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히」 풀려난 러 쿠데타범/이기동 모스크바특파원(오늘의 눈)

「당당히」 풀려난 러 쿠데타범/이기동 모스크바특파원(오늘의 눈)

이기동 기자 기자
입력 1994-03-04 00:00
수정 1994-03-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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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회의 사면결의안에 따라 소위 10월사태 주모자들과 함께 지난 91년의 소련쿠데타 주역 12명이 모두 석방됐다.국가반역죄로 최고 사형에까지 처해질 수 있는 이들이 개선장군같은 모습으로 정치범감옥인 모스크바시내의 레포르토감옥을 걸어나왔다.

당시 부통령으로 「8인비상위원회」 대표를 맡았던 겐나디 야나예프는 출옥일성으로 『정의가 승리했다』고 외쳤다.그러고는 『91년 여름 우리는 비록 미숙했지만 구국의 일념으로 거사를 했었다』고 덧붙였다.

당시 총리로 쿠데타에 가담했던 발렌틴 파블로프는 『국가화합을 위해 이번 사면은 현명한 결정』이라고 말했다.함께 풀려난 나머지 사람들도 모두 비슷한 소감들을 피력했다.

지난해 4월 이들에 대한 재판이 시작될 당시 옐친대통령은 『법과 정의가 지배하는 국가를 세우는 각오로 이 재판상황을 지켜보겠다』고 말했다.그러나 재판은 시작되면서 곧바로 코미디나 다름없는 장면들을 연출했다.피고들은번갈아가며 칭병,출정을 거부했고 그때마다 재판은 기약없이 연기됐다.

의회보수파와의 정쟁이 심화되고 국민들사이에 보수세력들에 대한 동조분위기가 확산되는 기미가 있자 이들의 재판은 의식적으로 자꾸만 연기됐다.최고회의의장으로 쿠데타에 가담했던 루키야노프는 지난해 12월 피고의 신분으로 총선에 버젓이 출마해 당선,이번 사면결정이 내려지기 전에 이미 의정활동을 하고 있었다.

쿠데타저지에 앞장섰던 많은 러시아국민들은 이들에 대한 재판이 「법에 의해」 공정하게 진행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맛보고 싶어했을 것이다.그러나 옐친대통령은 속절없이 재판을 끌다 사면에까지 이르게 함으로써 이 기대를 저버렸다.그해 여름 모스크바시민들이 맨손으로 탱크에 맞서며 지키려 했던 정의는 결국 「조롱거리」로 전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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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려나는 쿠데타주범이 오히려 『정의가 승리했다』고 외쳤다.이들의 사면은 러시아의 개혁이 보수대 개혁세력간 권력대립을 넘어 보다더 깊은 곳에서 멍들어간다는 우려를 갖게한다.
1994-03-04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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