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년간의 미국 생활을 청산하고 1977년 한국으로 돌아온 우리는 옛날에 살던 미아동 집에 정착했다.아이들은 국민학교 2,4,6학년이었다.
미국 학교에 다니던 아이들은 귀국해서 한국 학교에 다녀야 한다.수세식 변소 대신 재래식 변소를 사용해야 한다.재래식 변소에 가기 싫어하는 아이들이 한국학교에 어떻게 적응할가가 걱정스러웠다.
석달이 지난 후,아이들은 결국 자기네들이 다닐 학교를 찾았다.
한국 말을 할 줄 모르는 둘째가 학교에 갔다 온 후 「아이 엠 소리」를 한국어로 뭐라고 말하느냐고 물었다.나는 친구에겐 「미안해」 어른에게는 「죄송합니다」라고 말해야 한다고 했다.이렇게 말한 나는 재래식 변소도 문제였지만 언어소통 문제도 심각한 것이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다.학교에서 돌아 온 둘째는 학교에 가기 싫다고 했다.나는 「왜냐」고 물었다.남의 발을 모르고 밟거나 몸이 부딛혔을 때 꼬박 꼬박 「미안해 sorry」라고 말했는데 다른 아이들은 그렇지 않을 뿐 아니라 어떤 아이는 자기더러 「미안해」를 그만 쓰라고 했다면서 둘째는 이런 아이들 하고 어떻게 같이 지내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어떤 말로 아이를 납득시켰는지 생각나지 않는다.그러나 그 아이는 자라서 지난 여름 제 처를 데리고 다시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한국도 이젠 여러 면에서 많이 달라졌다.그러나 아직도 한국에서 생활하는 외국인인 나의 학생들(서울대 어학연구소생)은 「미안해」하는 말을 못들어서 안달이다.세계화는 이것부터 했으면 싶다.
미국 학교에 다니던 아이들은 귀국해서 한국 학교에 다녀야 한다.수세식 변소 대신 재래식 변소를 사용해야 한다.재래식 변소에 가기 싫어하는 아이들이 한국학교에 어떻게 적응할가가 걱정스러웠다.
석달이 지난 후,아이들은 결국 자기네들이 다닐 학교를 찾았다.
한국 말을 할 줄 모르는 둘째가 학교에 갔다 온 후 「아이 엠 소리」를 한국어로 뭐라고 말하느냐고 물었다.나는 친구에겐 「미안해」 어른에게는 「죄송합니다」라고 말해야 한다고 했다.이렇게 말한 나는 재래식 변소도 문제였지만 언어소통 문제도 심각한 것이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다.학교에서 돌아 온 둘째는 학교에 가기 싫다고 했다.나는 「왜냐」고 물었다.남의 발을 모르고 밟거나 몸이 부딛혔을 때 꼬박 꼬박 「미안해 sorry」라고 말했는데 다른 아이들은 그렇지 않을 뿐 아니라 어떤 아이는 자기더러 「미안해」를 그만 쓰라고 했다면서 둘째는 이런 아이들 하고 어떻게 같이 지내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어떤 말로 아이를 납득시켰는지 생각나지 않는다.그러나 그 아이는 자라서 지난 여름 제 처를 데리고 다시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한국도 이젠 여러 면에서 많이 달라졌다.그러나 아직도 한국에서 생활하는 외국인인 나의 학생들(서울대 어학연구소생)은 「미안해」하는 말을 못들어서 안달이다.세계화는 이것부터 했으면 싶다.
1995-02-08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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