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시위 중 절명/명지대생 1명/“도주하다 잡혀 경찰에 맞아”

대학생 시위 중 절명/명지대생 1명/“도주하다 잡혀 경찰에 맞아”

입력 1991-04-27 00:00
수정 1991-04-27 00:00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경찰,철야 진상조사… 검찰선 공개부검키로

26일 하오 5시10분쯤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 명지대 교문 앞길에서 이 학교 경제학과 1년 강경대군(20·성동구 중곡1동 231의 4)이 시위 도중 쓰러져 병원으로 옮겼으나 숨졌다.

이날 시위에 참가했다가 쓰러진 강군을 옮긴 정한기군(23·토목공학과 4년)은 『강군은 최루탄을 쏘며 진압에 나선 경찰체포조가 쫓아오자 정문 왼쪽으로 40여 m 떨어진 높이 1·2m의 담을 넘어 달아나려다가 사복경찰 5명에게 붙잡혀쇠 파이프 등으로 머리를 맞고 실신했다』고 주장했다.

명지대생 4백여 명은 이날 하오 3시30분부터 학생회관 앞 계단에서 총학생회장 박광철군(22·무역학과 4년)이 「등록금 인상거부투쟁」 등을 벌인 혐의로 구속된 데 항의,규탄대회를 갖고 하오 4시30분쯤부터 교문 밖 진출을 시도하며 최루탄을 쏘는 경찰에 맞서 화염병 5백여 개와 돌 5백여 개를 던지며 격렬하게 대항했었다.

학생들에 의해 옮겨진 강군을 처음 검진한 성가병원 박동국 외과과장은 『병원에 도착했을 때 이미 동공이 열리고 맥박이정지돼 있었으며 오른쪽 이마가 5㎝ 가량 함몰돼 있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그러나 강군이 경찰의 쇠파이프에 맞아 숨졌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부인하고 있다.

경찰은 이날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제2기동대 66중대,사복경찰인 제4기동대 94중대,249도보대 등 3개 중대 3백30여 명의 병력을 배치했었다.

강군의 가족은 아버지 강민조씨(50·국일기업대표)와 어머니 이덕순씨(43) 그리고 누나 강선미양(21·명지대 중문과 3년)이 있다.

강군의 시신이 안치된 세브란스병원 영안실에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 명지대·연세대생 및 「전민련」 등 재야단체 회원 등 6백여 명이 몰려들어 철야 연좌농성을 벌였다.

한편 검찰은 강군의 사인을 둘러싸고 의혹이 증폭되고 있는 점을 중시,서울지검 서부지청 형사 2부 유명건 부장검사를 반장으로 한 전담수사반을 편성,사고경위를 조사하기로 했다.

검찰은 또 사체부검을 비공개로 할 경우 의혹을 받을 수 있다고 보고 27일 중에 유가족 학생대표 보도진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부검의의 집도 아래 공개적으로 실시하기로 했다고 밝히고 혐의사실이 밝혀질 경우 관련자 전원을 상해치사 혐의로 구속하겠다고 말했다.

치안본부도 이날 사복경찰조인 94중대 1백20명 전원을 서울서부경찰서에 집합시켜 놓고 사고경위 등을 철야 조사했다.
1991-04-27 19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결혼식 생략? '노웨딩'에 대한 여러분 생각은?
비용 문제 등으로 결혼식을 생략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노웨딩에 대한 여러분은 생각은?
1. 결혼식 굳이 안해도 된다.
2. 결혼식 꼭 해야 한다.
-->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