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양력설을 쇠겠다(송정숙칼럼)

그래도 양력설을 쇠겠다(송정숙칼럼)

송정숙 기자 기자
입력 1995-01-12 00:00
수정 1995-01-12 00:00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나는 양력설을 쇤다.그래온지 30년도 넘었다.양력설에 4대조상 9위에게 차례도 지내고 집안의 세배행사도 치른다.차례술로 음복하고 떡국으로 아침을 치르고 덕담도 나눈다.『아무개는 새해엘랑 논문을 통과시키라』든가,『네가 이제 고3이 되는구나.고생문이 훤하네.그렇지만 누구나 치르는 공정한 경쟁이니까 일년동안 잘 대비하자』따위로 자라는 젊은이들을 격려도 하는 꽤 정착된 신년행사다.캐나다로 이민간 막내집으로부터 1백달러와 함께 『마음으로 보내는 세배』를 받은 올해도 양력을 쇠었다.

그런데 최근 몇년사이 우리의 이 신년행사가 외로워지는 것을 느낀다.「설날」이라는 이름으로 음력설의 연휴가 사흘씩이나 늘어나면서,함께 양력설을 지내던 주변사람들이 하나둘씩 음력설로 U턴을 하고 양력설을 지내는 일이 차츰 소외되는 분위기가 되고 있다.그 시작은 느닷없는 선심으로부터 왔다.설날 앞뒤로 휴일을 붙여준 것이다.그러자 방송같은데서는 『되찾은 우리설』타령을 거듭하며 음력설 쇠는 것이 민족정기의 회복이라도 되는 것처럼 부추겼고양력설 지내는 일은 배반자라도 된 것 같은 소외감이 들게 하였다.

정말 우리는 음력설을 어디에 잃었다가 되찾은 것일까.눈만 뜨면 모든 것을 양력으로 생활하고 신년이면 세계의 정상들이 신년사를 주고받으며 모든 공공기관과 민간부분의 업무가 양력신년에 새로 출발한다.수출입이 시작되고 이른바 정보고속도로를 타고 지구촌의 정보들이 새해와 함께 흘러든다.우리끼리도 『새해 복많이 받으십시오』하는 우리식 새해인사를 자연스럽게 주고받는다.우리가 이렇게 민족의 진운을 위해 양력생활을 하기로 결정한 것은 대한제국 시대에 황제의 칙령에 의해 정한 것이다.

식민통치를 받으며 양력생활이 강요되기는 했지만,그 강제방법에 잘못이 있었지 양력생활이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이제와서 음력설을 『우리설 되찾기』로 호들갑스럽게 구는 것은 좀 이상하다.그런데도 30%를 넘던 양력설파가 줄어서 이제는 15%미만이 되었다니 할말은 없다.

음력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생활 신년은 양력으로 맞고 차례나 세배같은 행사는 음력명절이래야 제맛이 난다고 말한다.그러나 새해 첫날을 「설」이라고 부르는 우리의 설풍속이 가진 문화적 특성과 강점은 「차례」와 「세배」에 있다.새해를 맞아 조상앞에 자손이 모여 인사를 드리고 새해에도 열심히 정진하며 좋은 삶을 노력하겠노라고 다짐하는 이 두가지 행사가 빠지면 신년의 넋이 빠진다.

또한 우리에게 있어 제사는 집안간의 파티기회이고 설추석의 차례는 집안이 모이는 가장 명분있는 날이다.더욱이 혼례도 상례도 밖에서 지내게 된 현대의 도시생활에서는 이 기회가 친척의 얼굴을 익히고 아이들에게 「집안」구성원을 알리는 유일한 기회다.양대 기제를 모시는 우리집은 알 수만 있으면 제사를 양력으로 지낸다.양력생활을 하다가 음력날짜를 기억못해 본의아니게 불효하는 젊은이를 줄이기 위한 것이다.

무학이셨던 내 친정어머니께서는 생전에 커피를 좋아하셨고 초콜릿을 좋아하셨다.그래서 그분 제사상에는 커피와 초콜릿도 진설된다.그리고 그분 제사도 양력날짜로 모신다.「장화홍련뎐」같은 딱지본 이야기책보다는 이광수의 「흙」이나 「유정」「무정」을 젊어서부터 탐독하셨고 노년에는 신문연재로 최인호의 「별들의 고향」을 읽으시던 분이므로 이런 제사에 그분은 불만이 없으시다는 것을 우리는 믿고 있다.

차례를 지내고 세배를 드리는 고유하고 아름다운 우리의 명절문화를 우리는 매우 소중히 여기고 사랑한다.그러나 그러기 위해 양력이 합당하지 않다고는 생각지 않는다.그렇다고 음력을 고집하는 이들에게 맞설 생각도 없다.그러나 음력 지내는 사람이 대다수니까 아예 양력설은 없애야 한다는 주장에는 찬성할 수가 없다.양력 정월 초하루가 공휴일에서 취소된다 하더라도 지구촌이 함께 지내는 양력설에 우리전통을 복합시켜 지내는 우리식의 「설쇠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그것이 세계화와도 합당하다는 생각을 나는 하고 있으므로.<본사고문>
1995-01-12 5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탈모약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재명 대통령이 보건복지부 업무보고에서 “탈모는 생존의 문제”라며 보건복지부에 탈모 치료제 건강보험 적용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대통령의 발언을 계기로 탈모를 질병으로 볼 것인지, 미용의 영역으로 볼 것인지를 둘러싼 논쟁이 정치권과 의료계, 온라인 커뮤니티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당신의 생각은?
1. 건강보험 적용이 돼야한다.
2. 건강보험 적용을 해선 안된다.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