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뜻깊은 올 광복절/「8·15」48주년을 맞으며

유난히 뜻깊은 올 광복절/「8·15」48주년을 맞으며

김주영 기자 기자
입력 1993-08-14 00:00
수정 1993-08-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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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총독부 철거 순국선열들도 반길것

오랫동안 새삼스럽지 않던 일이 어느 날 새삼스러워질 때가 있다.내일 맞이하는 8·15가 바로 우리들에게 새삼스러워지는 날이다.1945년이후 근 50년에 가까운 세월이 흘러간 오늘에 이르기까지 올해만치 이날의 의미와 뜻이 새삼스럽게 되새겨지는 날도 별반 없었다는 느낌이 강하다.우리민족에게는 그때마다 새삼스러워야 할 오늘의 의미와 뜻이 국민들의 가슴에 뜨겁게 와닿지 못했던 것은 여러갈래의 해석이 있을 수 있다.

8·15의 의미가 우리들 국민정서를 송두리째 사로잡지 못한 가장 큰 이유중의 하나는 해방당시 들어선 정부가 일제의 잔재를 청산시킬 아무런 의지도 갖고 있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후 48년이란 세월이 흘러간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청산의 의지는 별달리 피부에 와닿았던 적이 없었다는 데 있다.

그 청산이란 반드시 피비린내나는 숙청과 보복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일제의 관청에서 관리로 녹을 먹던 사람이 해방된 조국 정부의 요직에 그대로 들어가 앉아 나라의 살림을 도맡아 처리하였고 일제가 쓰던 건물에 그대로 들어앉아 공무를 보았으니 의자나 책상 역시 그대로 물려받은 것이었다.

독립투사의 후손들은 달동네의 사글세방에서 끼니를 굶으며 병고의 시달림을 받고 있는데 일제에 부역하거나 거기에 빌붙어 호사를 누린 사람들의 후손은 각계각층의 요직에 앉아 권세를 누려왔다.누구도 그런 사람들의 구차스러움과 야비함을 꾸짖지 않았다.심지어는 그런 사람들이 순국선열들의 영령들을 애도하는 행렬의 앞줄에 서서 분향까지 하는 웃지 못할 사태까지도 우리는 여러번 목도해왔다.

아픔도 역사라는 어눌한 궤변과 건축사적 사료가 된다는 이유 때문에 일제의 총독부건물에 나라의 중앙관청이 들어서고 총독의 살림집에 대통령이 또한 살림집을 차려왔다.

이러한 모든 청산의욕의 뜨뜻미지근함은 해마다 맞이하는 8·15의 의미와 뜻을 퇴색시켜온 것을 결코 부인할 수 없다.이웃나라 땅에서 올바른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던 선열들의 뼈가 얼마전 환국하여 그분들이 몽매에도 그리던 고국의 땅에 다시 묻히게 되었다.

해방당시 지체없이 결행되어야 할 일이 해방 48년이란 장구한 세월이 흘러간 지금에서야 그 뜻을 받들게 되었다는 것은 부끄럽고 가슴아픈 일이다.그 분향소에만은 일제에 녹을 먹었던 사람들이 출입하지 말았으면 했는데 처음부터 지켜보지 못했으니 그 또한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때늦은 감은 없지 않으나 중국땅에 묻혀 있던 선열들의 영령을 모셔오는 일도 일제의 청산이며 총독부건물과 그 총독의 집이었던 청와대의 구본관을 철거하는 것도 일제청산의 길이다.대청기둥뿌리밑에 숨어 있는 개미집을 발견하여 헐어낸 속시원한 오늘의 8·15로 기억되기 충분하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우리는 매우 착잡하다.조선시대부터 우리의 선조들에게 총칼을 들이대고 위협과 약탈을 일삼다가 결국은 일제치하 36년이란 치욕스러운 역사를 우리에게 안겨준 일제.그들의 만행이 아직도 우리들의 뇌리에 역력하건만 그들은 망한 적이 없다.

지지리도 못난 꼴을 보이고 망조가 들었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우리를 당혹스럽게 만드는 것이다.사람이 짓는 선악의 업보에 따라 과보가 주어진다는 인과응보란 말 어디를 뒤져보아도 일본이란 나라에 망조가 든 징조는 보이지 않는다.일본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점이 이 시점에서 우리를 당혹스럽게,그리고 착잡하게 만든다.

해방된 지 48년.이젠 경제만이 나라가 살아나갈 일이란 것은 삼척동자도 알고 있는 일이 되었다.경제논리만이 오늘의 세계를 지배하고 있고,이런 논리는 장차도 좀처럼 뒤바꿔질 것 같지가 않다.

우리에게 남아 있는 일제의 잔재를 철저하게 청산하되 오늘날 일본이 가지고 있는 경제적 모습을 주의깊게 바라보면서 우리가 섭취해야할 것이 무엇인가를 새삼스럽게 살펴보아야 할 처지에 우리는 놓여 있다.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런 심정적 갈등을 하루 빨리 해소시키기 위해서도 우리들 주변에 버젓이 산재한 일제의 잔재부터 청산하는 일이 시급하다.<김주영 소설가>
1993-08-14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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