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 강경진압 지시/메모 2건싸고 설전

시위 강경진압 지시/메모 2건싸고 설전

박선화 기자 기자
입력 1996-05-07 00:00
수정 1996-05-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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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황영시씨 모두 “신빙성 없다” 부인/재판부 제출명령 신청 각하… 공방 매듭

5·18 당시 계엄군의 강경 진압을 지시했다는 메모를 놓고 검찰과 피고인 간에 공방이 펼쳐졌다.

당시 황영시 육군참모차장이 광주의 전투교육사령부 김기석 부사령관에게 헬기를 동원해 강경 진압하라고 지시한 메모와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전교사 소준렬 사령관에게 격려의 의미로 보냈다는 친필 메모 등 두 가지이다.

검찰은 6일 5·18사건의 7차 공판에서 황피고인을 신문하면서 김부사령관이 80년 5월20∼26일 사이에 황피고인이 전화로 지시한 강경 진압 내용을 기록했다는 메모를 전격 공개했다.

32절지의 종이에 기록된 내용은 「APC(경장갑차)­코브라(전투용헬기),차량­500MD(한국형헬기),인원­병력」.시위대의 APC는 코브라로 때리고,차량은 500MD로 공격하며 시위대는 군병력으로 진압하라는 지시였다는 게 검찰의 주장이다.

황피고인은 이에 대해 『검찰에서 조사받을 때 김부사령관과 대질했으나 본인이 지시했다는 점을 입증하지 못했으며,검찰도 이 메모를 보여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또 『메모에는 6하 원칙이 명시되지 않았다』며,신빙성이 약하다고 반박했다.

이에 전상석 변호사가 자리에서 일어섰다.『검찰이 결정적인 증거를 왜 압수하지 않았느냐』고 되물으며,재판장에게 압수를 신청했다.

전피고인이 80년 5월23일 하오 정호용피고인을 통해 소사령관에게 전달했다고 검찰이 밝힌 메모는 「소 선배 귀하,공수부대를 너무 기 죽이지 마십시오.희생이 따르더라도 광주사태를 조기에 수습해 주십시오」라는 내용.전씨의 친필 사인이 곁들여졌다.

전피고인은 『6공 청문회 때도 이 문제는 거론되지 않았으며,전화로 하면 되지 왜 메모로 전달하겠느냐』고 부인했다.

검찰의 직접신문이 끝나자 변호인단은 재판부에 대해 문서제출 명령을 내려 문제의 메모를 압수해 달라고 요청했다.검찰은 황피고인의 전화 지시를 김기석씨가 적었다는 메모에 대해 『김씨가 임의 제출을 거부해 복사해 둔 것』이라며 『의심이 가면 김씨를 증인으로 출두시켜 확인하면 될 것』이라고 맞섰다.

변호인단은 『그런 식으로 증거물인 것처럼 제시하며 여론을 호도하지 말라』고 쏘아붙였다.김영일 재판장은 변호인단의 응수가 충분하다고 판단한 듯 문제제출 명령 신청을 각하함으로써 공방을 매듭지었다.〈박선화 기자〉
1996-05-07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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