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확고한 기숙관료시대로/강택민 전권장악의 의미

중국 확고한 기숙관료시대로/강택민 전권장악의 의미

최두삼 기자 기자
입력 1993-03-28 00:00
수정 1993-03-28 00:00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혁명원로 국가요직서 모두 퇴진/정 후계체제 출범… 개혁·개방 가속

중국공산당총서기 강택민이 당원로 양상곤의 뒤를 이어 국가주석에 선출됨에 따라 중국정치는 혁명1세들의 지배체제를 벗어나 명실상부한 기술관료 통치시대로 진입하게 됐다.양상곤뿐 아니라 그동안 정치 일선에서 활약하던 만리 요의림 송평등 모든 혁명원로들이 지난해 10월 당대회때 당직을 떠난데 이어 이번에는 국가요직에서도 모두 물러나게 된것이다.이같은 원로들의 제2선 퇴임과 당고문위원회의 폐지,그리고 지난해부터 이선념 등영초 왕진등 이른바 8대원로들이 차례로 타계함에 따라 원로들의 섭정도 사실상 모두 사라졌다.이제 본격적인 혁명이후 시대를 맞았다 할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택민은 최고지도자 등소평의 그늘을 완전히 벗어났다고는 할수 없다.지난해 당대회에서는 등의 개혁개방과 시장경제 노선을 당헌에 채택했을 뿐 아니라 이번 전인대에서는 이 노선을 헌법에까지 집어 넣기에 이르렀다.따라서 강은 자기 철학의 실천가가 아닌 등소평철학의 대리실천가라 해야 옳다.바꾸어 말하면 등소평후계체제가 출범한 것이라고 할수 있다.강은 앞으로 당분간은 2단계 개혁개방을 착실히 추진하면서 사회주의시장경제를 무리없이 도입해야 할 책무를 안게 됐다.

그는 당·정·군 3분야의 전권을 장악함으로써 중국 역사상 모택동이래 가장 강력한 권한을 거머쥐었음에도 과거와 같은 강력한 통치력의 발휘는 어려울뿐 아니라 그럴 처지도 아닌것 같다.

그는 지난 89년 천안문사태이후 상해당서기에서 일약 당총서기에 오른 이래 온건 개혁노선을 걸어오면서 모나지 않은 처신을 함으로써 혁명원로등 보수파나 젊은 개혁파들로부터 무난하다는 평을 받아왔다.

1926년8월17일 강소성 양주에서 태어난 그는 상해교통대학 전기과를 졸업했다.공산당에는 대학졸업 1년전인 46년7월에 가입했으며 55년 모스크바의 스탈린자동차공장에서 1년간 연수를 거친뒤 장춘 상해 무한의 공장이나 연구소등지에서 근무해왔다.



문혁때 그의 활동에 대한 명확한 설명은 없으며 등소평집권이후인 80년대초 전자공업부의 부부장과 부장등을 거쳐 85년7월부터 일약 상해시장으로 뽑히는 행운을 안았다.<북경=최두삼특파원>
1993-03-28 5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결혼식 생략? '노웨딩'에 대한 여러분 생각은?
비용 문제 등으로 결혼식을 생략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노웨딩에 대한 여러분은 생각은?
1. 결혼식 굳이 안해도 된다.
2. 결혼식 꼭 해야 한다.
-->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