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라는 무대가 없었으면 사람들은 무엇으로 한풀이를 하고 무엇으로 역전의 드라마를 볼 수 있었을까.
대구와 경주 그리고 영월 평창지역에서 있은 이번의 보선도 아주 볼만한 무대를 연출했다.우선 대구 수성갑에서는 정치에는 아무 지식도 없는 한 한맺힌 아녀자가 뛰어들어 남편의 잔여임기를 차지하게 되었고 경북 경주에서는 4전5기의 제1야당 후보가 불모지 진출의 교두보를 쌓았다.그런가하면 정직하고 소박한 강원도 주민들의 신의는 이번에도 건재했다.접적지역의 사람들은 여전히 좀처럼 곡예적 변신놀이에 취하지 않았다.
이번 보선이 여당으로 하여금 표에서는 졌지만 공명에서 이기는 승리를 가져왔다고 말한다.그 말은 맞다.누구도 이번 선거에서 공명을 의심하지는 않는다.그것은 아주 소중한 성과다.그러나 여당의 패배가 「공명」의 시금석처럼 되는 불리한 고정관념을 고착시키지 않았는지는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한편 이번 선거는 여성들에게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 선거였다.그런데 그 특별한 「의미」를 무산시킨 선거가 되고만 것 또한 사실이다.그점이 이번 선거의 아주 큰 애석함이다.
이번 선거를 놓고 여성후보가 두사람 나와서 한사람은 됐으니까 50%는 성취한 것이라고 말할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그러나 우리 모두 알다시피 대구에서의 여성후보는 누가 뭐래도 「남자의 여자」였다.그는 「박아무개의 아내」로서 나온 것이지,여성으로서 하고많은 어려움을 디디며 성장해온 정치지망생은 아니다.또한 당당하게 사회에 진출하여 한사람의 지도자로 성장한 경력여성도 아니고 성차별에 각성한 열혈 여성운동가 출신도 아니다.
오히려 이 여성의원 당선이 여성의 진출로 의미를 갖자면 경주에서도 여성당선자가 나왔어야 했다.이번의 대구지역 여성표는 다소 기묘하고 불완전한 여성표라고 할 수 밖에 없었다.이 표는 또 하나의 여성표가 나오면 「둘」이 되기에 충분한 것이면서도 혼자서는 「하나」로조차 독립하기가 불실한 표였다.그러므로 경주지역에서 여성이 당선되었더라면 당당히 「지역구의 두여성의원」시대가 열렸을 터였는데 그 실패로 「한 여성지역의원」의 자부심도 떳떳하지 못하게 되고 말았다.
따라서 경주에서의 여성의원 당선 실패는 여성계에 여러가지 타격을 안겨 준 셈이다.당장 여당안에 『여자는 아직 안된다』는 정서를 확산시킬지도 모른다.선거에서 여성의원 이야기가 나오면 거의 모든 논평가들이 첫번째로 하는 말은 『여성이 여성을 안찍어주니 남성인들 어쩔수가 없다』는 것이다.이런 식으로 여성의 책임으로 전가하는 기회만 덧붙이게 되고 말았다.아마도 여당안에서는 여성후보를 공천한 일에 대한 책임소재를 놓고 분분한 여론이 출몰할 것이다.그런 일들로 해서 반여성의 정서를 더욱 확산시킬 소지도 있다.그런 점에서는 경주의 여성후보 실패의 책임은 너무 크다.
이렇게 여성후보를 당선시키지 못함으로써 여성은 물론 여당자신이 실패를 키운 것에는 누가 뭐래도 여당 자신의 불찰이 크다.특히 「여성자신이 여성을 외면하는」 우리같은 형편에서는 여성후보를 공천했으면 총력을 기울여 성원하지 않으면 이기기가 매우 어렵다.『하겠댔으니 어디 한번 해봐라』하고 던져둔 채 고군분투하게 한다면 여성을 공천한 것에 별 의미가 없다.
역설적으로 그것을 증명한 것은 대구에서의 여성후보 당선이다.시키고 싶으면 여자라도 배수로 당선시키는 것이 유권자임을 보여주었다.더구나 경주의 여성후보는 개표 초반에 계속 선두를 유지할만큼 선전했고 아주 근소한 표차로 패배했다.이 지역의 표분포는 마치 총선때의 전국의 표분포상황과 유사해서 당선된 야당표는 고정되어 있었고 나머지를 가지고 나눠갖게 되어 있었던 것같다.그런 정세쯤은 당이 유능하면 이미 분석하고 파악해서 공천과정에 참작되었어야 했고,멱을 치받치며 뒤따라오던 3위의 무소속후보에 대한 대처도 마련했어야 했다.그러고도 여성의원의 당선을 기대한 것은 너무했다.
무엇보다도 기왕에 여당이 여성인력의 활용을 당의 시대적 책임으로 선택한 것이라면 그러기에 충분한 체질부터 갖췄어야 한다.
아무리 적대한 남의 당이라도 여성후보를 너무 원색적으로 깎아내리거나 겸손하지 못한 빈정거림을 중앙의 지도자가 하는 것은 여성후보를 낸 정당이 삼갔어야 할 일이다.여성후보를 내려면 여성인력을 소중하게 존중하는 면모를 정당 전체가 보여주는 노력부터 해야 한다.본의가 잘못 전달되어서라도 여성장관을 쥐어박는 여성멸시 비슷한 것은 더구나 같은 여권안에서 보이거나 해서는 안된다.
어쨌든 이번 선거는 야당에는 기가 살게 했고 여당에는 따끔하게 곪은 뾰두라지처럼 다가왔다.생명도 앗아갈 수 있는 급소의 「발찌」는 아니었음을 잘 음미해본다면 여당에도 아주 의미깊은 예고지표가 될 것이다.<본사고문>
대구와 경주 그리고 영월 평창지역에서 있은 이번의 보선도 아주 볼만한 무대를 연출했다.우선 대구 수성갑에서는 정치에는 아무 지식도 없는 한 한맺힌 아녀자가 뛰어들어 남편의 잔여임기를 차지하게 되었고 경북 경주에서는 4전5기의 제1야당 후보가 불모지 진출의 교두보를 쌓았다.그런가하면 정직하고 소박한 강원도 주민들의 신의는 이번에도 건재했다.접적지역의 사람들은 여전히 좀처럼 곡예적 변신놀이에 취하지 않았다.
이번 보선이 여당으로 하여금 표에서는 졌지만 공명에서 이기는 승리를 가져왔다고 말한다.그 말은 맞다.누구도 이번 선거에서 공명을 의심하지는 않는다.그것은 아주 소중한 성과다.그러나 여당의 패배가 「공명」의 시금석처럼 되는 불리한 고정관념을 고착시키지 않았는지는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한편 이번 선거는 여성들에게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 선거였다.그런데 그 특별한 「의미」를 무산시킨 선거가 되고만 것 또한 사실이다.그점이 이번 선거의 아주 큰 애석함이다.
이번 선거를 놓고 여성후보가 두사람 나와서 한사람은 됐으니까 50%는 성취한 것이라고 말할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그러나 우리 모두 알다시피 대구에서의 여성후보는 누가 뭐래도 「남자의 여자」였다.그는 「박아무개의 아내」로서 나온 것이지,여성으로서 하고많은 어려움을 디디며 성장해온 정치지망생은 아니다.또한 당당하게 사회에 진출하여 한사람의 지도자로 성장한 경력여성도 아니고 성차별에 각성한 열혈 여성운동가 출신도 아니다.
오히려 이 여성의원 당선이 여성의 진출로 의미를 갖자면 경주에서도 여성당선자가 나왔어야 했다.이번의 대구지역 여성표는 다소 기묘하고 불완전한 여성표라고 할 수 밖에 없었다.이 표는 또 하나의 여성표가 나오면 「둘」이 되기에 충분한 것이면서도 혼자서는 「하나」로조차 독립하기가 불실한 표였다.그러므로 경주지역에서 여성이 당선되었더라면 당당히 「지역구의 두여성의원」시대가 열렸을 터였는데 그 실패로 「한 여성지역의원」의 자부심도 떳떳하지 못하게 되고 말았다.
따라서 경주에서의 여성의원 당선 실패는 여성계에 여러가지 타격을 안겨 준 셈이다.당장 여당안에 『여자는 아직 안된다』는 정서를 확산시킬지도 모른다.선거에서 여성의원 이야기가 나오면 거의 모든 논평가들이 첫번째로 하는 말은 『여성이 여성을 안찍어주니 남성인들 어쩔수가 없다』는 것이다.이런 식으로 여성의 책임으로 전가하는 기회만 덧붙이게 되고 말았다.아마도 여당안에서는 여성후보를 공천한 일에 대한 책임소재를 놓고 분분한 여론이 출몰할 것이다.그런 일들로 해서 반여성의 정서를 더욱 확산시킬 소지도 있다.그런 점에서는 경주의 여성후보 실패의 책임은 너무 크다.
이렇게 여성후보를 당선시키지 못함으로써 여성은 물론 여당자신이 실패를 키운 것에는 누가 뭐래도 여당 자신의 불찰이 크다.특히 「여성자신이 여성을 외면하는」 우리같은 형편에서는 여성후보를 공천했으면 총력을 기울여 성원하지 않으면 이기기가 매우 어렵다.『하겠댔으니 어디 한번 해봐라』하고 던져둔 채 고군분투하게 한다면 여성을 공천한 것에 별 의미가 없다.
역설적으로 그것을 증명한 것은 대구에서의 여성후보 당선이다.시키고 싶으면 여자라도 배수로 당선시키는 것이 유권자임을 보여주었다.더구나 경주의 여성후보는 개표 초반에 계속 선두를 유지할만큼 선전했고 아주 근소한 표차로 패배했다.이 지역의 표분포는 마치 총선때의 전국의 표분포상황과 유사해서 당선된 야당표는 고정되어 있었고 나머지를 가지고 나눠갖게 되어 있었던 것같다.그런 정세쯤은 당이 유능하면 이미 분석하고 파악해서 공천과정에 참작되었어야 했고,멱을 치받치며 뒤따라오던 3위의 무소속후보에 대한 대처도 마련했어야 했다.그러고도 여성의원의 당선을 기대한 것은 너무했다.
무엇보다도 기왕에 여당이 여성인력의 활용을 당의 시대적 책임으로 선택한 것이라면 그러기에 충분한 체질부터 갖췄어야 한다.
아무리 적대한 남의 당이라도 여성후보를 너무 원색적으로 깎아내리거나 겸손하지 못한 빈정거림을 중앙의 지도자가 하는 것은 여성후보를 낸 정당이 삼갔어야 할 일이다.여성후보를 내려면 여성인력을 소중하게 존중하는 면모를 정당 전체가 보여주는 노력부터 해야 한다.본의가 잘못 전달되어서라도 여성장관을 쥐어박는 여성멸시 비슷한 것은 더구나 같은 여권안에서 보이거나 해서는 안된다.
어쨌든 이번 선거는 야당에는 기가 살게 했고 여당에는 따끔하게 곪은 뾰두라지처럼 다가왔다.생명도 앗아갈 수 있는 급소의 「발찌」는 아니었음을 잘 음미해본다면 여당에도 아주 의미깊은 예고지표가 될 것이다.<본사고문>
1994-08-04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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