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열씨의 한글사랑/임영숙 문화부장(서울광장)

이수열씨의 한글사랑/임영숙 문화부장(서울광장)

임영숙 기자 기자
입력 1994-10-08 00:00
수정 1994-10-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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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받았다.보낸이는 모르는 사람이었다.봉투를 뜯어보니 내가 쓴 「서울광장」을 신문에서 오려내 여러곳 교정을 본것이 들어 있었다.왈칵 얼굴에 모닥불을 끼얹은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다음순간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우리의 두 배우」라고 쓴것이 「우리 두 배우」로,「이제 우리 사회도 다양한 가치가 존중되는 다원화된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가 「이제 우리 사회도 다양한 가치를 존중하는 다원화한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는 등으로 고쳐져 있었다.

평소 무심코 써 온 표현들이 우리말 어법에 맞지 않았던 것이다.그 편지를 읽으면서 내 자신 얼마나 영어식 피동문을 자주 쓰는지 반성하게됐다.

편지를 보낸 이수열씨(66)는 알고 보니 유명한 「재야 교열선생님」이었다.서울여고 국어교사였던 그가 지난해 정년퇴직한후 1년여동안 교열하여 필자들에게 보낸 신문기사가 5백여건에 이른다니 신문에 글 쓰는 이치고 그의 편지를 받아보지 않은 사람이 드물듯 싶다.신문뿐만 아니라 방송에도 그는 같은 일을 하고 있다.

그가 쓴 책 「우리말 우리글 바로알고 바로쓰기」를 읽어보면 그의 날카로운 지적상대는 교과서 국어사전 헌법에까지 이르며 정지용시인을 비롯,한국문학사에 빛나는 문인들도 가차없는 비판대상이 되고 있다.이를테면 정지용의 시 「향수」중 「질화로의 재가 식어지면…」은 「질화로의 재가 식으면…」으로 고쳐야 하고 헌법 제67조 4항 「대통령으로 선거될 수 있는 자…」는 「대통령이 될수 있는 이…」로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정도면 우리 어문정책에 문제가 있다고 할 수 밖에 없을것 같다.물론 그의 지적속엔 언어의 현실성을 간과한 측면도 없지 않다.언어는 대중의 힘이 작용하는 방향으로 시대와 함께 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의 작업은 소중한 것으로 평가해야 하며 우리 어문정책의 재검토가 있어야 할것이다.그가 하는 국어순화운동은 한 개인이 할 일이 아니라 국가가 나서서 해야할 일인 것이다.

한국인이면 누구나 한국어를 잘한다고 생각하기 쉽다.바로 거기에 함정이 있다.모국어라해도 정확히 배우고 익히지 않으면 제대로 구사할수 없다.

모국어에 대한 유난스러운 자존심으로 유명하고 최근 반영어법을 만들어 더욱 화제가 된 프랑스의 국어교육 기본은 철자법의 엄정성과 작문의 훈련,정확한 국어사용을 위한 받아쓰기등이다.

『프랑스에서 영화사 강의를 들을때 학생들의 발표를 들은 교수의 평은 언제나 우선 잘못 사용된 불어문장의 교정으로 시작되었다.박사학위 논문발표회에서도 심사위원의 평은 오자나 그릇되거나 세련되지 못한 표현에 대한 지루하고 혹독한 지적으로 시작되는것이 보통』이라고 프랑스에서 공부한 어느 대학교수는 회고한다.

우리 현실은 어떤가.프랑스 한림원과 비슷한 역할을 맡은 국립국어연구원이 설립돼 있긴 하나 아직 그 활동은 미미하다.한글학회의 「우리말 큰사전」 금성출판사의 「국어대사전」 이희승의 「국어대사전」등 지금까지 출간된 대사전들도 한글맞춤법및 표준어 규정을 따르지 않았거나 사전들 마다 서로 다르게 적용하여 국민언어생활에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교육현장에서는 국어책이 너무 어렵다는 말이 나온다.중학교 1학년 교과서 문학단원에 나오는 「공양미 삼백석」이 그 한 예.학생들이 처음 대하는 고어투 한자체 투성이여서 내용파악만으로도 빠듯한데 고대소설의 특성까지 배우도록 돼있다.교과서 편찬자들이 교육대상을 중1년생이 아니라 고1년생으로 착각한 것이 아닌가 싶다.

게다가 교육과정에서 국어는 소홀히 취급해 영어보다 배점이 낮다.입사시험에서도 그것은 마찬가지여서 국민언어 생활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신문·방송등 대중매체마저 부정확한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것이다.

9일은 제5백48회 한글날이다.아무리 국제화 시대라 해도 우리말 우리글을 갈고 닦는 일에 소홀해서는 안된다.이수열씨의 외로운 노력이야말로 한글날 표창받아야 할 일인것 같다.

그의 빨간 볼펜이 이 글엔 몇번이나 스치게 될는지….
1994-10-08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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