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의 날 훈장·표창 받은 「모범사례」/40년간 써온 가계부가 절약생활 길잡이/74년 내집마련… 이젠 3층 건물주인으로/국민훈장 동백장 서남성씨
『눈물과 손때로 얼룩진 가계부가 저에게 끊임없는 절약의 지혜를 불어넣어준 지난 40년동안에 저축생활의 길잡이가 됐습니다』
불우한 어린시절의 궁핍을 딛고 풍요로운 삶을 가꾼 초로의 가정주부 서남성씨(54)는 절약의 비결을 가계부에서 찾았다.
경남 진주중앙시장 입구에 3층짜리 자기건물을 갖고 1층에서 찻집을 직접 경영하는 서씨는 지난 68년 14살의 어린 나이에 부친을 여의고 서점 점원으로 취직해 불구인 모친과 3남매의 가계를 책임져야 하는 소녀가장이었다.
『쥐꼬리만한 월급으로 네식구의 살림을 꾸려가자니 가난의 설움이 복받친 때도 많았습니다』
서씨는 그러나 가난이 사무칠수록 『저축만이 이 가난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아무리 적은 월급이라도 쪼개고 쪼개어 한푼 두푼 저축하면 언젠가는 풍족한 생활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은 어린 소년가장에게 가계부를 쓰게 했다.
서점 점원생활을 청산하고 진주도립병원 간호원으로 직장을 옮기고 부터는 월급이 조금 늘었지만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기는 역부족이었다.
『가난에 굴복당할 수는 없다는 일념으로 월급을 받으면 무조건 70%를 떼어서 저축했습니다.나머지 30%로는 생활을 감당하기가 힘들었지만 매일매일 가계부를 쓰는 즐거움으로 위안을 삼았습니다』 서씨는 남편과 함께 찻집을 경영하며 부유한 가정을 가꾼 지금까지도 월소득의 70%를 저축하는 습관을 지속해오고 있다.
이같은 노력이 결실을 맺어 결혼생활 17년만인 지난 74년 꿈에 그리던 방3칸짜리 내집을 마련할 수 있었다.
서씨는 이때부터 자신의 저축생활 경험을 주위의 다른 가정에도 전파하는데 앞장섰다.77년부터 마을 부녀회원들을 설득해 저축서클을 조직,폐품수집과 절미를 통한 저축운동을 전개했다.그 결과로 현재 마을 1천9백가구에 2천9백60구좌의 통장이 개설돼 있으며 4억9천1백여만원의 저축실적을 기록하고 있다.<염주영 기자>
◎다리 장애 버텨준 통장 30여개/대통령표창 이계섭씨/홍수로 집 잃은후 비장한 저축 실천/완구공장 설립… 종업원에 적금권장
경기도 양평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18세때 상경했다.
어릴때 다친 다리때문에 일자리를 번번이 거절당해 장애인에 대한 사회의 편견과 홀대가 미웠다.
그러나 조그만 금형공장에 가까스로 취업,세끼를 라면으로 때우고 밤새워가며 세공기술을 익혔다.
71년 직장생활 13년만에 번 돈으로 이문동에 내집을 마련,결혼생활을 시작했으나 73년 뜻하지 않은 홍수로 보금자리를 송두리째 날렸다.
이후 저축의 필요성을 절감,저축예금과 정기적금통장을 개설한뒤 장난감을 만들어 판돈을 꼬박꼬박 통장에 넣었다.
적금이 끝나면 정기예금으로,정기예금의 이자는 또 다시 적금으로 계속 저축,5년만에 1천만원 목돈을 쥐게됐다.
이돈을 밑천으로,천막집에서 아내와 함께 어린이 장난감을 만든지 11년만인 84년 3층짜리 주택및 조그만 공장을 지을 수 있게됐다.
17년간 한은행과 거래하면서 쌓인 30여개의 적금통장을 소중히 간직해 자녀들에게 물려줘 근검·절약정신을 계승토록하고 있다.
또 종업원 7명에게도 「티끌모아 태산」이란 평범한 진리를 깨우쳐주기 위해 매달월급의 10%를 꼬박꼬박 적금통장에 넣고 나머지를 월급으로 주고있다.
『눈물과 손때로 얼룩진 가계부가 저에게 끊임없는 절약의 지혜를 불어넣어준 지난 40년동안에 저축생활의 길잡이가 됐습니다』
불우한 어린시절의 궁핍을 딛고 풍요로운 삶을 가꾼 초로의 가정주부 서남성씨(54)는 절약의 비결을 가계부에서 찾았다.
경남 진주중앙시장 입구에 3층짜리 자기건물을 갖고 1층에서 찻집을 직접 경영하는 서씨는 지난 68년 14살의 어린 나이에 부친을 여의고 서점 점원으로 취직해 불구인 모친과 3남매의 가계를 책임져야 하는 소녀가장이었다.
『쥐꼬리만한 월급으로 네식구의 살림을 꾸려가자니 가난의 설움이 복받친 때도 많았습니다』
서씨는 그러나 가난이 사무칠수록 『저축만이 이 가난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아무리 적은 월급이라도 쪼개고 쪼개어 한푼 두푼 저축하면 언젠가는 풍족한 생활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은 어린 소년가장에게 가계부를 쓰게 했다.
서점 점원생활을 청산하고 진주도립병원 간호원으로 직장을 옮기고 부터는 월급이 조금 늘었지만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기는 역부족이었다.
『가난에 굴복당할 수는 없다는 일념으로 월급을 받으면 무조건 70%를 떼어서 저축했습니다.나머지 30%로는 생활을 감당하기가 힘들었지만 매일매일 가계부를 쓰는 즐거움으로 위안을 삼았습니다』 서씨는 남편과 함께 찻집을 경영하며 부유한 가정을 가꾼 지금까지도 월소득의 70%를 저축하는 습관을 지속해오고 있다.
이같은 노력이 결실을 맺어 결혼생활 17년만인 지난 74년 꿈에 그리던 방3칸짜리 내집을 마련할 수 있었다.
서씨는 이때부터 자신의 저축생활 경험을 주위의 다른 가정에도 전파하는데 앞장섰다.77년부터 마을 부녀회원들을 설득해 저축서클을 조직,폐품수집과 절미를 통한 저축운동을 전개했다.그 결과로 현재 마을 1천9백가구에 2천9백60구좌의 통장이 개설돼 있으며 4억9천1백여만원의 저축실적을 기록하고 있다.<염주영 기자>
◎다리 장애 버텨준 통장 30여개/대통령표창 이계섭씨/홍수로 집 잃은후 비장한 저축 실천/완구공장 설립… 종업원에 적금권장
경기도 양평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18세때 상경했다.
어릴때 다친 다리때문에 일자리를 번번이 거절당해 장애인에 대한 사회의 편견과 홀대가 미웠다.
그러나 조그만 금형공장에 가까스로 취업,세끼를 라면으로 때우고 밤새워가며 세공기술을 익혔다.
71년 직장생활 13년만에 번 돈으로 이문동에 내집을 마련,결혼생활을 시작했으나 73년 뜻하지 않은 홍수로 보금자리를 송두리째 날렸다.
이후 저축의 필요성을 절감,저축예금과 정기적금통장을 개설한뒤 장난감을 만들어 판돈을 꼬박꼬박 통장에 넣었다.
적금이 끝나면 정기예금으로,정기예금의 이자는 또 다시 적금으로 계속 저축,5년만에 1천만원 목돈을 쥐게됐다.
이돈을 밑천으로,천막집에서 아내와 함께 어린이 장난감을 만든지 11년만인 84년 3층짜리 주택및 조그만 공장을 지을 수 있게됐다.
17년간 한은행과 거래하면서 쌓인 30여개의 적금통장을 소중히 간직해 자녀들에게 물려줘 근검·절약정신을 계승토록하고 있다.
또 종업원 7명에게도 「티끌모아 태산」이란 평범한 진리를 깨우쳐주기 위해 매달월급의 10%를 꼬박꼬박 적금통장에 넣고 나머지를 월급으로 주고있다.
1991-10-30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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