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아,그만하면 됐다/「5월시국」에 부쳐/한운사 작가

얘들아,그만하면 됐다/「5월시국」에 부쳐/한운사 작가

한운사 기자 기자
입력 1991-05-24 00:00
수정 1991-05-24 00:00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얘들아

욕 봤다

잠 좀 잤느냐?

뭐 좀 먹었느냐?

날씨가 풀리면서부터

연일 그렇게 뛰어다니며

돌을 던지고 화염병 던지고

노 정권 물러가라

민자당 해체하라

민주화하라 소리지르고

전신에다 시너라는 것을 뿌려

불을 지르고

옥상에서 뛰어내려 자살을 하니

나이 먹은 우리는 가위가 눌려

잠 이루지 못하고 걱정했었다.

이 나라가 이거 어디로 가나

세계고 나발이고 없다는건가

모두다 한꺼번에 죽자는건가

열사의 나라가 되자는건가

그래야만 이 나라가 산다는건가

늙은 우리들을 삿대질하며

증오를 담아 욕하는가

오죽 못났으면 늙은이들아

일제때 그 모욕을 다 감수하며

열사 될 생각은 하나도 없이

무슨 염치로 살아왔느냐!

쓸개도 허파도 없는 것들아

해방후 반세기가 다 되건만

민주화 하나 못이룬 무리

박 정권 때는 무엇을 했고

전 통때는 어떻게 살고

아직도 죽지않고 거기 있느냐!

조석으로 밥상을 뒤엎으며

그대들 힐난이 추상같구나

그러면 새파란 이 사람들아

열사가 아니면 사람 아니냐?

민주화 덜 됐으면 세상아닌가

늙은 것들은 모두 쓰레기인가

왜?

어째서?

인생의 아침에 겨우 깨어난

싱싱한 생명의 그대들

몇가지 지식으로 단정말라

인생은 참으로 긴 것이야

여러가지 일이 있는 것이야

출발점에서 속단말게

우리가 그대들 나이 때에는

인생이 무엇이냐 헤매면서

살 것이냐 말 것이냐 고민을 했어

살만한 뜻은 무엇이며

죽어야 될 까닭은 무엇이냐

우리는 그런것을 문제삼았어

참으로 많은 세월 참아보았다

온갖 모욕을 견뎌 보았다

그러면서도 한가닥 희망

언젠가 광명이 찾아오겠지

어둠 속에서 새어 나오는

가느다란 한가닥 빛!

우리가 저주받을 까닭이 없다

우리가 버림받은 민족 아니다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오,그날이 오면!

얘들아

이승만 박사를 욕하느냐?

장기독재한 노망이라고?

KOREA IS KOREA!

우리의 자존심을 세워준 사람

박정희 장군을 욕하느냐?

태어난지 13세의 대한민국을

일어나라 일하라 채찍질하며

우리도 한 번 잘 살아보자

레일을 깔아놓고 달리자 했지

그대!

너!

젊은 사람들아

그나마 오늘날 우리 형편이세끼밥은 누구나 다 먹는데

그렇게 만든 것이 박정희라면

삼켜버린 음식을 토해내겠나?

박정희때 깔아 놓은 레일 위를

대한민국호가 달려간다

저지하려고 돌을 놓아도

산모퉁이에 다이나마이트를

이중삼중으로 깔아 놓아도

대한민국호는 달려간다

이상하게도 달려간다

꺼떡도 않고 달려간다

국민들이 다 지키는거야

한 번 눈을 크게 뜨고 세계를 보자

우리의 땅 덩이가 어디에 있나

이대 이데올로기의 시험장으로

남북으로 갈라진지 40여 성상

피투성이가 되어 싸우면서

양쪽 다 열심히 해보았다

그 결과가 오늘의 남북

네가 잘 했나,내가 잘 했나

언짢은 얼굴로 다투지 말자

보라 남북 단일팀의 탁구우승

코리아 청소년의 축구장도

이제 춘삼월에 눈 녹듯이

얼었던 가슴이 풀리는 계절

때마침 소련과도 손을 잡고

중국과도 번영을 이야기 한다

세계를 향해서 큰 소리 치자

우리는 하나도 부끄럽지 않다

남북은 각기 몫을 충실히 했다

다시 한몸 되는 절묘한 과정!

세계여 눈여겨 지켜보시라

얘들아

젊음들아

과격이 늙은 눈에 걱정이었다

그러나 이제 보니 뜻이 있었다

그만 하면 됐다

그것으로 됐다

이젠 거리에서 헤매지 말고

돌을 던지지 말고

화염병 던지지 말고

살기를 일체 버리고

고개 반듯이 들고

부모가 기다리는 집으로 가라

역사의 우람한 대 회전은

실망스럽게 가지 않는다

아니 가려해도 가지 못한다

우리의 내일은 환하다

7천만 동포가 어울리는 날

나는 너를 미워하지 않는다고

서로 손을 꼭 잡고서

쳐다보고만 있자

눈물이 주룩 흐를 것이다

그러면 됐다

아무말도 하지 말자

쳐다보고만 있자

만사,너무 서둘지 말자

오,찬란한 태양이여!

1991년 5월21일 새벽
1991-05-24 3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불장인 국내증시에서 여러분의 투자성적은 어떤가요?
코스피가 사상 최고치를 거듭 경신하며 5000선에 바짝 다가섰다. 연초 이후 상승률은 15% 안팎으로, 글로벌 주요 증시 가운데 가장 가파르다. 하지만 개인투자자 수익률은 외국인의 절반에 그치고 있다. 여러분의 수익률은 어떤가요?
1. 수익을 봤다.
2. 손해를 봤다.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