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한국외교(뉴욕에서 임춘웅칼럼)

부끄러운 한국외교(뉴욕에서 임춘웅칼럼)

임춘웅 기자 기자
입력 1993-12-03 00:00
수정 1993-12-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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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뉴욕 타임스지는 우리들에게는 부끄럽기 비할데 없는 한 기사를 요란스럽게 보도하고 있다.2쪽에 걸쳐 펼쳐진 장장 한쪽 전면분량의 이 기사는 큼지막한 도표에 사진까지 곁들여 시각적 효과마저 부추기고 있다.

이 기사는 뉴욕을 무대로 외교활동을 벌이고 있는 세계 각국 외교관들이 92년 1년동안 주차위반으로 딱지를 받고도 벌과금을 내지 않고 있는 나라별 통계를 뉴욕시당국이 발표한 것과 관련한 기획기사다.

이 통계에 따르면 한국은 3천1백94건 위반에 미납금 총액이 12만4천5백66달러(한화 약1억원)로 당당 세계 9위를 기록하고 있다.1위는 러시아로 2만5백39건 위반에 80만1천1백21달러,2위 이스라엘은 5천7백23건에 22만3천1백97달러였다.

10위까지 발표된 이 통계에 서구선진국으로는 프랑스가 유일하게 6위에 올라있을뿐 다른 선진국의 이름은 끼어있지 않다.더욱 부끄러운 것은 아시아지역 국가중에서도 유독 인도네시아와 한국만이 끼어있다는 점이다.일본이나 중국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특히 일본은 미납건수가 전무한 것으로 알려졌다.또하나 재미있는 것은 유엔회비를 내지 못해 쩔쩔매고 있는 북한도 이 명단에 들어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뉴욕에 상주하는 외교공관으로는 유엔대표부가 1백66국,총영사관이 71개가 있다.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총영사관은 대표부와 겹쳐있는게 보통이므로 우리나라는 1백66개국중 9위를 기록한 셈이다.

외교관이라고 해서 일반인들과 달리 불법주차를 할수 있거나 딱지를 받고도 벌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법은 없다.다만 벌과금을 내지 않아도 처벌되지 않는 외교관면책특권을 원용하고 있을 뿐이다.뉴욕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년부터 벌금을 내지 않는 외교관차량에 외교관번호판을 내주지 않는 방법을 검토하고 있다.또 국무부는 벌과금이 많아진 나라에는 원조액을 조절하는 권한을 확보해두고 있다.우리나라야 원조와 관계가 없지만 이스라엘은 실제로 이 부분에 걸려 최근 6만2천8백달러의 주차위반 벌금을 일차로 낸 바 있다.

이 문제에 대한 우리 대표부의 해명이 또한 흥미롭다.명단에 올라있는 나라들은 직원들의 집이 대부분 맨해턴 밖에 있는 경우라는 것이다.맨해턴은 집세가 비싸 부득불 교외로 나가 살고있기 때문에 차를 가지고 출근을 해야 하는데 정부가 주차비를 따로 주지 않아 불법주차를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우리 대표부 바로 아래층에는 한달 2백20달러면 되는 번듯한 주차장이 있다.정당한 이유가 있다면 정부에서 주차비를 주도록 예산투쟁을 하거나 아니면 봉급에서 주차비를 내고 주차하는게 외교적인 행동일 것이다.외교관이라고 해서 다른 사람들과 달리 봉급에서 주차비를 낼수 없다는 논리가 따로 있을수 없다.

우리 대표부는 최근 4천여만달러(약 3백20억원)를 들여 대표부건물과 대사관저를 새로 구입키로 했는데 관저가 너무 비싸다고 해서 여론의 빈축을 산 일이 있다.이런 여론으로 해서 한때 예산확보가 어려운 상황에까지 이르렀으나 대표부는 맹렬투쟁을 벌여 끝내 예산을 얻어낸 일이 있다.

국민의 세금은 이렇게 쓰면서 자기주머니에서 내야할 주차비는 아까워 나라의 얼굴에 흠집을 낸다면 한국외교는 지금 어디에 서있는 것인가.<뉴욕에서>
1993-12-03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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