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해던가,어느 고서점에서 사놓은 다음 별로 펼쳐본 일 없이 책장 구석에 꽂아두어온 책 하나를 꺼낸다.청람 문세영의 「우리말사전」이다.누렇게 바랬지만 1천7백 페이지 정도의 두툼한 부피.이것이 우리의 국어사전다운 국어사전의 길을 연 맨처음의 책이다.
1938년 7월10일 초판이 나왔다.수록어휘는 약10만.『편찬의 체계로부터 교정에 이르기까지 애써주신 환산 이윤재님의 지도와 교정에 책임을 져주신 효창 한징님과 운향 홍달수님과 해성 이현규님과 송석 최창하님의 열렬한 동정과…(지은이 말씀)』로 세상에 나온 사전이었다.당시의 동아일보 사설(38년 7월13일자)은 이렇게 쓰고 있다.『… 이제야 조선말로 주석한 조선말의 사전을 조선사람의 손으로 처음 만들어 갖게 된 것이다…』
『우리에겐 수많은 말이 있습니다.배우기와 쓰기 쉽고 아름다운 글을 가졌습니다.그러면서도 아직까지 말을 하는데 앞잡이가 되고 글을 닦는데 가장 요긴한 곳집이 되는 사전이 하나도 없습니다(중략).이 얼마나 섭섭한 일이며…이보다 더큰 부끄러움이 어디 있겠습니까…』.「지은이 말씀」에서 문청람은 『국어사전 만들기로 맹세한』심경을 토로하고도 있다.
초판때의 이름 「조선어사전」은 광복후 「우리말사전」등으로 바뀌면서 판을 거듭한다.전6권으로 된 한글학회의 「큰사전」이 나온것이 1947년의 한글날이었지만 그「큰사전」이 나온 다음에도 문세영 사전은 꾸준히 팔려나갔다.광복후 50년대 후반까지의 우리나라 학생들은 이 「우리말사전」으로 공부했음을 기억하리라.중고등학교 우등상상품도 이 사전이면 최고 아니었던가.
텔레비전이 없던 시절이지만 「텔레비쥰」이라는 올림말(표제어)은 나온다.그러나 「원자」까지만 나온채 「원자폭탄」은 안나온다.오늘날의 국어사전에서 「원자」관계의 올림말만 몇십개에 이르는 것과는 대조되는 시대의 격차이다.그가 「지은이 말씀」에 쓴 「가으말다」라는 말도 지금엔 방언으로 되었다.표준말은 「가말다」이다.
국어학자는 아니었다 할지 몰라도 국어학사에 이정표를 세운 사람인 것만은 분명하다.그렇건만 이제 각종 국어사전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청람 문세영」이라는 이름은 잊혀간다.국어학자 탄압하던 일제때 국어사전 펴낸 그는 잊어서도 잊혀서도 안될 우리의 위대했던 선각자인 것을….<서울신문 논설위원>
1938년 7월10일 초판이 나왔다.수록어휘는 약10만.『편찬의 체계로부터 교정에 이르기까지 애써주신 환산 이윤재님의 지도와 교정에 책임을 져주신 효창 한징님과 운향 홍달수님과 해성 이현규님과 송석 최창하님의 열렬한 동정과…(지은이 말씀)』로 세상에 나온 사전이었다.당시의 동아일보 사설(38년 7월13일자)은 이렇게 쓰고 있다.『… 이제야 조선말로 주석한 조선말의 사전을 조선사람의 손으로 처음 만들어 갖게 된 것이다…』
『우리에겐 수많은 말이 있습니다.배우기와 쓰기 쉽고 아름다운 글을 가졌습니다.그러면서도 아직까지 말을 하는데 앞잡이가 되고 글을 닦는데 가장 요긴한 곳집이 되는 사전이 하나도 없습니다(중략).이 얼마나 섭섭한 일이며…이보다 더큰 부끄러움이 어디 있겠습니까…』.「지은이 말씀」에서 문청람은 『국어사전 만들기로 맹세한』심경을 토로하고도 있다.
초판때의 이름 「조선어사전」은 광복후 「우리말사전」등으로 바뀌면서 판을 거듭한다.전6권으로 된 한글학회의 「큰사전」이 나온것이 1947년의 한글날이었지만 그「큰사전」이 나온 다음에도 문세영 사전은 꾸준히 팔려나갔다.광복후 50년대 후반까지의 우리나라 학생들은 이 「우리말사전」으로 공부했음을 기억하리라.중고등학교 우등상상품도 이 사전이면 최고 아니었던가.
텔레비전이 없던 시절이지만 「텔레비쥰」이라는 올림말(표제어)은 나온다.그러나 「원자」까지만 나온채 「원자폭탄」은 안나온다.오늘날의 국어사전에서 「원자」관계의 올림말만 몇십개에 이르는 것과는 대조되는 시대의 격차이다.그가 「지은이 말씀」에 쓴 「가으말다」라는 말도 지금엔 방언으로 되었다.표준말은 「가말다」이다.
국어학자는 아니었다 할지 몰라도 국어학사에 이정표를 세운 사람인 것만은 분명하다.그렇건만 이제 각종 국어사전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청람 문세영」이라는 이름은 잊혀간다.국어학자 탄압하던 일제때 국어사전 펴낸 그는 잊어서도 잊혀서도 안될 우리의 위대했던 선각자인 것을….<서울신문 논설위원>
1993-04-28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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