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종때 찬의 정온 시신
【고양=윤상돈 기자】 조선 중종때 찬의(정5품)를 지낸 정온의 시신이 4백50여년전 매장될 당시의 모습 그대로인 미라로 발견됐다.
이 미라는 6일 상오 경기도 파주군 금촌읍 금릉리 산 18의10 경주 정씨 제안공파 선산에서 묘지 이장작업을 하던 종친회에 의해 발굴됐다.
정온의 묘소는 이중 목관이 사용돼 연결부위 마다 송진이 칠해져 있고 석회로 덮여 있었는데 외관의 크기가 가로 90㎝,세로 2백40㎝,두께 12㎝이며 내관은 가로60㎝,세로 2백10㎝,두께 10㎝ 크기로 부패한 흔적이 전혀 없었다.
내관안에 있던 시신은 신장 1백70㎝ 정도로 얼굴 형태와 상체 및 하체의 뼈·살 등이 썩지 않았으며 치아와 상투·수염 등도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는 등 매장될 당시의 모습 거의 그대로 였다.
또 시신을 둘러싼 7겹의 옷가지는 물론 시신과 내관벽의 공간을 채워 넣은 20여점의 비단 옷가지와 신발 등도 썩지 않았으며 건을 맨 끈도 시신의 목에 그대로 묶여 있었다.
미라로 발견된 정온은 성종때인 1474년 이조판서를 지낸 제안공 정효상(1432∼1481)의 2대손으로 중종시절 찬의를 지냈다.
【고양=윤상돈 기자】 조선 중종때 찬의(정5품)를 지낸 정온의 시신이 4백50여년전 매장될 당시의 모습 그대로인 미라로 발견됐다.
이 미라는 6일 상오 경기도 파주군 금촌읍 금릉리 산 18의10 경주 정씨 제안공파 선산에서 묘지 이장작업을 하던 종친회에 의해 발굴됐다.
정온의 묘소는 이중 목관이 사용돼 연결부위 마다 송진이 칠해져 있고 석회로 덮여 있었는데 외관의 크기가 가로 90㎝,세로 2백40㎝,두께 12㎝이며 내관은 가로60㎝,세로 2백10㎝,두께 10㎝ 크기로 부패한 흔적이 전혀 없었다.
내관안에 있던 시신은 신장 1백70㎝ 정도로 얼굴 형태와 상체 및 하체의 뼈·살 등이 썩지 않았으며 치아와 상투·수염 등도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는 등 매장될 당시의 모습 거의 그대로 였다.
또 시신을 둘러싼 7겹의 옷가지는 물론 시신과 내관벽의 공간을 채워 넣은 20여점의 비단 옷가지와 신발 등도 썩지 않았으며 건을 맨 끈도 시신의 목에 그대로 묶여 있었다.
미라로 발견된 정온은 성종때인 1474년 이조판서를 지낸 제안공 정효상(1432∼1481)의 2대손으로 중종시절 찬의를 지냈다.
1995-11-07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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