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광복절은 여느해와는 좀 달리 우리에게 새로운 감회에 젖어들게 한다.지난 8일 유엔안전보장이사회가 남북한의 유엔가입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키고 9월17일 개막되는 46차 유엔총회의 승인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냉전구조에서 벗어나고 있는 국제질서가 안겨준 숙원의 해결이다.아무튼 남북한은 이제 유엔헌장의 정신에 따라 지금까지의 대결구조에서 벗어나야할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올해 광복절의 뜻이 유다르다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일제의 35년 질곡에서 벗어난 것이 1945년의 8·15광복이었다.그러나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흔희작약한 것도 잠시뿐 그것은 우리 겨레에게 또다른 아픔과 설움의 시발점으로 되었다.겨레의 뜻과는 상관없는 강대국간 대결논리의 희생이 되어 허리가 동강난 채 동족상잔의 전란까지 치르면서 반세기 가까운 분단의 역사를 살아오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온전한 의미로서의 광복이 아니었다.일제의 강점기간에는 그래도 겨레끼리 반목하지는 않았다.나라가 잘렸던 것 또한 아니다.그렇건만 광복이 된 조국에서 겨레끼리 적의를 품고 싸워야 했던 일은 이민주에게 압제받았던 설움 못지 않은 설움이며 아픔이었다.그러므로 그것은 참다운 광복이 아니었다.해마다 맞는 광복절에 비분을 삼켜야 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그러나 1991년의 광복절에는 온 겨레가 염원하는 완전한 광복을 위한 길로 한걸음 더 다가 섰음을 느끼게 하는 일이 기쁘다.
유엔의 회원국이 된 남과 북이 서로 생각해야 할 것은 완전한 광복을 위해 어떻게 서로 이바지해야 하느냐는 점으로 요약된다.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면서 대국을 염두에 둔 긍정적인 시각으로 대결의 논리에서 벗어나야 겠다는 뜻이다.화해무드의 지구촌 흐름속에서 동족끼리 비방하고 중상하는 일이 얼마나 부끄러운 짓인가를 느껴야 한다.무엇보다도 북한은 정권수립 이래 한치도 변화하지 않고 있는 대남적화의 혁명논리를 버려야 한다.국제사회가 비웃는 생떼나 억지를 지양해야 함은 두말할 것도 없다.한 마디로 좀더 성숙한 국제사회의 구성원으로 될 수 있어야겠다는 말이다.
남쪽은 너무 서두르는 경향에 대해 성찰해야 한다.명분에 집착한 나머지 성급하게 굴다보면 오히려 일을 그르치기가 쉬운 법이다.그렇건만 지나치게 서두르는 계층들이 있다.그것은 감상주의와도 통한다.하지만 고장란명이라고 했다.일방적인 의욕이나 감상은 도리어 크게 볼 때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데에 상도해야겠다.차근차근 기초를 다지는 가운데 쉬운 일부터서 해결해 나가는 신중성과 치밀성으로 접근해야 한다.북쪽의 성숙성을 유도해내는 노력과 인내성 또한 필요하다.「완전한 광복」은 그런 결과로서 이루어질 것이다.
지나간 역사를 원망하고 타매하는데 그쳐서는 어리석다.그를 거울 삼아 바람직한 밝은 내일을 선택할 수 있는 자가 현명하다.「반쪽 광복절」아닌 「온쪽 광복절」의 기쁨이 3천리 강산에 물결칠 날을 기다린다.
일제의 35년 질곡에서 벗어난 것이 1945년의 8·15광복이었다.그러나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흔희작약한 것도 잠시뿐 그것은 우리 겨레에게 또다른 아픔과 설움의 시발점으로 되었다.겨레의 뜻과는 상관없는 강대국간 대결논리의 희생이 되어 허리가 동강난 채 동족상잔의 전란까지 치르면서 반세기 가까운 분단의 역사를 살아오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온전한 의미로서의 광복이 아니었다.일제의 강점기간에는 그래도 겨레끼리 반목하지는 않았다.나라가 잘렸던 것 또한 아니다.그렇건만 광복이 된 조국에서 겨레끼리 적의를 품고 싸워야 했던 일은 이민주에게 압제받았던 설움 못지 않은 설움이며 아픔이었다.그러므로 그것은 참다운 광복이 아니었다.해마다 맞는 광복절에 비분을 삼켜야 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그러나 1991년의 광복절에는 온 겨레가 염원하는 완전한 광복을 위한 길로 한걸음 더 다가 섰음을 느끼게 하는 일이 기쁘다.
유엔의 회원국이 된 남과 북이 서로 생각해야 할 것은 완전한 광복을 위해 어떻게 서로 이바지해야 하느냐는 점으로 요약된다.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면서 대국을 염두에 둔 긍정적인 시각으로 대결의 논리에서 벗어나야 겠다는 뜻이다.화해무드의 지구촌 흐름속에서 동족끼리 비방하고 중상하는 일이 얼마나 부끄러운 짓인가를 느껴야 한다.무엇보다도 북한은 정권수립 이래 한치도 변화하지 않고 있는 대남적화의 혁명논리를 버려야 한다.국제사회가 비웃는 생떼나 억지를 지양해야 함은 두말할 것도 없다.한 마디로 좀더 성숙한 국제사회의 구성원으로 될 수 있어야겠다는 말이다.
남쪽은 너무 서두르는 경향에 대해 성찰해야 한다.명분에 집착한 나머지 성급하게 굴다보면 오히려 일을 그르치기가 쉬운 법이다.그렇건만 지나치게 서두르는 계층들이 있다.그것은 감상주의와도 통한다.하지만 고장란명이라고 했다.일방적인 의욕이나 감상은 도리어 크게 볼 때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데에 상도해야겠다.차근차근 기초를 다지는 가운데 쉬운 일부터서 해결해 나가는 신중성과 치밀성으로 접근해야 한다.북쪽의 성숙성을 유도해내는 노력과 인내성 또한 필요하다.「완전한 광복」은 그런 결과로서 이루어질 것이다.
지나간 역사를 원망하고 타매하는데 그쳐서는 어리석다.그를 거울 삼아 바람직한 밝은 내일을 선택할 수 있는 자가 현명하다.「반쪽 광복절」아닌 「온쪽 광복절」의 기쁨이 3천리 강산에 물결칠 날을 기다린다.
1991-08-15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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