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운 학자적 소신/김성호 문화부기자(오늘의 눈)

아쉬운 학자적 소신/김성호 문화부기자(오늘의 눈)

김성호 기자 기자
입력 1994-06-05 00:00
수정 1994-06-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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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하오 서울 인사동 덕원미술관 1층에서는 이례적인 토론회가 열려 눈길을 끌었다.인우회주최의 고미술전시회에 선보이고 있는 혜원 신윤복의 속화첩 진위시비를 가리기 위한 모임이었다.

성신여대 허모교수는 이 자리에서 그림의 주제나 묘법등이 혜원의 회화임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고 소신을 거듭 밝혔다.나머지 참석자 3명도 주최측의 입장에서 맴도는 질의와 발언으로 일관해 결국 이날 토론은 외형상으로는 「가짜논쟁」을 일으켰던 나모화가의 참패로 끝나게 된 셈이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어느정도 그 진위를 객관성있게 가려주기를 기대했었다.그러나 이런 기대는 물거품으로 변한채 우리 학계가 당면한 논리부재의 허약성과 무소신만 보여준것 같아 씁쓸한 감을 지울 수 없다.

당초 이날 자리는 매우 큰 의미를 갖고 있었다고 보아야한다.우선 문제의 속화첩이 일본에서 거액을 들여 사온 반환 고미술품이란 점에서 그에 상당한 문화재 지정을 위한 첫 단계란 것이고 둘째는 학계와 전문 고미술상이 공동참여하는 고미술감정기구가 없는 실정에서 이날 학자들의 소신발언이 진위판정에 사실상 결정적인 영향력을 미친다는 점에서 였다.

사안의 중요성을 인식한 인우회측은 국내 내로라는 학자와 고미술관계자 4백여명에게 서신으로 토론회 참석을 제의했고 특히 「가짜 혜원그림」견해쪽에 기울었던 권위자들에겐 직접 찾아가거나 전화를 통해 참석을 수차례씩이나 권유했다.그러나 반응은 소극적이었고 결국 이날 모임은 신랄한 반대론자 없이 「진짜 혜원그림」쪽에 손을 들어준 결과를 낳은 셈이다.

문제는 학자들의 학문적 양심이다.흔한 미술전시회엔 자신의 이론이나 학설을 들춰가며 유식한 찬사(?)를 아끼지 않으면서 이처럼 중차대한 현실문제엔 등을 돌리는 이중성이 그것이다.물론 사안 자체가 가볍지않은 분위기에서 공개적인 견해피력이 위험부담이 있는만큼 나서기를 꺼려하는 심정은 이해가 간다.그러나 이들 학자의 발언에 모든 것이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번 사안의 경우 소신있는 참여가 더욱 아쉬웠던 것이다.



이를테면 우리 학계가 갖고있는 편견성 복지불동의 전형을 보여줬다고나 할까.성급한 문제제기로 무모한 논쟁의 단초를 제공한 당사자로 낙인찍히긴 했지만 논쟁자체를 만든 한 한국화가의 용기에 점수를 주고싶은 마음이 생기는 그런 자리였다.
1994-06-05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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