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미술전문가들이 한국에 와서 맨먼저 『한국미술을 보고싶다』는 주문을 한다고 한다.그래서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하여 몇군데 화랑을 안내하고 나면 다시 『이제는 한국미술을 보여달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한국미술」이란 중국화 또는 일본화와 같은 우리 민족의 독특한 정서가 깃든 「한국적인 미술」을 지칭하는 것이다.외국인의 시각으로는 5천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문화민족이라면 응당 고유의 미술이 있을 것으로 짐작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하지만 현실적으로 오늘의 한국미술을 진단할 때 과연 한국적인 특성으로 요약해낼수 있는 독자적인 표현양식및 형식이 있느냐면 주저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대해 명쾌하게 대답할 수 없는 것이 오늘 우리 미술의 현주소다.오늘의 한국미술은 무국적화,즉 보편적인 세계언어화됐다는 표현이 적절할 만큼 특징이 없다.이러한 현상에 대해 「미술의 탈지역성은 곧 세계성의 획득」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시각이 꽤 많다.그러나 이는 미술의 예술적 가치를 모르는데서 비롯된 단견에 지나지 않는다.
미술에서의 세계성이란 궁극적으로는 개별성으로 환원한다.개별성이란 보편성에 견줄 수 없는 자기만의 미적 자각및 인식에 근거한다.
오늘 우리 작가들은 서구미학의 추종을 당연한 것으로 여길뿐더러,그러한 작업을 통해서만이 세계미술의 중심부에 들어갈 수 있으려니 생각한다.
물론 창작성이란 문제를 논의했을 경우,우리 작가들의 작품수준은 상당한 수준에 올라있음을 인정한다.타고난 재능및 감성은 서구미학을 수용하는데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않을 정도이다.더불어 서구미술의 아류라는 것에 대해서도 전혀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예술적인 자존을 죽이는 이같은 무감각이 오늘 한국미술계에 만연하고 있다.
『한국미술을 내놓으라』는 외국미술전문가들의 한마디가 예술적인 자존을 관통하는 비수가 되고 있다는 사실조차 느끼지 못하는 무감각이야말로 「한국성」을 상실케 한 병인인 셈이다.
그들이 말하는 「한국미술」이란 중국화 또는 일본화와 같은 우리 민족의 독특한 정서가 깃든 「한국적인 미술」을 지칭하는 것이다.외국인의 시각으로는 5천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문화민족이라면 응당 고유의 미술이 있을 것으로 짐작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하지만 현실적으로 오늘의 한국미술을 진단할 때 과연 한국적인 특성으로 요약해낼수 있는 독자적인 표현양식및 형식이 있느냐면 주저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대해 명쾌하게 대답할 수 없는 것이 오늘 우리 미술의 현주소다.오늘의 한국미술은 무국적화,즉 보편적인 세계언어화됐다는 표현이 적절할 만큼 특징이 없다.이러한 현상에 대해 「미술의 탈지역성은 곧 세계성의 획득」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시각이 꽤 많다.그러나 이는 미술의 예술적 가치를 모르는데서 비롯된 단견에 지나지 않는다.
미술에서의 세계성이란 궁극적으로는 개별성으로 환원한다.개별성이란 보편성에 견줄 수 없는 자기만의 미적 자각및 인식에 근거한다.
오늘 우리 작가들은 서구미학의 추종을 당연한 것으로 여길뿐더러,그러한 작업을 통해서만이 세계미술의 중심부에 들어갈 수 있으려니 생각한다.
물론 창작성이란 문제를 논의했을 경우,우리 작가들의 작품수준은 상당한 수준에 올라있음을 인정한다.타고난 재능및 감성은 서구미학을 수용하는데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않을 정도이다.더불어 서구미술의 아류라는 것에 대해서도 전혀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예술적인 자존을 죽이는 이같은 무감각이 오늘 한국미술계에 만연하고 있다.
『한국미술을 내놓으라』는 외국미술전문가들의 한마디가 예술적인 자존을 관통하는 비수가 되고 있다는 사실조차 느끼지 못하는 무감각이야말로 「한국성」을 상실케 한 병인인 셈이다.
1992-09-1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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