 시험발사하자 일본으로서는 이에 대한 필요성이 더 절실해졌다.
중국은 이에 대해 매우 과격한 반응을 보였다.미·일의 합동미사일체제가 중국의 핵억지력을 크게 위협한다는 것이다.중국은 일본을 겨냥한 다탄두미사일을 배치하겠다고나섰다.일본 역시 무기현대화·핵실험·영토문제등과 관련한 중국의 팽창주의에 경계심을 드높였다.
일본 국내정치의 판도변화도 영향을 미쳤다.일본정계의 세대교체는 다나카 전 총리 같은 친중국인사의 영향력을 급속히 약화시켰다.사회당과 일부 언론등 일본사회의 전통적인 친중국여론층도 일제히 중국의 강대국화에 대해 경계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과거사문제에서도 일본의 새 세대 정치인은 공세적인 자세를 취했다.이 정도 선에서 중국도 일본의 사과를 받아들여야 하며 더이상 과거를 들먹이지 말라는 식이다.경제면에서도 부정적인 요인은 적지 않다.예를 들어 95년도 일본의 대중국 무역적자액은 1백40억달러에 달했다.적자액이 누적될 경우 자칫 중국이 일본국민감정의 표적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가 없다.
일본은 중국의 팽창주의를 저지하기 위해 미군사력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판단한다.그래서 주일미군의 계속주둔등 미·일군사협력을 강화하고 재무장은 물론 집단자위권발동을 추진한다.일본의 이같은 움직임은 중국에 대한 「제한적인 억지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그래서 일본은 미국뿐 아니라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과 안보대화를 확대하고 중국이 지지해온 미얀마에도 원조를 재개했다.아울러 금년 3월 이케다외상이 모스크바를 방문하는등 러시아를 지렛대로 다시 끌어들이려는 노력도 보이고 있다.혼자서 중국을 억제하기는 힘겨우니 미국과 러시아를 적극 이용하겠다는 것이다.일본이 지향하는 바는 다자간안보체제다.
미국·중국,그리고 아세안국가등 모든 이해당사국은 중국에 대한 일본의 정책기조가 달라지고 있다는 점을 깨닫고 하루빨리 적절한 완충장치를 만들어내야 한다.이 두 나라가 정면충돌해 적대관계로 돌아설 경우 이는 아태국가 모두에게 손실이기 때문이다.〈미 방위분석연 연구원·우드로 윌슨연 교수/정리=이기동 기자〉
중국에 대한 일본의 정책기조가 적대적으로 바뀌고 있으며 양국관계의 악화로 자칫 아태전역에 큰 불안이 초래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일본이 미국과 군사동맹관계를 강화하고 지역분쟁에 적극개입을 다짐하는등 최근 지역안보와 관련해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주목적은 중국의 팽창주의를 막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다.미국방위분석연구소의 마이클 그린 선임연구원과 존스 홉킨스대 부설 국제연구소의 폴 니츠교수가 공동집필해 미시사계간 「서바이벌」 여름호에 기고한 「일본의 중국정책이 변하고 있다」를 요약소개한다.
지난 40여년의 냉전기간에 일본의 중국정책은 기본적으로 유화적이고 저자세적인 것이었다.그런데 냉전시대가 마감되자 일본의 중국정책도 변하기 시작했다.일본은 중국이 아시아지역에서 새로운 강대국으로 탈바꿈해 팽창정책을 펴려는 움직임에 대해 적극적인 대응을 모색하고 있다.
과거 일본은 가능한 한 중국에 가까워지려고 노력했다.1960년대 들어 일본은 중국의 최대교역국이었고 72년 미국이 중국과 국교정상화를 이루자 일본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 뒤를 따랐다.89년 천안문사태이후 제일 먼저 중국에 대한 원조를 재개한 나라도 바로 일본이었다.
최근 변화의 첫번째 기점은 냉전종식이다.최근에 중국이 감행한 일련의 핵실험,대만에 대한 무력시위,영유권분쟁이 있는 일부영토에 대한 영유권주장등을 보는 일본의 태도는 분명 예전과 다르다.60년대 중·소분쟁이후 미·일·중국은 아시아에서 소련의 팽창정책을 저지하자는 일종의 공감대를 갖게 됐다.그래서 일본은 72년 국교정상화,79년의 평화우호조약체결 때 중국과 함께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명백히 소련을 지칭하는 「패권주의에 대한 경계」를 명문화했던 것이다.
그런데 냉전의 종식은 일본 안보정책의 최우선대상을 소련 대신 남북한문제,지역영유권분쟁등 지역문제로 바뀌게 만들었다.미국도 일본에 대해 지역분쟁에 보다 큰 역할을 해주도록 주문했다.그렇게 해서 76년에체택된 일본의 방위계획대강(NDPO)이 수정됐다.새 방위계획대강은 냉전이후 새로운 안보위협에 대처하는 미·일협조관계를 한층 더 강조했다.
일본의 방위담당자들이 1차로 염두에 둔 것은 한반도의 돌발사태였다.지난 93년 미국이 북한에 대해 금수 및 봉쇄조치를 계획했을 때 일본의 효과적인 지원태세미비가 문제가 된 적이 있기 때문이다.그런데 중국으로서는 한반도 돌발사태에 대한 미·일공조가 대만해협 긴장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는 점이 꺼림칙했다.
중국은 미·일안보동맹의 강화를 자국안보에 위협요인으로 생각했다.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미국이 탄도미사일방어체제인 전역미사일체제(TMD)구축에 동참하라고 일본측에 요청한 것이다.일본도 이를 필요하다고 판단했다.92년 북한이 노동1호미사일을 동해쪽으로 시험발사하자 일본으로서는 이에 대한 필요성이 더 절실해졌다.
중국은 이에 대해 매우 과격한 반응을 보였다.미·일의 합동미사일체제가 중국의 핵억지력을 크게 위협한다는 것이다.중국은 일본을 겨냥한 다탄두미사일을 배치하겠다고나섰다.일본 역시 무기현대화·핵실험·영토문제등과 관련한 중국의 팽창주의에 경계심을 드높였다.
일본 국내정치의 판도변화도 영향을 미쳤다.일본정계의 세대교체는 다나카 전 총리 같은 친중국인사의 영향력을 급속히 약화시켰다.사회당과 일부 언론등 일본사회의 전통적인 친중국여론층도 일제히 중국의 강대국화에 대해 경계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과거사문제에서도 일본의 새 세대 정치인은 공세적인 자세를 취했다.이 정도 선에서 중국도 일본의 사과를 받아들여야 하며 더이상 과거를 들먹이지 말라는 식이다.경제면에서도 부정적인 요인은 적지 않다.예를 들어 95년도 일본의 대중국 무역적자액은 1백40억달러에 달했다.적자액이 누적될 경우 자칫 중국이 일본국민감정의 표적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가 없다.
일본은 중국의 팽창주의를 저지하기 위해 미군사력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판단한다.그래서 주일미군의 계속주둔등 미·일군사협력을 강화하고 재무장은 물론 집단자위권발동을 추진한다.일본의 이같은 움직임은 중국에 대한 「제한적인 억지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그래서 일본은 미국뿐 아니라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과 안보대화를 확대하고 중국이 지지해온 미얀마에도 원조를 재개했다.아울러 금년 3월 이케다외상이 모스크바를 방문하는등 러시아를 지렛대로 다시 끌어들이려는 노력도 보이고 있다.혼자서 중국을 억제하기는 힘겨우니 미국과 러시아를 적극 이용하겠다는 것이다.일본이 지향하는 바는 다자간안보체제다.
미국·중국,그리고 아세안국가등 모든 이해당사국은 중국에 대한 일본의 정책기조가 달라지고 있다는 점을 깨닫고 하루빨리 적절한 완충장치를 만들어내야 한다.이 두 나라가 정면충돌해 적대관계로 돌아설 경우 이는 아태국가 모두에게 손실이기 때문이다.〈미 방위분석연 연구원·우드로 윌슨연 교수/정리=이기동 기자〉
1996-06-23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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