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들과 그 주민들은 6·29선언 5주년을 맞아 노태우한국대통령에게 축하의 인사를 보내고자 할것이다.권위주의체제가 보편화되어온 이 지역에서 보다 위대한 민주화와 인권보장을 위해 싸워온 주민들에게 6·29민주화선언은 커다란 격려와 고무를 주었기 때문이다.
주민들의 민주화욕구 분출을 무력으로 진압한다거나 아니면 간교한 속임수로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려 하지않고 대통령직선,언론자유,인권존중등 8개항에 걸친 전면적인 민주화를 천명한 6·29선언은 한국 역사에서는 민주화의 출발점으로 기념될 것이 분명하다.동시에 아시아 전역에 미친 영향도 만만치 않다.
최소한 두나라가 한국의 민주화선언이후 정부군과 주민간의 유혈충돌이라는 뼈아픈 경험을 갖고 있다.한국에서는 슬기롭게 극복된 위기가 중국과 태국에서는 결국 피를 보고 만것이다.중국의 천안문사건은 6·29선언 2년후의 일로 아직도 그 후유증이 도처에 깔려있다.수많은 중국본토인들이 요즘도 비밀리에 조용히 천안문사건을 기리고 있으나 외국에 나와있는 화교동료들은 적극적으로 이 사건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태국의 중산층은 지난 5월 수친다 장군이 이끄는 정부에 반기를 들고 일어나 결국 그를 권좌에서 축출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수백명이 피를 흘려야만 했다.방콕 주민들의 대규모 시위는 87년 봄과 여름에 걸친 서울에서의 시위와 별로 다른게 없지만 한쪽은 피를 본후 물러난데 반해 다른 쪽에서는 직선을 통해 정권을 맡기까지 했다.
이들 두 사건에 앞서 대만이 87년하반기부터 계엄령 해제,중국본토친족 방문 허용,다당제 도입등에 이어 총통직선등 민주화조치를 추진해가고 있는 것도 한국정치발전과 무관하다고 보기가 어렵다.지난 88년초 버마 주민들이 학생들을 중심으로 대규모 시위를 벌이며 민주화를 부르짖은 것도 한국에서와 같은 결과를 기대한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아시아주민들이 87년 서울의 경험에 고무되었다고 단정적으로 주장하는게 좀 주제넘을지 모르지만 어쨌든 그들은 서울의 변화를 잘 알고 있었다.한동안의 반정부시위 결과 대통령자유선거와 언론검열해제가 나왔으며 이밖에 쏟아진각종 민주화 조치들은 한국을 동아시아의 빛나는 우등국으로 만들었던 것이다.이같은 사태발전은 아시아의 반정부운동가들에게 많은 것들을 생각케 하기도 했다.
그러나 동아시아 대부분 나라들에 노대통령의 6·29선언이 끼친 가장 큰 영향은 동북아 지역안정과 긴장완화일것이다.6·29선언의 민주화 조치만으로도 지역안정에 공이 큰것으로 인정되지만 이 선언의 연장선상에서 추진된 북방정책이 결정적인 역할을 해온게 사실이다.서울과 모스크바간에 외교관계가 수립되고 한중간에도 각기 상대편 수도에 무역사무소를 개설한후 정식 수교절차를 모색중이다.
북방정책의 효능은 지난해 북한이 남북한동시 유엔가입에 동의하고 나옴에 따라 분명히 드러났다.이는 매우 중요한 사태 진전으로 주변지역 긴장완화에 크게 공헌할 뿐 아니라 재통일을 위해서도 유리한 국면전환이라 할수 있다.
근래에 와서는 물가압력과 수출부진등 일부 경제분야의 곤경으로 6·29선언의 의미가 많이 퇴색해가고 있다는 외신보도도 있었다.
한국경제의 곤경이 갑작스런 민주화 추진으로 인한 불가피한 현상인지,아니면 급격하게 변모하는 국제경제환경에 한국정부가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때문인지는 알수 없다.다만 한국인들이 참조할 사항이 있다면 아시아의 신흥공업국들중 다른 나라들도 최근의 경제상황이 과거 만큼 그렇게 신통치는 못하다는 사실이다.선진국들의 개방압력이 거세지면서 무역장벽이 자꾸 높아만 가기 때문일 것이다.이밖에 민주화의 과도기에 겪는 각종 가치관의 혼란,예를 들어 졸부들의 헤픈 씀씀이나 극렬한 노사분규,끝없는 집단이기주의 등을 겪으면서도 경제의 안정과 번영을 기대하기란 좀 지나친게 아니냐는 생각도 없지않다.<2면에 계속>
<1면서 계속>
◎동북아지역 안정에 가장 큰 영향
6·29선언 이후 우리가 주목하는 것중의 하나는 최근들어 한국에서 인권문제를 둘러싼 시비가 거의 사라졌다는 점을 들지 않을 수 없다.
6·29선언을 기점으로 그동안 추진해온 민주화는 이제 어느정도 뿌리가 내린 것으로 평가되고 있는 이상 한국은 앞으로 동아시아 정세발전에 중대한 역할을 맡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특히21세기는 아시아·태평양시대가 펼쳐지면서 이 지역이 세계정치의 지배적인 역할을 수행해 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동시에 최근 강대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과 일본의 세력다툼이 이 지역에 곤혹스런 상황을 초래할지 모른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이같은 상황속에서 한국이 맡을 역할은 막중할수 밖에 없다.북한과의 궁극적 통합을 위한 역할이라든가 동북아의 화평분위기 조성과 같은 막중한 임무를 차질없이 수행해야 할것이다.
어쨌든 노대통령의 5년 재임은 한국을 과거 권위주의 통치시대로부터 민주화의 장정으로 인도하는 길을 마련한 것으로 볼수 있다.역사는 노대통령을 한국민 뿐아니라 다른 주변국가 국민들에게도 과거를 깨뜨리고 희망의 빛을 제공한 한국의 지도자로 기억할 것이다.<데이비드 첸 홍콩·언론인 국제정치평론가>
주민들의 민주화욕구 분출을 무력으로 진압한다거나 아니면 간교한 속임수로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려 하지않고 대통령직선,언론자유,인권존중등 8개항에 걸친 전면적인 민주화를 천명한 6·29선언은 한국 역사에서는 민주화의 출발점으로 기념될 것이 분명하다.동시에 아시아 전역에 미친 영향도 만만치 않다.
최소한 두나라가 한국의 민주화선언이후 정부군과 주민간의 유혈충돌이라는 뼈아픈 경험을 갖고 있다.한국에서는 슬기롭게 극복된 위기가 중국과 태국에서는 결국 피를 보고 만것이다.중국의 천안문사건은 6·29선언 2년후의 일로 아직도 그 후유증이 도처에 깔려있다.수많은 중국본토인들이 요즘도 비밀리에 조용히 천안문사건을 기리고 있으나 외국에 나와있는 화교동료들은 적극적으로 이 사건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태국의 중산층은 지난 5월 수친다 장군이 이끄는 정부에 반기를 들고 일어나 결국 그를 권좌에서 축출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수백명이 피를 흘려야만 했다.방콕 주민들의 대규모 시위는 87년 봄과 여름에 걸친 서울에서의 시위와 별로 다른게 없지만 한쪽은 피를 본후 물러난데 반해 다른 쪽에서는 직선을 통해 정권을 맡기까지 했다.
이들 두 사건에 앞서 대만이 87년하반기부터 계엄령 해제,중국본토친족 방문 허용,다당제 도입등에 이어 총통직선등 민주화조치를 추진해가고 있는 것도 한국정치발전과 무관하다고 보기가 어렵다.지난 88년초 버마 주민들이 학생들을 중심으로 대규모 시위를 벌이며 민주화를 부르짖은 것도 한국에서와 같은 결과를 기대한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아시아주민들이 87년 서울의 경험에 고무되었다고 단정적으로 주장하는게 좀 주제넘을지 모르지만 어쨌든 그들은 서울의 변화를 잘 알고 있었다.한동안의 반정부시위 결과 대통령자유선거와 언론검열해제가 나왔으며 이밖에 쏟아진각종 민주화 조치들은 한국을 동아시아의 빛나는 우등국으로 만들었던 것이다.이같은 사태발전은 아시아의 반정부운동가들에게 많은 것들을 생각케 하기도 했다.
그러나 동아시아 대부분 나라들에 노대통령의 6·29선언이 끼친 가장 큰 영향은 동북아 지역안정과 긴장완화일것이다.6·29선언의 민주화 조치만으로도 지역안정에 공이 큰것으로 인정되지만 이 선언의 연장선상에서 추진된 북방정책이 결정적인 역할을 해온게 사실이다.서울과 모스크바간에 외교관계가 수립되고 한중간에도 각기 상대편 수도에 무역사무소를 개설한후 정식 수교절차를 모색중이다.
북방정책의 효능은 지난해 북한이 남북한동시 유엔가입에 동의하고 나옴에 따라 분명히 드러났다.이는 매우 중요한 사태 진전으로 주변지역 긴장완화에 크게 공헌할 뿐 아니라 재통일을 위해서도 유리한 국면전환이라 할수 있다.
근래에 와서는 물가압력과 수출부진등 일부 경제분야의 곤경으로 6·29선언의 의미가 많이 퇴색해가고 있다는 외신보도도 있었다.
한국경제의 곤경이 갑작스런 민주화 추진으로 인한 불가피한 현상인지,아니면 급격하게 변모하는 국제경제환경에 한국정부가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때문인지는 알수 없다.다만 한국인들이 참조할 사항이 있다면 아시아의 신흥공업국들중 다른 나라들도 최근의 경제상황이 과거 만큼 그렇게 신통치는 못하다는 사실이다.선진국들의 개방압력이 거세지면서 무역장벽이 자꾸 높아만 가기 때문일 것이다.이밖에 민주화의 과도기에 겪는 각종 가치관의 혼란,예를 들어 졸부들의 헤픈 씀씀이나 극렬한 노사분규,끝없는 집단이기주의 등을 겪으면서도 경제의 안정과 번영을 기대하기란 좀 지나친게 아니냐는 생각도 없지않다.<2면에 계속>
<1면서 계속>
◎동북아지역 안정에 가장 큰 영향
6·29선언 이후 우리가 주목하는 것중의 하나는 최근들어 한국에서 인권문제를 둘러싼 시비가 거의 사라졌다는 점을 들지 않을 수 없다.
6·29선언을 기점으로 그동안 추진해온 민주화는 이제 어느정도 뿌리가 내린 것으로 평가되고 있는 이상 한국은 앞으로 동아시아 정세발전에 중대한 역할을 맡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특히21세기는 아시아·태평양시대가 펼쳐지면서 이 지역이 세계정치의 지배적인 역할을 수행해 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동시에 최근 강대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과 일본의 세력다툼이 이 지역에 곤혹스런 상황을 초래할지 모른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이같은 상황속에서 한국이 맡을 역할은 막중할수 밖에 없다.북한과의 궁극적 통합을 위한 역할이라든가 동북아의 화평분위기 조성과 같은 막중한 임무를 차질없이 수행해야 할것이다.
어쨌든 노대통령의 5년 재임은 한국을 과거 권위주의 통치시대로부터 민주화의 장정으로 인도하는 길을 마련한 것으로 볼수 있다.역사는 노대통령을 한국민 뿐아니라 다른 주변국가 국민들에게도 과거를 깨뜨리고 희망의 빛을 제공한 한국의 지도자로 기억할 것이다.<데이비드 첸 홍콩·언론인 국제정치평론가>
1992-07-01 1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