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성급해서 탈」이라(박갑천칼럼)

「한국인은 성급해서 탈」이라(박갑천칼럼)

박갑천 기자 기자
입력 1993-06-05 00:00
수정 1993-06-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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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가 서자 문이 열리기 시작한다.그 문이 미처 다 열리기도 전에 「닫힘」단추를 누르는 사람이 있다.그것도 곱게 누르는게 아니다.힘을 주어 몇번이고 쿡쿡 화풀이하듯 한다.엘리베이터가 말을 하는 처지라면 이렇게 쏘아붙이는 것 아닐지.

『여보쇼,나도 숨좀 쉽시다.보아하니 우물가에서 숭늉 달라할 성미로군』

조금만 기다리면 저절로 닫히게 돼있는 엘리베이터이다.그 조금을 못참는다.보는 쪽이 민주스러워질 정도다.

이런 심성은 반드시 그사람에 국한되지 않는 우리사회의 병리현상 아닌가 싶어진다.공중전화 거는데서 빨리 끝내네 안끝내네 시비가 붙어서 난 살인사건이나 담뱃불 좀 빌리자고 했다가 난 살인사건이 이심성과 무관하지 않다.무엇엔가 쫓기는 듯한 품이 눅진한 맛을 보이지 못한다.물건(상품)을 만듦에 있어 뒷마무리가 시원찮은 것도 이 맥락이며 사람을 대함에 있어 원려없이 눈앞의 이끗에만 매달리는 어리석음 또한 이 흐름이라고 하겠다.

조선중기의 유학자 수졸재 강종열이 가훈을 남겼다.거기 「마땅히 해야 할일 여덟가지」(팔당)가운데『노여움을 갑자기 나타내지 말고 마땅히 천천히 살피라』고 하는 대목이 보인다.『…천천히 살피면 반드시 스스로 반성하는 마음이 그속에서 싹틀 것이고… 천천히 살피기를 마지않으면 일을 처리하고 사물을 접하는 도리가 그 가운데서 나올 것이니…』.매사를 혈기에 좇아 성급하게 처결하지 말라는 가르침이 아주 간곡하다.천천히 살피면서 생각했으면 될일을 두고 성급하게 굶으로써 그르쳐버리는 일은 우리가 살아오는 인간사에서 얼마나 많은 것인가.

주성과 문성의 정기가 합쳐진 현인이라고 말하여지는 청향당 윤회의 낙낙한 슬기는 그래서 빛이나고 향내가 난다.

그가 젊은날 길을 가다가 저물어 객정에 들었으나 방이 없어 뜨락에 앉아있었다.그런데 주인집아이가 구슬을 가지고나와 떨어뜨린 것을 거위가 주워삼킨다.주인은 다짜고짜 윤회를 도둑으로 몰아 묶는다.아니라고 해봤지만 성미가 불같다.윤회는 할수없이 그렇다면 거위도 옆에 묶어놓으라 이른다.이튿날아침 거위똥에서 구슬이 나오자 주인은 왜 어젯밤에 말하지 않았느냐고 묻는다.그때의 대답은­『만약 어젯밤 말했다면 성급한 당신은 당장 거위배를 갈랐을 것이오』(연려실기술).사람된 그릇을 느끼게 하는 일화다.

엊그제 있은 취임 1백일기념 내외신기자회견에서 김영삼대통령에게 후계자는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이 나왔다.그는 대답했다.『겨우 1백일인데…한국인은 너무 성질이 급해 기다릴줄 모른다』.『급하면 돌라』고 하는 이웃나라 속담도 떠올려본다.<서울신문 논설위원>
1993-06-05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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