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측 생트집에 시민들 허탈/출영객들 실망,발길 돌려/“기대 부풀었는데… 아쉽고 쓸쓸”
조국의 통일을 앞당기는데 나름대로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던 「범민족대회」 남북예비회담이 열리기도 전에 북한대표들의 입경거부에 따라 무산되자 국민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26일 아침부터 5년만에 오는 북한대표들의 입경여부에 관심을 가졌던 국민들은 이날 하루종일 남과 북이 판문점에서 입경조건을 놓고 실랑이를 벌인 끝에 북한측이 끝내 자리를 박차고 북쪽으로 되돌아갔다는 소식을 듣자 통일의 길이 얼마나 어려운가 하는 점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국민들은 특히 이날 예정보다 2시간이나 늦게 판문점에 도착한 북한측이 회담장소문제 등을 트집잡아 예비회담을 무산시키자 『처음부터 그럴줄 알았다』며 북측을 원망했다.
일부에서는 이날 회담장 및 숙소를 「전민련」측이 당초 예정했던 크리스천 아카데미하우스에서 인터콘티넨탈호텔로 바꾸려한 정부측 입장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남과 북의 실랑이로 임진각 등에서 하루를 완전히 낭비한양측 관계자들도 모두가 허탈한 표정들이었다.
▷임진각주변◁
이날 하오3시10분쯤 「전민련」의 김희택대변인이 『차량과 숙소,회담장 등 모두를 정부측이 제시하는 대로 따르기로 했다』는 성명을 내자 이날 이른 아침부터 6시간 이상이나 임진각 망배단앞 계단에 모여있던 환영단도 노래와 구호를 멈추고 북한측의 반응을 초조히 기다렸다.
그러나 『남한측의 확실한 결정이 있을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북한측이 제시한 하오4시가 지나고 5시가 가까워지자 계단에 앉아있던 80여명의 환영단은 20여명으로 줄었고 그나마 끝내 결렬되자 모두가 풀죽은 모습들이었다.
하오7시쯤 회담이 결렬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환영단들은 「우리의 소원은 통일」 등의 노래를 부르며 허탈한 감정을 달랬다.
환영단들은 판문점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는 강희남 「전민련」고문,이해남 「조통위원장」,김희선 「서울민협」의장 등 3명이 돌아올때까지 철야농성을 벌이기로 결의하기도 했으나 「전민련」간부들의 설득에 따라 서울로 향했다.
환영단들은 간부들이 『북한대표들은 오지 못했지만 그 동안 귀국조차 하지 못했던 해외대표들이 참가했다는 것 자체가 통일운동이 거둔 큰 성과』라고 설득하자 하오9시30분쯤 버스 2대에 나누어 타고 임진각을 떠났다.
▷전민련◁
예비회담의 장소선정을 놓고 남북한 당국 및 「전민련」대표 등 3자간의 막후협상설이 숨가쁘게 전해지고 있는 가운데 이날 상오 「전민련」사무실에 회담장소를 문의하는 전화가 빗발치자 관계자들은 계속해서 『아카데미하우스에서 회의가 열릴 것』이라고 답변했다.
「전민련」측은 이날 상오까지 남북접촉 결과 회담장소가 인터콘티넨탈호텔로 정해졌다는 사실은 뜬소문이라고 일축하면서 「전민련」대표단은 북측대표단이 도착할 때까지 판문점에 대기하면서 정부ㆍ북한측ㆍ「전민련」 등 3자가 직접협상을 벌이겠다고 고집했다.
이날 「전민련」사무실에는 한 때 『판문점으로 갔던 대표단과 환영단일행 등 1백50여명이 전원 경찰에 연행됐다』는 헛소문이 나도는 등 이날 하룻동안 회담의 성사여부를 놓고 온갖 뜬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이날 하루종일 2백여통에 이르는 회담성사여부를 문의하는 전화를 받느라 시달려 온 「전민련」사회부장 남중현씨는 『이제 이 책임을 누가 지느냐』면서 『국민들의 질책을 어떻게 감당해 나갈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회담장주변◁
경찰은 이날 인터컨티넨탈호텔 주변에 1천3백여명의 전경을 배치하는 한편 서울시내 전역에 경호경비를 위해 5천여명의 경찰을 투입했으나 민간차원의 회담이라는 점을 고려해 시민들의 눈에 잘 띄지 않게 평상복차림으로 배치했다.
이날 인터컨티넨탈호텔에는 이북5도민회 중앙연합회(대표의장 윤관ㆍ67)회원 2백50여명은 이날 상오11시쯤부터 호텔주변에 몰려와 『회담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할 텐데』라면서 조바심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들은 「남북왕래 보장하여 통일 기틀 다지자」는 등의 플래카드와 피켓을 들고 나왔다가 『북한대표들이 판문점까지 왔다가 돌아갔다』는 소문을 듣고 크게 실망해 하오3시쯤 발길을 돌렸다.
▷시민반응◁
회사원 정수씨(30)는 『모처럼 남북대화의 자리를 갖는다고 해서 기대를 가졌으나 역시 그들은 대화를 외면하고 말아 씁쓸한 기분』이라면서 『북한측은 이것으로도 대화에 임할 자세가 안돼있음을 보여줬고 그 원인은 역시 체제의 보수성을 떨쳐버릴 용기나 의도가 없기 때문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영욱씨(37ㆍA&E상사 대표)도 『남북한이 함께 해야할 민족대회이므로 오래전부터 치밀하게 준비했어야 하나 양쪽이 너무 성급했던 것같다』고 아쉬워하며 『서로가 제스처를 쓰는데만 신경 쓴 듯한 인상도 지울수 없어 섭섭하고 실망이 크다』고 말했다.
조국의 통일을 앞당기는데 나름대로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던 「범민족대회」 남북예비회담이 열리기도 전에 북한대표들의 입경거부에 따라 무산되자 국민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26일 아침부터 5년만에 오는 북한대표들의 입경여부에 관심을 가졌던 국민들은 이날 하루종일 남과 북이 판문점에서 입경조건을 놓고 실랑이를 벌인 끝에 북한측이 끝내 자리를 박차고 북쪽으로 되돌아갔다는 소식을 듣자 통일의 길이 얼마나 어려운가 하는 점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국민들은 특히 이날 예정보다 2시간이나 늦게 판문점에 도착한 북한측이 회담장소문제 등을 트집잡아 예비회담을 무산시키자 『처음부터 그럴줄 알았다』며 북측을 원망했다.
일부에서는 이날 회담장 및 숙소를 「전민련」측이 당초 예정했던 크리스천 아카데미하우스에서 인터콘티넨탈호텔로 바꾸려한 정부측 입장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남과 북의 실랑이로 임진각 등에서 하루를 완전히 낭비한양측 관계자들도 모두가 허탈한 표정들이었다.
▷임진각주변◁
이날 하오3시10분쯤 「전민련」의 김희택대변인이 『차량과 숙소,회담장 등 모두를 정부측이 제시하는 대로 따르기로 했다』는 성명을 내자 이날 이른 아침부터 6시간 이상이나 임진각 망배단앞 계단에 모여있던 환영단도 노래와 구호를 멈추고 북한측의 반응을 초조히 기다렸다.
그러나 『남한측의 확실한 결정이 있을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북한측이 제시한 하오4시가 지나고 5시가 가까워지자 계단에 앉아있던 80여명의 환영단은 20여명으로 줄었고 그나마 끝내 결렬되자 모두가 풀죽은 모습들이었다.
하오7시쯤 회담이 결렬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환영단들은 「우리의 소원은 통일」 등의 노래를 부르며 허탈한 감정을 달랬다.
환영단들은 판문점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는 강희남 「전민련」고문,이해남 「조통위원장」,김희선 「서울민협」의장 등 3명이 돌아올때까지 철야농성을 벌이기로 결의하기도 했으나 「전민련」간부들의 설득에 따라 서울로 향했다.
환영단들은 간부들이 『북한대표들은 오지 못했지만 그 동안 귀국조차 하지 못했던 해외대표들이 참가했다는 것 자체가 통일운동이 거둔 큰 성과』라고 설득하자 하오9시30분쯤 버스 2대에 나누어 타고 임진각을 떠났다.
▷전민련◁
예비회담의 장소선정을 놓고 남북한 당국 및 「전민련」대표 등 3자간의 막후협상설이 숨가쁘게 전해지고 있는 가운데 이날 상오 「전민련」사무실에 회담장소를 문의하는 전화가 빗발치자 관계자들은 계속해서 『아카데미하우스에서 회의가 열릴 것』이라고 답변했다.
「전민련」측은 이날 상오까지 남북접촉 결과 회담장소가 인터콘티넨탈호텔로 정해졌다는 사실은 뜬소문이라고 일축하면서 「전민련」대표단은 북측대표단이 도착할 때까지 판문점에 대기하면서 정부ㆍ북한측ㆍ「전민련」 등 3자가 직접협상을 벌이겠다고 고집했다.
이날 「전민련」사무실에는 한 때 『판문점으로 갔던 대표단과 환영단일행 등 1백50여명이 전원 경찰에 연행됐다』는 헛소문이 나도는 등 이날 하룻동안 회담의 성사여부를 놓고 온갖 뜬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이날 하루종일 2백여통에 이르는 회담성사여부를 문의하는 전화를 받느라 시달려 온 「전민련」사회부장 남중현씨는 『이제 이 책임을 누가 지느냐』면서 『국민들의 질책을 어떻게 감당해 나갈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회담장주변◁
경찰은 이날 인터컨티넨탈호텔 주변에 1천3백여명의 전경을 배치하는 한편 서울시내 전역에 경호경비를 위해 5천여명의 경찰을 투입했으나 민간차원의 회담이라는 점을 고려해 시민들의 눈에 잘 띄지 않게 평상복차림으로 배치했다.
이날 인터컨티넨탈호텔에는 이북5도민회 중앙연합회(대표의장 윤관ㆍ67)회원 2백50여명은 이날 상오11시쯤부터 호텔주변에 몰려와 『회담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할 텐데』라면서 조바심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들은 「남북왕래 보장하여 통일 기틀 다지자」는 등의 플래카드와 피켓을 들고 나왔다가 『북한대표들이 판문점까지 왔다가 돌아갔다』는 소문을 듣고 크게 실망해 하오3시쯤 발길을 돌렸다.
▷시민반응◁
회사원 정수씨(30)는 『모처럼 남북대화의 자리를 갖는다고 해서 기대를 가졌으나 역시 그들은 대화를 외면하고 말아 씁쓸한 기분』이라면서 『북한측은 이것으로도 대화에 임할 자세가 안돼있음을 보여줬고 그 원인은 역시 체제의 보수성을 떨쳐버릴 용기나 의도가 없기 때문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영욱씨(37ㆍA&E상사 대표)도 『남북한이 함께 해야할 민족대회이므로 오래전부터 치밀하게 준비했어야 하나 양쪽이 너무 성급했던 것같다』고 아쉬워하며 『서로가 제스처를 쓰는데만 신경 쓴 듯한 인상도 지울수 없어 섭섭하고 실망이 크다』고 말했다.
1990-07-27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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