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좋은 내고장”… 소시민의 꿈 펴라/이근배 시조시인

“살기좋은 내고장”… 소시민의 꿈 펴라/이근배 시조시인

이근배 기자 기자
입력 1991-07-09 00:00
수정 1991-07-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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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의회 개원 참관기

한동안 잠들었던 태평로에 때 아닌 봄을 만난 듯 민주주의의 부활제가 열리고 있었다.비가 흠뻑 내린 탓인가 민주주의 중에서도 약이 될 것 같은 풀뿌리민주주의가 30년만에 심어지는 날이다.

풀뿌리 중에도 으뜸인 산삼은 나이가 들수록 값이 나간다더니 민주주의도 산삼흉내를 내고 싶은 것인지 한두해도 아니고 30년씩이나 잠을 자다가 깨어나고 있는 것이다.

「서울특별시의회」의 문패는 태평로에 있는 옛날 국회의사당에 올려지고 있었다.현판식이 있은 다음 곧바로 개원식은 진행되었다.

방청석에 앉아있노라니 이 나라 헌정 반세기의 역사가 눈앞을 스치고 지나간다.자유당의 사사오입 개헌,4·19,5·16,제3공화국의 3선개헌,10월 유신,그리고 신민당 총재 경선 때 각목싸움도 바로 이곳에서 벌어졌었다.

그 영욕의 때를 씻고 세종문화회관별관의 설움도 벗고 이제 다시 의회민주주의의 전당으로 되살아난 것이다.그러나 30년간 기다린 목마름에 비해 그토록 부르짖던 민주화의 마무리작업이라던 구호에 비해 서울특별시의회의첫날은 흔히 맛볼 수 있는 짜릿한 긴장감이 없었다.

왜 그럴까.여당인 민자당소속 의원이 총1백32석 가운데 1백10석이나 차지한 때문일까.사실 지방자치제 실시를 놓고 여야는 오랫동안 팽팽한 줄다리기를 해왔었다.기초의회에서는 정당 공천을 배제하고 광역의회에서는 정당공천을 허용하는 등 선거법 협상에서 부터 난맥상을 이룬 것이 여야가 당리당략 때문에 적잖이 신경을 썼음을 말해준다.

선거 때마다 여촌야도현상은 어김없이 나타났고 여당은 도시 공포증마저 가지고 있었다.그런데 이번 시·도의회 선거에서 국민들은 뜻밖의 투표성향을 보인 것이다.만년 야당을 찍던 서울시민들이 여당에 표를 던졌고 민자당을 84%나 당선시키는 이변을 낳은 것이다.

야당이 놀란 것은 말 할 것도 없겠지만 여당이 스스로 눈을 의심할 정도였으니 땅밑에 잠들었던 풀뿌리 민주주의는 지각변동을 일으키며 화산처럼 폭발한 것이다.그 결과 서울특별시만 해도 1당의회가 된 셈이었고 의장 선출에서부터 일사불란하게 진행될 밖에 없었다.

그러나 1당의회라고 해서,선거에서 당선된 의원이라고 해서 등뒤에 꽂혀있는 시민의 눈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저 고대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에서 시민 대표들이 도자기 조각에 투표를 해서 참주를 쫓아냈던 도편추방이 민주주의의 기원이라는 것도 새겨둘 일이다.

서울의 1천만 시민들은 언제든지 참주를 쫓아낼 수 있는 도편을 가지고 있다.그 참주는 의원 하나일 수도 있고 의회를 장악하고 있는 정당일 수도 있다.이번 시 의회선거에서 국민들이 어떤 참주룰 쫓아 낸 것이라면 다음 선거에는 또 다른 참주를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먼 그리스에서 찾을 것도 없다.우리나라도 2천년전에 이미 화백제도가 있었다.신라 6촌부족의 어른들이 모여서 나라일을 의논하지 않았던가.서울특별시 의회의원들은 모두가 10만 선양들이다.비록 국회와같은 권한은 아니더라도 조례의 제정·개정·예산결산의 승인 등 시정살림을 의논 결정하는 작은 국회인 것이다.

더구나 앞으로 3년후면 서울정도 6백년을 맞게 된다.경제발전으로 「한강의 기적」을 이룩했고 서울올림픽으로 지구촌하늘 드높이 문화서울을 띄워 올렸었다.그렇다.이제 민주주의를 그것도 산삼처럼 30년씩이나 묵힌 풀뿌리 민주주의를 하게된 마당에는 그 산삼의 힘으로 멋지게 문화서울을 꽃피워야 하지 않겠는가.

공기 맑고,물 깨끗하고 교통편리한 속에서 내집을 가지는 행복….서민들은 이런 지극히 평범하고 소박한 꿈의 실현을 이날 개원하는 지방의회에 걸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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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것들이 지금 막 문을 연 서울특별시의회,그리고 각 시·도의회가 할일이며 유권자들이 찍어준 한 표의 의미를 바로 아는 일이다.
1991-07-09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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