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한명회가 은퇴 앞두고 지어/정자:상(서울 6백년만상:56)

압구정/한명회가 은퇴 앞두고 지어/정자:상(서울 6백년만상:56)

김학준 기자 기자
입력 1994-09-05 00:00
수정 1994-09-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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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보이는 절경에 자리… 풍류객 줄이어/세검정은 총융청 군인 여가용으로 세워

「산수가 좋은 곳에 놀기 위해 지은 집」이라는 사전적 의미와 같이 정자는 우선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고 생활의 여유를 형이상학적으로 나타내는 공간이었다.

정자에서 선비들이 술잔을 나누거나 바둑을 두고 거문고를 타는 것은 요즘 사람들이 다방에서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었다.

서울에는 옛날부터 많은 정자가 있었다.남산과 북한산의 계곡은 물론이고 한양의 남쪽을 흐르는 한강변에 많은 정자가 지어졌으며 이곳에서 시인·묵객들은 경치를 즐기면서 많은 시가를 남겼다.

오늘날 서울의 지역이름으로 유명한 압구정과 세검정은 이러한 정자 명칭에서 비롯되었다.

강남구 압구정동은 조선초 유명한 권신인 한명회가 지은 「압구정」이라는 정자에서 유래되었다.

성종때 정계은퇴를 앞둔 한명회는 명승지를 찾아 풍류로 세월을 보내기 위해 지금의 압구정동 산 310의3 부근 언덕에 압구정을 지었다.

압구정이 위치한 곳은 지금의 압구정동 456현대아파트 72동과 74동 사이로 잠실쪽에서 흐르는 한강줄기가 서남쪽으로 꺾어지는 모습이 내려다보이고 닥나무가 무성했던 저자도가 그림처럼 눈앞에 펼쳐지는 절경의 땅이었다.압구정이란 「오리·갈매기와 사귀는 정자」라는 뜻으로 세속의 일을 잊어버리고 갈매기를 벗삼아 남은 생애를 조용히 보내겠다는 뜻을 담아 지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정자이름과는 달리 권세와 명리에 밝은 한명회가 권력을 놓을 생각을 않자 성종때의 문신 최경지는 압구정을 지나면서 『임금의 은총 깊으니 정자가 있어도 와서 즐길 시간이 없네.가슴속에 공명심만 없어진다면 오리·갈매기와 사귈 수 있으리』라는 시를 지었다.

주인이야 어떻든 조선 말기까지 많은 명사·시인들이 찾아와 풍류를 즐기고 명시를 남겼던 압구정자리에는 지금 고층아파트들만이 숲을 이루고 있어 세월의 무상함을 새삼 느끼게 한다.

이와는 달리 자하문밖 종로구 신영동 사천계곡옆에 6각형 모양으로 지어져 오늘날에도 모습을 볼 수 있는 세검정은 오히려 그 유래가 분분하다.

1623년 인조반정때이귀·김유 등이 광해군 폐위를 논하면서 이곳에서 칼을 씻었다는데서 유래됐다는 설이 있으며 연산군이 유흥을 위해 세웠다고도 전해진다.

그러나 영조 24년(1748년)에 북한산성의 수비를 맡던 총융청 군인들이 군영 부근의 경치좋은 곳을 택하여 여가를 즐기기 위해 세웠다는 것이 정설로 되어 있다.

세검정 일대는 북한산 남쪽기슭과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냇물을 이루고 뒤에는 북한산의 연봉이 아늑하게 병풍처럼 둘러쳐 있는등 산수풍경이 절정을 이뤄 계절에 관계없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특히 물이 워낙 맑아 역대 왕들의 실록이 완성되면 그 실록 초고를 이곳에서 세초해 기록을 없애고 종이는 재생하여 썼다고 전해진다.

임금들은 실록을 완성한 뒤 이곳을 찾아와 연회를 베풀었으며 물이 불어날 때는 도성사람들이 몰려와 물구경을 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세검정은 1941년 인근에 있던 종이공장 화재때 불타 없어졌으나 지난 77년 옛모습 그대로 복원되었다.<김학준기자>
1994-09-05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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