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색해진 「유엔 관용의 해」/나윤도 뉴욕특파원(오늘의 눈)

무색해진 「유엔 관용의 해」/나윤도 뉴욕특파원(오늘의 눈)

나윤도 기자 기자
입력 1995-02-03 00:00
수정 1995-02-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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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평화와 공영을 추구해온 유엔의 창설50주년을 맞아 올 1년동안 대대적으로 펼쳐질 기념행사가 1일 유엔본부 총회장 로비에서 열린 유엔헌장전시회를 시작으로 막을 올렸다.

1백85개 회원국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치러진 이날 기념식은 미국립문서보관소의 피터슨 소장과 올브라이트 유엔주재 미국대사가 국립문서보관소에 보관하고 있는 유엔헌장 원본을 부트로스 갈리 유엔사무총장에게 전달하면서 절정에 올랐다.

이어서 창설당시부터 현재까지 50년동안 근속해온 5명의 유엔사무국 직원이 나와 6대주에서 온 6명의 어린이에게 유엔헌장 복사본을 하나씩 증정,상징적으로 다음 세기의 주역들에게 유엔헌장의 지속적 실천으로 인류의 평화를 당부하는 순서에는 콧날이 시큰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날 행사를 지켜보면서 유엔이 50주년을 맞아 내세운 「관용의 해」 모토가 첫행사부터 무색해졌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전날 조 실스 유엔공보관은 정오 브리핑 말미에 『이번 50주년행사를 통틀어 전임 사무총장을 비롯,전임 의장등 전임자는 한사람도 초청하지 않기로 했다』면서 『그 이유는 쿠르트 발트하임 전총장 초청건으로 유엔이 미국과의 불필요한 마찰을 피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72년부터 81년까지 제4대 유엔사무총장을 역임했으며 후에 오스트리아대통령까지 역임한 발트하임 전사무총장은 2차대전 당시 발칸에서 전쟁범죄를 자행한 나치군대에 복무한 것으로 밝혀져 미법무부에 의해 지난 87년부터 입국금지자로 돼 있기 때문에 유엔으로서는 어쩔 수 없다는 설명이었다.

이 때문에 또 하나의 생존자로 82∼91년 사무총장 페레스 데 케야르도 덩달아 초청자명단에서 제외됐다.반평생을 유엔에서 보낸 77세의 발트하임은 이번 행사 참석을 진정으로 원했으며 오스트리아정부도 그가 단순히 나치부대에 근무했을뿐 악행을 저지른 흔적이 없다며 지난해 9월부터 외교채널을 총동원,그의 유엔방문 성사를 위해 노력해왔다는 것이다.

이번 그들의 불참이 유엔측의 소극적 태도 때문인지 끝내 명분에 쫓겨 대의를 저버린 미국측의 편협성 때문인지 잘 알 수는 없다.그러나 「평화보다 더 중요한 것은 관용」이라는 유엔50주년 표어가 공허하게만 보였다.
1995-02-03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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