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중음식 맛·격식 으뜸… 사대부집에 번져/지금은 인스턴트식품·인공조미료 판쳐
서울음식의 최고반열에는 역시 궁중음식이 자리잡는다.
전국에서 생산되는 최상급의 명산물만을 모아 일종의 전문조리사인 주방상궁·대령숙수등의 솜씨에 의해 만들어져 임금·세자·왕비등에게 진상되는 음식인만큼 다채롭고 격식이 높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궁중음식이라고 해서 일반음식과 선을 그을 만큼 특이한 것은 아니었다.다만 가장 질이 좋고 다양한 재료와 수준높은 기술로 만들어진 세련되고 화려한 음식일 뿐이었으며 그래서 지체있는 집안이나 대가집은 물론 서민들까지도 비슷한 음식을 먹을수 있었다.
궁안에서 밖으로 출가하는 공주·옹주를 따라가는 상궁·나인과 반대로 입궐하는 사대부 규수와 함께 들어가는 몸종에 의해 양 집단간의 음식교류는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또 궁중에서 특이한 날에 만든 음식을 싸서 사대부집에 내려보내는 「봉송」이라는 것이 있었고 남은 음식은 다시 「꾸러미」로 아랫사람들에게 내려져 적어도 음식만큼은 왕과 백성이 같이 맛볼수 있는 기회가 있었던 셈이다.차츰 왕가의 음식과 서민들의 음식을 구별하기 어렵게 됐다.
지금 누구나 즐겨먹는 설렁탕은 세종대왕이 권농행사의 하나로 지금의 제기동 근처인 「선농단」에 나가 밭갈이 시범을 할때 함께 일하는 신하·백성들에게 베풀던 음식에서 유래된 것으로 전해진다.말하자면 임금과 백성이 한종류 음식을 한자리에서 먹었다는 사실을 전해주고 있다
하지만 궁중음식의 격식만큼은 그 어디에도 비교할수 없을 정도로 엄격하고 까다로웠다.임금이 식사를 할때는 흔히 수랏상으로 불리는 12첩(전유화·숙육·숙채·생채·조리개·장과·젓갈·마른찬·회·별찬·찬구이·더운구이)대원반이 차려졌고 옆에는 기미상궁이 소원반에 육회·수란·팥밥등을 차려놓고 시중을 들었다.
이같이 서울음식의 대부분은 이렇듯 오랜 뿌리를 가지고 있으며 선인들의 노력이 배어있다.
그러나 현대의 물질적 풍요가 서구문화와 복합작용을 일으켜 언제부터인가 국적불명의 식생활이 널리 펴져가고 있다.주·부식을 뚜렷하게 구별하던 오랜 전통과는 달리 외식을 할 때면 으레 각종 고기를 싫컷 먹은 뒤에 밥이나 국수를 후식삼아 조금 먹는 것이 일반화돼 가고 있다.양식이나 일식 먹는 법을 익혀 놓아야 촌티를 면할 정도가 됐다.
요즘 상당수의 주부들은 반찬도 이미 제품화된 김치·된장·젓갈등을 사다먹어 찬 하나를 만들어도 온갖 정성을 다했던 우리네 할머니들을 머쓱하게 만든다.
고춧가루 깨소금 참기름 몇방울이면 천가지 맛을 빚어내던 숙수의 손재주는 차츰 사라지고 인공조미료가 남용돼 갖가지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그런가하면 라면·소시지·피자등 먹기에 우선 편리한 온갖 인스턴트식품들이 식품의 주류를 이뤄가고 있다.
배화여전 전통조리과 윤숙자교수는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서울의 전통음식은 맛과 영양균형면에서 어디에 내놓아도 뒤질 구석이 없다』면서 『어찌된 영문인지 이와같은 우리의 훌륭한 음식이 뒤로 밀려난채 국적불명의 음식문화가 형성돼 가는 현실이 안타깝기만하다』고 말했다.<김학준기자>
서울음식의 최고반열에는 역시 궁중음식이 자리잡는다.
전국에서 생산되는 최상급의 명산물만을 모아 일종의 전문조리사인 주방상궁·대령숙수등의 솜씨에 의해 만들어져 임금·세자·왕비등에게 진상되는 음식인만큼 다채롭고 격식이 높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궁중음식이라고 해서 일반음식과 선을 그을 만큼 특이한 것은 아니었다.다만 가장 질이 좋고 다양한 재료와 수준높은 기술로 만들어진 세련되고 화려한 음식일 뿐이었으며 그래서 지체있는 집안이나 대가집은 물론 서민들까지도 비슷한 음식을 먹을수 있었다.
궁안에서 밖으로 출가하는 공주·옹주를 따라가는 상궁·나인과 반대로 입궐하는 사대부 규수와 함께 들어가는 몸종에 의해 양 집단간의 음식교류는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또 궁중에서 특이한 날에 만든 음식을 싸서 사대부집에 내려보내는 「봉송」이라는 것이 있었고 남은 음식은 다시 「꾸러미」로 아랫사람들에게 내려져 적어도 음식만큼은 왕과 백성이 같이 맛볼수 있는 기회가 있었던 셈이다.차츰 왕가의 음식과 서민들의 음식을 구별하기 어렵게 됐다.
지금 누구나 즐겨먹는 설렁탕은 세종대왕이 권농행사의 하나로 지금의 제기동 근처인 「선농단」에 나가 밭갈이 시범을 할때 함께 일하는 신하·백성들에게 베풀던 음식에서 유래된 것으로 전해진다.말하자면 임금과 백성이 한종류 음식을 한자리에서 먹었다는 사실을 전해주고 있다
하지만 궁중음식의 격식만큼은 그 어디에도 비교할수 없을 정도로 엄격하고 까다로웠다.임금이 식사를 할때는 흔히 수랏상으로 불리는 12첩(전유화·숙육·숙채·생채·조리개·장과·젓갈·마른찬·회·별찬·찬구이·더운구이)대원반이 차려졌고 옆에는 기미상궁이 소원반에 육회·수란·팥밥등을 차려놓고 시중을 들었다.
이같이 서울음식의 대부분은 이렇듯 오랜 뿌리를 가지고 있으며 선인들의 노력이 배어있다.
그러나 현대의 물질적 풍요가 서구문화와 복합작용을 일으켜 언제부터인가 국적불명의 식생활이 널리 펴져가고 있다.주·부식을 뚜렷하게 구별하던 오랜 전통과는 달리 외식을 할 때면 으레 각종 고기를 싫컷 먹은 뒤에 밥이나 국수를 후식삼아 조금 먹는 것이 일반화돼 가고 있다.양식이나 일식 먹는 법을 익혀 놓아야 촌티를 면할 정도가 됐다.
요즘 상당수의 주부들은 반찬도 이미 제품화된 김치·된장·젓갈등을 사다먹어 찬 하나를 만들어도 온갖 정성을 다했던 우리네 할머니들을 머쓱하게 만든다.
고춧가루 깨소금 참기름 몇방울이면 천가지 맛을 빚어내던 숙수의 손재주는 차츰 사라지고 인공조미료가 남용돼 갖가지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그런가하면 라면·소시지·피자등 먹기에 우선 편리한 온갖 인스턴트식품들이 식품의 주류를 이뤄가고 있다.
배화여전 전통조리과 윤숙자교수는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서울의 전통음식은 맛과 영양균형면에서 어디에 내놓아도 뒤질 구석이 없다』면서 『어찌된 영문인지 이와같은 우리의 훌륭한 음식이 뒤로 밀려난채 국적불명의 음식문화가 형성돼 가는 현실이 안타깝기만하다』고 말했다.<김학준기자>
1994-08-22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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