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의 일부… 궁중연회장으로 일제땐 외국인 사교클럽 사용도
노태우 전대통령이 비자금을 은닉하기 위해 사들인 부동산가운데 일본과 을사보호조약을 체결한 치욕의 문화재(서울시 유형문화재 53호)도 포함돼 있어 화제다.
노씨가 지난 92년12월 사돈기업인 동방유량의 계열사인 경한산업 명의로 매입한 서울센터빌딩의 정동별관내 주차사무실 건물이 그곳이다.경한산업측은 덕수궁 옆 7백여평 크기의 공터를 주차장으로 쓰고 있다.주차사무실 건물은 2층 벽돌집으로 아치형 창과 베란다 등으로 꾸며진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건물중 하나다.1905년 11월17일 이완용과 일본총리대신 이토 히로부미가 을사보호조약을 이곳에서 체결했다.
이 건물은 원래 덕수궁의 일부로 궁중 연회장으로 사용되었으며 중명전으로 불렸다.
일제는 한일합방뒤 이곳을 경성구락부라 부르며 외국인들을 위한 사교클럽으로 사용했다.<김경운 기자>
노태우 전대통령이 비자금을 은닉하기 위해 사들인 부동산가운데 일본과 을사보호조약을 체결한 치욕의 문화재(서울시 유형문화재 53호)도 포함돼 있어 화제다.
노씨가 지난 92년12월 사돈기업인 동방유량의 계열사인 경한산업 명의로 매입한 서울센터빌딩의 정동별관내 주차사무실 건물이 그곳이다.경한산업측은 덕수궁 옆 7백여평 크기의 공터를 주차장으로 쓰고 있다.주차사무실 건물은 2층 벽돌집으로 아치형 창과 베란다 등으로 꾸며진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건물중 하나다.1905년 11월17일 이완용과 일본총리대신 이토 히로부미가 을사보호조약을 이곳에서 체결했다.
이 건물은 원래 덕수궁의 일부로 궁중 연회장으로 사용되었으며 중명전으로 불렸다.
일제는 한일합방뒤 이곳을 경성구락부라 부르며 외국인들을 위한 사교클럽으로 사용했다.<김경운 기자>
1995-11-19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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