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바카키의 한국인들(뉴욕에서/임춘웅칼럼)

앨바카키의 한국인들(뉴욕에서/임춘웅칼럼)

임춘웅 기자 기자
입력 1994-03-04 00:00
수정 1994-03-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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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2년전의 일이다.미국의 대통령선거전 예비선거가 벌어지는 뉴 햄프셔에 취재를 갔었다.

2월이라 아직도 날씨가 쌀쌀했는데 각당 후보들의 유세장을 찾아 맨체스터시의 이골목 저골목을 뒤지고 다니다 문득 한골목에서 한국음식점이라는 한글간판을 목격하게 됐다.기자는 한동안 어리둥절했다.이런 곳에 한국음식점이 있다니 하는 놀라움이었다.뉴 햄프셔는 미동북부 깊숙이 자리잡은 벽지로 설마하니 한국인이 이런 곳에 살리라고는 기대할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저녁때를 기다려 그 집에 찾아갔을때 6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할머니가 나와 아주 반갑게 맞아주었다.50년대에 남편과 함께 유학을 와 공부를 하고 취직해 살다 은퇴를 한후 소일삼아 한국음식점을 차리게 됐다는 것이다.한국인도 꽤 살지만 미국인들이 주고객이라는 이 식당에는 태극기도 걸려있고 고풍스런 한국도자기 몇점도 놓여있었다.

금년 2월에는 뉴 멕시코엘 갔다.미국의 핵기지 취재가 목적이었는데 핵기지란 본래 사람을 피해다니게 돼있어 뉴 멕시코도 보통 오지가 아니다.뉴욕에서 직접가는 비행기가 없어 다른 곳을 거쳐야만 들어가게 돼있고 땅이라야 가도가도 끝이 안보이는 사막뿐인 곳이다.남한의 3배가 조금 넘는 땅덩어리에 겨우 1백만명이 살고있으니 짐작이 갈만하다.

인구 1백만중 원주민(인디언)이 12만명이나 돼서 아리조나주와 함께 백인 다음으로 원주민 수가 많은 두주중 하나다.이런 곳에 한국인이 살리라고는 더욱 생각할수 없었다.

그런데 앨바카키공항에서 호텔로 들어가는 택시속에서부터 예상치 못한 일들과 부딪쳤다.백인운전사가 『안녕하십니까』라고 한국말인사를 해왔던 것이다.오산에서 군생활을 해 인사 몇마디는 알고 있다는 이 운전사는 원한다면 한국식당을 안내해주겠다고 했다.여기도 한국식당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자기가 알기로도 몇개는 된다는 것이었다.

뒤에 한국식당에서 들은 얘기로는 뉴 멕시코에서 제일 큰 도시이긴 하나 앨바카키에는 1천여명의 한국인이 살고있다는 것이었다.한국식당이 다섯이고 교회도 두곳이나 된다고 했다.이런 사막에서 무슨일을 하고 살며 주말은 어떻게 소일할까가 의문이었던곳에 한국인이 1천여명이나 된다는 것은 믿어지지 않는 사실이었다.이곳 한국인들은 대부분 군부대를 상대로 장사를 하거나 군관련 직장을 얻어 산다고 한다.

이어 주도이고 원주민이 특별히 많이사는 산타페에 가 한 멕시칸식당에 들렀을때의 일이다.원주민과 백인의 피가 섞인듯한 한 젊은이가 다가와 어디서 왔느냐고 묻기에 「한국」이라고 대답했다.그는 대뜸 『아임 와랑도』라고 했다.무슨 소린줄 몰라 몇번이나 되물어 알아보니 자기가 한국의 태권도를 배우는 화랑도라는 것이었다.그러면서 그는 아주 자랑스럽게 자기 보스(우두머리)가 한국인이라고 했다.

미국의 각지에 한국인들이 이렇게 널리 퍼져살고있는 이유중의 하나는 여러지역 출신 미군병사들과 국제결혼을해 온사람들이 많은 때문인 것같다.미국내선 여객기 팸플릿에 한글안내문이 나오고 「차렷」「경례」등 한국말 구령에 맞춰 태권도 단련을 하는 장면의 광고가 TV화면에 자주 나타난다.

이런 것들도 국력이라면 국력이다.<뉴욕 특파원>
1994-03-04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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