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산 수천억 추정… 현금동원 능력 “재벌”/폭력배사건 배후인물 “단골”… 손 못대
탈세및 재산해외도피 혐의등으로 3일 검찰에 연행돼 조사를 받고 있는 정덕진씨(53)는 자타가 인정하는 국내 슬롯머신(일명 빠찡꼬)업계의 대부로 통한다.
1급호텔인 부산로얄관광호텔과 신신관광호텔·서울희전관광호텔 등을 소유하고 있는등 겉으로 드러난 재산규모만도 수백억원대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그러나 다른 사람명의로 분산·위장 소유하고 있는 호텔빠찡꼬 및 카지노 지분등까지 합하면 실제 정씨의 재산은 수천억원대가 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특히 그는 「현금거래」가 필수적일 수밖에 없는 호텔업과 빠찡꼬를 운영하고 있어 현금동원능력은 웬만한 재벌총수를 능가한다는 말을 들어왔다.
지난 87년과 88년 국세청이 발표한 고액납세자 가운데 각각 46위와 39위를 차지,엄청난 재산규모에 대해서는 이미 「공인」까지 받기도 했다.
정씨는 이같은 재산을 배경으로 조직폭력배들에게 자금을 대주는등 「막후」의 실력자로 군림해왔으며 뛰어난 사교술로 정계·안기부·검찰등 사회각계의 유력인사등과 남다른 교분을 맺으면서 비호를 받아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때문에 정씨는 그동안 빠찡꼬지분을 둘러싼 폭력배들간의 싸움이 있을 때마다 배후인물로 지목됐지만 한차례도 법망에 걸려들지 않았으며 폭력배의 대명사인 「서방파」두목 김태촌(구속중)등도 함부로 고개를 들지 못할정도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실제 김태촌일당의 제주 KAL호텔 빠찡꼬지분을 둘러 싼 강탈사건이 터졌을때 정씨가 배후인물로 공공연히 거명됐지만 검찰의 수사손길은 끝내 미치지 못했었다.
정씨는 함남 북청출신으로 6·25때 가족들과 함께 월남했으나 부친이 사업에 실패,가족이 뿔뿔히 흩어져 고아원 생활을 하면서 「밤의 세계」에 발을 디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 당시 그는 서울 종로 단성사부근에서 암표상을 하면서 돈을 모았고 종로일대를 주름잡던 주먹 유지광씨등과도 인연을 맺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정씨가 빠찡꼬업계에 본격적으로 투신한 시점은 지난 60년대 후반 현 D대학 교수인 Y모씨와 만나면서부터라고.
정씨는 당시 전자기계 제조회사를 경영하고 있던 Y씨가 개발한 전자오락기계를 공급받아 전자오락실에 손을 댄뒤 Y씨가 공부를 위해 사업에서 손을 떼자 전자오락기계 전국판매권을 넘겨받으면서 치부,빠찡꼬업계로 진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씨는 이후 조직폭력배들과 공생하면서 초기단계에 있던 국내 빠찡꼬업계를 점차 장악했으며 보스기질과 사교술로 사업터전을 계속 확장해 온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정씨와 함께 검찰의 추적을 받고 있는 형 덕중씨는 강원도도의회 부의장을 맡고 있으며 동생 덕일씨도 서울 뉴스타호텔대표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탈세및 재산해외도피 혐의등으로 3일 검찰에 연행돼 조사를 받고 있는 정덕진씨(53)는 자타가 인정하는 국내 슬롯머신(일명 빠찡꼬)업계의 대부로 통한다.
1급호텔인 부산로얄관광호텔과 신신관광호텔·서울희전관광호텔 등을 소유하고 있는등 겉으로 드러난 재산규모만도 수백억원대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그러나 다른 사람명의로 분산·위장 소유하고 있는 호텔빠찡꼬 및 카지노 지분등까지 합하면 실제 정씨의 재산은 수천억원대가 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특히 그는 「현금거래」가 필수적일 수밖에 없는 호텔업과 빠찡꼬를 운영하고 있어 현금동원능력은 웬만한 재벌총수를 능가한다는 말을 들어왔다.
지난 87년과 88년 국세청이 발표한 고액납세자 가운데 각각 46위와 39위를 차지,엄청난 재산규모에 대해서는 이미 「공인」까지 받기도 했다.
정씨는 이같은 재산을 배경으로 조직폭력배들에게 자금을 대주는등 「막후」의 실력자로 군림해왔으며 뛰어난 사교술로 정계·안기부·검찰등 사회각계의 유력인사등과 남다른 교분을 맺으면서 비호를 받아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때문에 정씨는 그동안 빠찡꼬지분을 둘러싼 폭력배들간의 싸움이 있을 때마다 배후인물로 지목됐지만 한차례도 법망에 걸려들지 않았으며 폭력배의 대명사인 「서방파」두목 김태촌(구속중)등도 함부로 고개를 들지 못할정도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실제 김태촌일당의 제주 KAL호텔 빠찡꼬지분을 둘러 싼 강탈사건이 터졌을때 정씨가 배후인물로 공공연히 거명됐지만 검찰의 수사손길은 끝내 미치지 못했었다.
정씨는 함남 북청출신으로 6·25때 가족들과 함께 월남했으나 부친이 사업에 실패,가족이 뿔뿔히 흩어져 고아원 생활을 하면서 「밤의 세계」에 발을 디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 당시 그는 서울 종로 단성사부근에서 암표상을 하면서 돈을 모았고 종로일대를 주름잡던 주먹 유지광씨등과도 인연을 맺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정씨가 빠찡꼬업계에 본격적으로 투신한 시점은 지난 60년대 후반 현 D대학 교수인 Y모씨와 만나면서부터라고.
정씨는 당시 전자기계 제조회사를 경영하고 있던 Y씨가 개발한 전자오락기계를 공급받아 전자오락실에 손을 댄뒤 Y씨가 공부를 위해 사업에서 손을 떼자 전자오락기계 전국판매권을 넘겨받으면서 치부,빠찡꼬업계로 진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씨는 이후 조직폭력배들과 공생하면서 초기단계에 있던 국내 빠찡꼬업계를 점차 장악했으며 보스기질과 사교술로 사업터전을 계속 확장해 온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정씨와 함께 검찰의 추적을 받고 있는 형 덕중씨는 강원도도의회 부의장을 맡고 있으며 동생 덕일씨도 서울 뉴스타호텔대표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993-05-04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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