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남 “마르크스주의 포기”의 저변

김영남 “마르크스주의 포기”의 저변

장수근 기자 기자
입력 1991-09-13 00:00
수정 1991-09-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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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쇼크」 떨치려는 대 서방 유화책/주체사상 통한 사회주의 고수 여전/사유제 허용 없인 지도이념 변화 없어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대한 포괄적이고 과학적인 해답을 줄 수 없기 때문에 마르크스주의를 피했다』고 밝힌 김영남 북한외교부장의 발언은 이른바 「러시아 쇼크」이후 눈치보기에 급급했던 북한의 「입장정리」가 일단 끝났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김영남은 14일자 영국의 군사전문 주간지 「제인스 디펜스 위클리」와 가진 회견에서 마르크스주의가 『정부의 유용한 도구로서 사실상 포기됐다』고 밝히고 『마르크스주의가 현재의 일상 현실,특히 유럽과 근본적으로 다른 북한에는 그대로 적용될 수 없기 때문』이란 이유를 들었다.

이에 대해 북한전문가들은 소련에서의 공산주의몰락이라는 충격파에 강타당한뒤 어찌할 바를 모르던 북한이 겨우 정신을 수습,이른바 주체사상을 근간으로한 「사회주의 고수」로 최종 행로를 결정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즉 소련의 공산주의 포기에 따른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해 주체사상을 강조하면서 마르크스주의 포기를 밝혔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북한이 지난 60년대말 이른바 주체사상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소련·중국과 다른 「우리식 사회주의」를 외칠 때부터 이미 마르크스주의를 북한의 현실에 맞게 수정했음을 지적,사유재산제부활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는 이상 마르크스주의를 포기했다는 그들의 주장은 믿기가 어렵다고 말하고 있다.

유석렬교수(외교안보연구원)는 『북한이 최근들어 급변하는 세계정세 와류속에서 체제의 변신을 시도하는 것같은 몸짓을 자주 보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하고 그러나 실제로는 『주체사상을 부각시킴으로써 대내결속을 다지고 소련의 공산주의 포기에 따른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해서 취해 보이는 제스처에 지나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이 대목에 대해선 정규섭박사(민족통일연구원)도 견해를 같이 했다.정박사는 소련정변 이후 의지할 곳이 없어진 북한이 미국및 일본과의 관계개선에 열의를 보이고 있음을 지적,김영남의 마르크스주의 포기발언 역시 이같은 연장선상에서 나온 대서방 유화책의 하나라고 말했다.

강인덕소장(극동문제연구소) 역시 『북한이 마르크스주의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고 『북한이 마르크스주의의 기본이념인 ▲사유재산제 불용 ▲계급투쟁 ▲프롤레타리아독재를 포기하지 않는 이상 마르크스주의를 포기했다는 김영남의 발언은 『신빙할 수 없는 것』이라고 밝혔다.강소장은 『북한이 내세우고 있는 「우리식 사회주의」란 것도 그 사상의 뿌리는 마르크스주의에 있다』고 지적하고 『북한의 개혁이 경제분야에선 부분적으로나마 이루어질 수 있겠지만 실질적인 마르크스주의 포기 같은 근본적인 체제개혁은 현재의 김일성체제하에서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따라서 김영남의 발언은 소련공산당의 붕괴가 북한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으며 북한사회를 이끌고 나갈 지도이념 역시 근본부터 흔들리고 있음을 입증해주는 것이라고 말하고 공산주의 종식에 대한 외부사조 유입을 북한주민들로부터 차단하기 위한 궁여지책에서 나온 대서방 언론플레이에 불과하다고 보고 있다.<장수근기자>
1991-09-13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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